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불과 1년전 무릎꿇고 빌었는데 지금은 함께 웃어요"
입력 2017-09-21 14:27  | 수정 2017-09-21 14:35
서울발달장애인 훈련센터 교문

얼마전 장애아동을 둔 학부모가 무릎을 꿇었다. 아이를 위한 학교를 설립하게 해달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 학부모에게 주민들은 한방전문병원을 세우는 게 맞다며 "쇼하지 마"라는 독설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고스란히 겪었지만 지금은 극복 중인 곳이 있다. 바로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서울발달장애인 훈련센터다.
서울발달장애인 훈련센터는 지난해 12월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성일중학교 별관에 문을 열었다. 학생 수가 줄어든 성일중은 더이상 별관이 필요 없게 됐다. 서울시 교육청은 2015년 이 별관에 발달장애인 훈련센터를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발표가 나오자마자 주민들은 반발했다.
주민들은 "집값이 떨어지고 성일중 학생들의 교육환경이 악화될 것"이라며 센터 설립을 반대했다. 6차례의 지역 주민 대상 설명회와 간담회가 진행됐다. 일부 성일중 학부모들은 교문 앞에서 반대 투쟁을 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센터는 개관했지만 주민들의 반대는 멈추지 않았다. 주민들은 센터 교문 옆에 현수막을 걸며 항의했다.
지난 19일 찾은 센터에는 더 이상 주민들의 반대 현수막을 찾아볼 수 없었다. 불과 몇 달전에 사라졌다는 반대 현수막자리에는 발달 장애인들과 대학생들이 직접 그린 벽화가 따뜻한 햇살을 품고 있었다.
이효성 센터장이 강서구 사태에 대해 의견을 말하고있다. [사진 = 윤해리 인턴기자]
이효성 센터장은 공사 당시 주민들의 반대를 목격했을 때를 떠올리며 "아무리 설명해도 반대 주민들을 이해시킬 수 없어 놀랐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 센터장은 "하지만 센터가 문을 연 후 학생들을 보고 주민들이 호의적으로 대해주신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며 주민들의 인식변화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논란이 된 강서구 사태에 대해 이 센터장은 "우리도 처음에는 무릎도 꿇고 다른 곳으로 이전하라는 반대에 부딪히는 등 똑같은 과정을 단계별로 겪었다"며 토로했다. 그는 이어 "주민이 잘못한 것도 장애인이 잘못한 것도 아니다. 서로 만나볼 기회가 없고 이질적인 삶을 살다 보니까 결합이 되는 과정에서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문제다"라며 "계속 접촉면을 넓히다 보면 서로를 이해하는 순간이 오고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군이 IT훈련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연습중이다. [사진 = 윤해리 인턴기자]
학생들은 너무나도 밝은 모습으로 훈련에 임했다. IT 체험관에서 훈련 중이던 유석훈 군(21)과 김영재 군(20)은 만면에 미소를 띄고 있었다. 유 군은 "센터에서 직업훈련을 받으며 협동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 군 역시 센터에서 훈련한 것에 대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들은 "즐거웠습니다"라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센터와 성일중 사이에는 높은 철조망이 쳐져있다. [사진 = 윤해리 인턴기자]
주민들이 걱정하던 집값 하락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 성일중 인근 빌라에 거주 중인 황 모씨(48)는 당시 센터 설립에 찬성하는 주민으로 공청회에 참가했다. 황 씨는 공청회 현장을 떠올리며 "반대 측에서 계속 집값 하락 얘기를 했었다"라며 "센터 개관 후 집값은 전혀 하락하지 않았고 오히려 집값이 오른 집도 많다"고 말했다.
성일중 학생들 역시 센터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드러냈다. 성일중 3학년에 재학 중인 A양(15)은 "당시 학부모들이 왜 반대했는지 알 수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A양은 지난해 열린 성일중 학생대표 공청회에 2학년 학생대표로 참가했다.
A양은 센터 설립과정을 지켜보며 설립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학생이다. A양은 "반대 측 사람들이 센터 설립을 옹호하는 성일중 학생들에게도 모욕적인 발언을 쏟아내 충격을 받았다"라고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A양은 "일부 학부모들이 성일중 학생들의 교육환경저하가 우려된다며 센터설립을 방해했는데 학생들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했었다"라며 "그냥 센터 들어오면 집값 하락할까 봐 학생들을 핑곗거리로 삼은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라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A양은 마지막으로 "당시 학생들도 설립을 반대한 것처럼 보도된 적이 있는데 사실은 몇몇 학생들이 어린 마음에 카메라에 한 번 찍혀보고 싶다며 시위현장에 나간 거다"라고 말하며 몇몇 친구들이 철없던 행동에 대해 후회하고 있다고 덧붙혔다.
센터 설립 후 성일중에 입학한 1학년 B양(13)은 "입학 전에는 주민들이 센터가 나쁘다고 하니까 정말 나쁜 줄 알았는데 입학하고 보니 학생들에게 오는 피해는 전혀 없다"며 입학 전과 후의 인식 변화에 관해 설명했다. B양은 또 "센터 설립 후 운동장에 인조잔디도 깔릴 예정이고 교내에 편의시설도 보충돼서 좋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미술 작품 [사진 = 윤해리 인턴기자]
현재 31명의 장애인 학생들이 수료를 마쳤고 그중 20 명이 취업에 성공했다. 성일중 출신의 한 사장이 센터 견학 후 두 명의 학생을 직접 고용했다. 그 두 학생은 타일공예품을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오는 23일 서울시 인사동에서 자신들만의 전시회를 개최한다.
지금은 30명의 학생이 센터에 재학하며 취업훈련을 받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 소속 고등학교 재학생 또는 25세 미만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입학신청을 할 수 있다. 취업준비생의 경우 최장 6개월 동안 센터에서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다. 학생들은 사서 보조, 쉬운 글 감수, 바리스타, 제과, 사무보조 등 다양한 직업에 대한 실무 훈련을 받는다. 훈련은 모두 실전과 똑같은 상황, 환경에서 진행된다. 또 SPAO를 비롯한 협력업체에서 실무자가 직접 파견 나와 학생들의 수업을 담당하기도 한다.
센터에서는 장애아 학부모를 위한 교육도 실시한다. 학부모 교육에서는 필요한 가정교육, 장애인고용공단에서 받을 수 있는 도움 등을 알려준다.
학생들이 면접훈련 수업을 받고있다. [사진 = 윤해리 인턴기자]
이 센터장은 "만약 체험관이 없었다면 직업훈련기회도 없고 취업으로 연결될 수 없었을 친구들이 빠른 시간에 일자리를 찾아서 취업하는 게 가장 큰 기쁨이다"라며 "체험관이 없었으면 이런 직업이 있는지도 몰랐을 친구들이 자신의 적성을 발견하고 무슨 일을 하고 싶다고 희망을 표현할 때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이어 "학부모 교육 때 부모님들이 고맙다, 희망을 품게 됐다는 말을 하시면 센터의 존재 이유가 생기는 것 같다"며 뿌듯한 마음을 드러냈다.
서울발달장애인훈련센터의 슬로건은 '가능성을 향한 도전'이다. 오늘도 장애 학생들은 가능성을 향해 끊임없는 도전을 하고 있다.
[디지털뉴스국 노윤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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