철원 사고 사격장, 유탄 차단 대책없고 주변 경고 간판도 미설치
강원도 철원의 6사단 병사 총상 사망 사고를 계기로 군의 부실한 사격장 안전기강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군이 사격장 안전관리 규정을 제대로 마련해 지켰더라면 꽃다운 나이에 군 복무를 하던 청년의 죽음은 피할 수 있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국방부 조사본부가 9일 발표한 '6사단 병사의 두부 총상 사망 특별수사' 결과를 보면 지난달 사고 발생 당시 사격장 주변으로 병력을 인솔하는 부대와 사격훈련부대, 사격장관리부대의 안전조치와 사격장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어이없는 사고로 순직한 이모 상병(일병에서 추서됐음)은 지난달 26일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철원군 동송읍 금악산 일대에서 진지 공사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 중이었습니다. 이 상병은 동료 부대원 20여명과 함께 소대장 박모 소위와 부소대장 김모 중사의 인솔 아래 6사단 사격장 북쪽의 전술도로를 걸어 이동했습니다.
이후 오후 4시10분께 사격장의 사선에서 직선거리로 340여m 떨어진 전술도로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쓰러졌습니다. 김 중사는 즉각 휴대전화로 구급차와 의무후송헬기를 요청했습니다. 군 병원으로 이송된 이 상병은 오후 5시22분께 안타깝게 순직했습니다.
국방부 조사본부 특별수사팀은 이번 사고가 사격장 안전관리와 사격장 통제 미흡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것으로 결론지었습니다.
박 소위와 김 중사는 부대원 20여명과 금악산 인근 사격장 북쪽 전술도로를 내려갔고, 이 때 박 소위는 부대원들이 듣도록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면서 이동했습니다. 인솔 책임자들은 금악산 아래 전술도로에서는 사격 총성을 들었지만, 이동을 중지하거나 우회하지 않았다고 조사본부는 설명했습니다.
조사본부 관계자는 "부소대장은 사격장의 위쪽 전술도로에서는 사격 총성을 들었지만, 사망지점 인근 전술도로에서는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습니다. 사고가 난 전술도로 인근 나무에는 유탄으로 인한 70여 개의 피탄흔이 발견됐습니다.
인솔 책임자가 주변 지형에 조금만 눈을 돌렸더라도 유탄이 날아올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상병과 20여명의 병력은 사격장 위쪽의 금악산 인근 전술도로를 걸어 내려오면서 사격훈련 부대의 경계병과 마주쳤습니다. 그러나 경계병은 전술도로를 걸어 내려오는 것이 위험하다고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조사본부는 "사격훈련부대가 사고장소인 영외 전술도로에 경계병을 투입할 때 제지 등 명확한 임무를 부여하지 않아 병력 이동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사격장관리부대는 총탄이 사격장을 벗어날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사격장에서 병사들이 사격하는 사선에서 280m 떨어진 곳에 높이 14m의 방호벽(경사진 곳에 설치된 사격장 구조 때문에 사수가 있는 사선 지표면에서 방호벽 끝까지의 높이는 28m)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호벽은 사선에서 200m 거리에 세워진 표적지를 기준으로 총구를 1.59도로 했을 때만 안전합니다.
만약 총구가 2.39도만 높아도 방호벽의 두배 높이로 날아가 이 상병이 걸었던 장소까지 날아갈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사고장소는 방호벽 끝에서 60m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이 지점의 주변 나무에는 70여개의 피탄흔이 남아 있어 그간 수많은 유탄이 이 지점으로 날아갔음을 말해줬습니다.
조사본부는 "사고장소인 영외 전술도로 방향으로 직접 날아갈 수 있는 유탄 차단대책을 수립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사격장과 피탄지 주변에 경고간판도 제대로 설치하지 않은 등 안전대책이 미흡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고 당시 사격장에서는 모두 14개로 편성된 병력이 사격훈련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14개조 중 12번째 조가 사격을 마치고 13번째 조가 사선에 엎드려 각각 9발을 사격했을 때 중지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이 사병이 유탄에 맞아 쓰러지자 뛰어온 경계병이 휴대전화로 부대에 사고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후 사격중지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5분 20초가량이 소요됐습니다.
사고 후 대략 5분 20초가 흐를 동안 사격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이와 관련, 조사본부는 12번째 조가 사격을 했을 때 그 중 한발이 유탄이 됐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당시 12명은 K-2 소총으로 5.56㎜ 총탄 20발을 각각 사격했습니다.
그러나 국방부 조사본부는 유탄이 어느 총에서 발사됐는지 규명하지는 못했습니다.
조사본부 관계자는 "사고 시점에 발사된 총기 12정을 수거해 총기의 지문에 해당하는 '강선흔'을 유탄과 비교하려고 했지만, 마찰열로 강선흔이 훼손되어 찾기가 어려웠다"고 설명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사격장에서 남은 잔탄을 소비하려고 '난사'한 것이 사고원인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사본부 관계자는 "2015년부터 전투사격 방식이 바뀌었는데 입사호(사격할 때 서서 할 수 있도록 깊게 판 구덩이)에서 5발을, 입사호 밖에서 15발을 쏜다"면서 "15발 중 마지막 6발은 연발 사격을 하도록 되어 있어 잔탄 소비 등은 이뤄질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습니다.
육군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전체 190개의 사격장을 대상으로 특별점검을 진행 중인데 이 가운데 50여개의 사격장이 안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나 사용을 중지시켰습니다. 뒤늦게나마 중지시켜서 다행이지만 만약 그대로 운용했다면 안전 사고가 반복될 뻔했습니다.
육군은 '사격훈련장 안전관리 인증제'를 시행하고, 유형별 사격통제 절차를 보완해 사격장별 지리적 특성을 고려한 '사격장 운용예규'를 발전시켜 적용할 계획입니다. 또 사격통제 매뉴얼을 표준화해 사격장·관리관·통제관의 '3중 안전관리체계 정립' 등 안전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지만 뒤늦은 대책이 됐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강원도 철원의 6사단 병사 총상 사망 사고를 계기로 군의 부실한 사격장 안전기강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군이 사격장 안전관리 규정을 제대로 마련해 지켰더라면 꽃다운 나이에 군 복무를 하던 청년의 죽음은 피할 수 있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국방부 조사본부가 9일 발표한 '6사단 병사의 두부 총상 사망 특별수사' 결과를 보면 지난달 사고 발생 당시 사격장 주변으로 병력을 인솔하는 부대와 사격훈련부대, 사격장관리부대의 안전조치와 사격장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어이없는 사고로 순직한 이모 상병(일병에서 추서됐음)은 지난달 26일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철원군 동송읍 금악산 일대에서 진지 공사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 중이었습니다. 이 상병은 동료 부대원 20여명과 함께 소대장 박모 소위와 부소대장 김모 중사의 인솔 아래 6사단 사격장 북쪽의 전술도로를 걸어 이동했습니다.
이후 오후 4시10분께 사격장의 사선에서 직선거리로 340여m 떨어진 전술도로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쓰러졌습니다. 김 중사는 즉각 휴대전화로 구급차와 의무후송헬기를 요청했습니다. 군 병원으로 이송된 이 상병은 오후 5시22분께 안타깝게 순직했습니다.
국방부 조사본부 특별수사팀은 이번 사고가 사격장 안전관리와 사격장 통제 미흡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것으로 결론지었습니다.
박 소위와 김 중사는 부대원 20여명과 금악산 인근 사격장 북쪽 전술도로를 내려갔고, 이 때 박 소위는 부대원들이 듣도록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면서 이동했습니다. 인솔 책임자들은 금악산 아래 전술도로에서는 사격 총성을 들었지만, 이동을 중지하거나 우회하지 않았다고 조사본부는 설명했습니다.
조사본부 관계자는 "부소대장은 사격장의 위쪽 전술도로에서는 사격 총성을 들었지만, 사망지점 인근 전술도로에서는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습니다. 사고가 난 전술도로 인근 나무에는 유탄으로 인한 70여 개의 피탄흔이 발견됐습니다.
인솔 책임자가 주변 지형에 조금만 눈을 돌렸더라도 유탄이 날아올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상병과 20여명의 병력은 사격장 위쪽의 금악산 인근 전술도로를 걸어 내려오면서 사격훈련 부대의 경계병과 마주쳤습니다. 그러나 경계병은 전술도로를 걸어 내려오는 것이 위험하다고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조사본부는 "사격훈련부대가 사고장소인 영외 전술도로에 경계병을 투입할 때 제지 등 명확한 임무를 부여하지 않아 병력 이동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사격장관리부대는 총탄이 사격장을 벗어날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사격장에서 병사들이 사격하는 사선에서 280m 떨어진 곳에 높이 14m의 방호벽(경사진 곳에 설치된 사격장 구조 때문에 사수가 있는 사선 지표면에서 방호벽 끝까지의 높이는 28m)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호벽은 사선에서 200m 거리에 세워진 표적지를 기준으로 총구를 1.59도로 했을 때만 안전합니다.
만약 총구가 2.39도만 높아도 방호벽의 두배 높이로 날아가 이 상병이 걸었던 장소까지 날아갈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사고장소는 방호벽 끝에서 60m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이 지점의 주변 나무에는 70여개의 피탄흔이 남아 있어 그간 수많은 유탄이 이 지점으로 날아갔음을 말해줬습니다.
조사본부는 "사고장소인 영외 전술도로 방향으로 직접 날아갈 수 있는 유탄 차단대책을 수립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사격장과 피탄지 주변에 경고간판도 제대로 설치하지 않은 등 안전대책이 미흡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고 당시 사격장에서는 모두 14개로 편성된 병력이 사격훈련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14개조 중 12번째 조가 사격을 마치고 13번째 조가 사선에 엎드려 각각 9발을 사격했을 때 중지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이 사병이 유탄에 맞아 쓰러지자 뛰어온 경계병이 휴대전화로 부대에 사고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후 사격중지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5분 20초가량이 소요됐습니다.
사고 후 대략 5분 20초가 흐를 동안 사격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이와 관련, 조사본부는 12번째 조가 사격을 했을 때 그 중 한발이 유탄이 됐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당시 12명은 K-2 소총으로 5.56㎜ 총탄 20발을 각각 사격했습니다.
그러나 국방부 조사본부는 유탄이 어느 총에서 발사됐는지 규명하지는 못했습니다.
조사본부 관계자는 "사고 시점에 발사된 총기 12정을 수거해 총기의 지문에 해당하는 '강선흔'을 유탄과 비교하려고 했지만, 마찰열로 강선흔이 훼손되어 찾기가 어려웠다"고 설명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사격장에서 남은 잔탄을 소비하려고 '난사'한 것이 사고원인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사본부 관계자는 "2015년부터 전투사격 방식이 바뀌었는데 입사호(사격할 때 서서 할 수 있도록 깊게 판 구덩이)에서 5발을, 입사호 밖에서 15발을 쏜다"면서 "15발 중 마지막 6발은 연발 사격을 하도록 되어 있어 잔탄 소비 등은 이뤄질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습니다.
육군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전체 190개의 사격장을 대상으로 특별점검을 진행 중인데 이 가운데 50여개의 사격장이 안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나 사용을 중지시켰습니다. 뒤늦게나마 중지시켜서 다행이지만 만약 그대로 운용했다면 안전 사고가 반복될 뻔했습니다.
육군은 '사격훈련장 안전관리 인증제'를 시행하고, 유형별 사격통제 절차를 보완해 사격장별 지리적 특성을 고려한 '사격장 운용예규'를 발전시켜 적용할 계획입니다. 또 사격통제 매뉴얼을 표준화해 사격장·관리관·통제관의 '3중 안전관리체계 정립' 등 안전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지만 뒤늦은 대책이 됐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