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한산성 고뇌에 찬 인조 役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배우 박해일(40)이 선택의 갈림길에 선 위태로운 조선의 왕 인조로 관객을 찾는다. 조선의 여러 왕 가운데 평가가 박했던 인조. 박해일은 인조를 연기한 데 대해 "왕의 무게를 견뎌내기에는 부담감이 많이 큰 인물이 아니었겠느냐는 뼈대를 잡았다"며 "이어 인조의 무능한 지점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연기하기보다 그걸 절제된 톤으로, 서서히 스멀스멀 냄새가 나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그러다 청의 무리한 요구가 있었을 때 급격히 감정이 드러나는 지점을 잡았고 단계적으로 톤을 맞추려고 했다"고 말했다.
사실 박해일은 처음에는 황동혁 감독의 제의를 거절했다. 물리적으로 준비할 시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황 감독을 만나 설득당했다. "해일씨가 필요합니다"라는 황 감독의 말에 더 이상의 변명거리를 찾지 못했다. 참여하기로 하고 내가 과연 얼마만큼 인조에 빠져들어갈 수 있는지가 중요했기에 고민을 많이 했다.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쪼개 쓰고 준비했다.
"일차적이고 무식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으나 캐릭터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 위해 왕릉과 남한산성 성곽을 따라 걷기도 했어요. 이전에는 가벼운 산책로로 경험했는데 49일 고립된 상태로 있어야 하는 곳이니 그 공간이 사뭇 달리 느껴지더라고요. 유달리 힘들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김윤석 이병헌 배우와 처음 호흡을 맞추는 것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과거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 선배와 작업했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연기 잘하는 두 분을 한꺼번에 만나는 기회를 만나 더없이 기쁘더라"며 "서로에 대해, 각자의 연기에 대해 궁금해하는 표정이면서 동시에 방대한 대사를 준비하는 열정이 넘쳤다"고 회상했다.
앞서 언론시사회에서 김윤석은 최명길(이병헌)과 김상헌(김윤석)이 열변을 토하며 각자의 주장을 이야기하는 신에서 바뀐 대본이 전달되지 않아 연기할 때마다 본인이 대사를 다르게 해 고생했다는 에피소드를 공개한 바 있다. 두 선배를 지켜봐야 했던 박해일이 두 사람보다 더 당황하진 않았을까?
박해일은 "사실 당시 감독님까지 모두가 초비상이었다"며 "토씨 하나만 달라져도 배우들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고 회상했다. "말에 대한 대사가 이 영화가 가진 하나의 캐릭터라고 할 수 있으니 보증된 대사를 통으로 실어날라야 하는데 쉽지 않은 싸움이었어요. 예민할 수밖에 없죠. 그래도 대단했다고 생각하는 건 김윤석 선배가 그 상황을 돌파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더 나이브한 지점들이 나와 결과적으로 감독님까지 모두가 흐뭇한 지점이 됐죠. 다들 베테랑이니 위기를 잘 활용했던 것 같아요."
2시간 동안 고민하고 힘들었을 박해일이지만 아무래도 삼전도의 굴욕 신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박해일은 "의도적으로 더 극한의 감정으로 보여주려고 한 건 지양했다"며 "느낀 만큼만 표현하려 했다. 어떤 매체에서 인조가 머리를 찧어 피가 나온 적이 있었다. 감독님에게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니 피는 안 보여줄 것이라고 하더라. 나도 머리에 흙이 묻는 게 좋았다. 뒤에서 최명길이 복받친 감정을 표현하니 상대적으로 나는 더 담담하게 표현했는데 그렇게 하길 잘한 것 같다"고 만족해했다.
"물론 마음은 참담하고 비굴했으며 가슴 아팠어요. 380년 전이라는 시간이 길면 길지만 그렇게 먼 이야기는 아닌 것 같거든요. 지금 우리도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되는 것이고,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 때문에 많이 겪고 있는 게 있잖아요. 가슴 아프지만 그렇다고 감출 수만은 없고요. 우리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가 있는 것이죠."
"예전에는 최종병기 활처럼 육즙(웃음)을 쏟아내면서 피로도를 끌어올려 보여준 작품이 꽤 있었는데 연기를 하다 보니 결국 사람의 마음을 잘 보여드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배우마다 자기의 장점을 보여줄 스타일은 각자 다르겠지만 저는 요즘 마음을 정제시켜 보여드리는 영화가 더 끌려요. 살다 보면 변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그래요. 체력 문제 때문이냐고요? 음, 제가 체력은 원래 좋지 않습니다. 전 단거리 선수는 아니고 긴 호흡을 터벅터벅 가는 스타일 같아요. 마라톤 선수나 경보 선수라고 할까요? 하하하."
jeigun@mk.co.kr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배우 박해일(40)이 선택의 갈림길에 선 위태로운 조선의 왕 인조로 관객을 찾는다. 조선의 여러 왕 가운데 평가가 박했던 인조. 박해일은 인조를 연기한 데 대해 "왕의 무게를 견뎌내기에는 부담감이 많이 큰 인물이 아니었겠느냐는 뼈대를 잡았다"며 "이어 인조의 무능한 지점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연기하기보다 그걸 절제된 톤으로, 서서히 스멀스멀 냄새가 나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그러다 청의 무리한 요구가 있었을 때 급격히 감정이 드러나는 지점을 잡았고 단계적으로 톤을 맞추려고 했다"고 말했다.
사실 박해일은 처음에는 황동혁 감독의 제의를 거절했다. 물리적으로 준비할 시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황 감독을 만나 설득당했다. "해일씨가 필요합니다"라는 황 감독의 말에 더 이상의 변명거리를 찾지 못했다. 참여하기로 하고 내가 과연 얼마만큼 인조에 빠져들어갈 수 있는지가 중요했기에 고민을 많이 했다.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쪼개 쓰고 준비했다.
"일차적이고 무식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으나 캐릭터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 위해 왕릉과 남한산성 성곽을 따라 걷기도 했어요. 이전에는 가벼운 산책로로 경험했는데 49일 고립된 상태로 있어야 하는 곳이니 그 공간이 사뭇 달리 느껴지더라고요. 유달리 힘들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김윤석 이병헌 배우와 처음 호흡을 맞추는 것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과거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 선배와 작업했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연기 잘하는 두 분을 한꺼번에 만나는 기회를 만나 더없이 기쁘더라"며 "서로에 대해, 각자의 연기에 대해 궁금해하는 표정이면서 동시에 방대한 대사를 준비하는 열정이 넘쳤다"고 회상했다.
박해일은 "마음을 정제시켜 보여드리는 영화가 요즘 끌린다"고 말했다. 사진 | 강영국 기자
"건강한 경쟁의식이 이어졌어요. 사실 김윤석, 이병헌 뒤에 다른 배우들도 모두 연극계 베테랑이었거든요. 그게 부담이라고 느끼면 내 손해고, 건강한 에너지의 발산이라고 느끼면 좋은 지점이죠. 마치 연극 무대 같았어요. 살인의 추억 때도 김뢰하, 김상경, 송강호 선배와 마주하고 혼자 앉아있었던 경험이 있는데, 그게 마치 지옥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피할 데가 없었어요. 이번에도 그랬죠. 오래 연기했는데도 지옥같으냐고요? 아마 연기자로 일하면서 평생 그럴 것 같아요. 익숙해지는 순간 매너리즘에 빠질 것 같은데요?"앞서 언론시사회에서 김윤석은 최명길(이병헌)과 김상헌(김윤석)이 열변을 토하며 각자의 주장을 이야기하는 신에서 바뀐 대본이 전달되지 않아 연기할 때마다 본인이 대사를 다르게 해 고생했다는 에피소드를 공개한 바 있다. 두 선배를 지켜봐야 했던 박해일이 두 사람보다 더 당황하진 않았을까?
박해일은 "사실 당시 감독님까지 모두가 초비상이었다"며 "토씨 하나만 달라져도 배우들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고 회상했다. "말에 대한 대사가 이 영화가 가진 하나의 캐릭터라고 할 수 있으니 보증된 대사를 통으로 실어날라야 하는데 쉽지 않은 싸움이었어요. 예민할 수밖에 없죠. 그래도 대단했다고 생각하는 건 김윤석 선배가 그 상황을 돌파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더 나이브한 지점들이 나와 결과적으로 감독님까지 모두가 흐뭇한 지점이 됐죠. 다들 베테랑이니 위기를 잘 활용했던 것 같아요."
2시간 동안 고민하고 힘들었을 박해일이지만 아무래도 삼전도의 굴욕 신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박해일은 "의도적으로 더 극한의 감정으로 보여주려고 한 건 지양했다"며 "느낀 만큼만 표현하려 했다. 어떤 매체에서 인조가 머리를 찧어 피가 나온 적이 있었다. 감독님에게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니 피는 안 보여줄 것이라고 하더라. 나도 머리에 흙이 묻는 게 좋았다. 뒤에서 최명길이 복받친 감정을 표현하니 상대적으로 나는 더 담담하게 표현했는데 그렇게 하길 잘한 것 같다"고 만족해했다.
"물론 마음은 참담하고 비굴했으며 가슴 아팠어요. 380년 전이라는 시간이 길면 길지만 그렇게 먼 이야기는 아닌 것 같거든요. 지금 우리도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되는 것이고,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 때문에 많이 겪고 있는 게 있잖아요. 가슴 아프지만 그렇다고 감출 수만은 없고요. 우리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가 있는 것이죠."
"40대에 인조를 만나 연기해 좋았다"는 박해일. 사진 | 강영국 기자
박해일은 "40대 나이에 인조를 만나 연기를 해본 게 다행인 것 같다"며 "특히 어느 장르에 기대지 않고 정통사극으로 이 작품을 만난 건 자주 만날 수 없는 기회이기에 가치가 있다. 심지어 적지 않은 예산을 들였고 감독이 이렇게 밀어붙인 작품에 합류한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과거의 치부이자 민낯이 가슴 아프긴 하지만 잘 만들어내면 오래오래 두고 볼만한 사극이 아닌가 한다"고 강조했다."예전에는 최종병기 활처럼 육즙(웃음)을 쏟아내면서 피로도를 끌어올려 보여준 작품이 꽤 있었는데 연기를 하다 보니 결국 사람의 마음을 잘 보여드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배우마다 자기의 장점을 보여줄 스타일은 각자 다르겠지만 저는 요즘 마음을 정제시켜 보여드리는 영화가 더 끌려요. 살다 보면 변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그래요. 체력 문제 때문이냐고요? 음, 제가 체력은 원래 좋지 않습니다. 전 단거리 선수는 아니고 긴 호흡을 터벅터벅 가는 스타일 같아요. 마라톤 선수나 경보 선수라고 할까요? 하하하."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