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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인터뷰] 박정진 “내일 없는 베테랑의 마지막 꿈”
입력 2017-09-17 05:57 
한화 박정진은 후반기 19경기에 등판해 3승 1세이브 6홀드 평균자책점 1.35를 기록하고 있다. 사진(잠실)=김재현 기자
[매경닷컴 MK스포츠(잠실) 이상철 기자] 평균 연령이 가장 높았던 한화는 ‘젊은 팀이 됐다. 부상 도미노로 주축 선수가 이탈했다. 하지만 베테랑의 가치는 변함없다.
지난 15일 대전과 16일 잠실에서 한화의 승리를 지켜낸 이는 ‘맏형 박정진(41)이었다. 열흘 만에 연투였으나 깔끔했다. 피안타는 내야안타 1개뿐. 긴급 상황에 호출돼 완벽투를 펼쳤다. 28일 만에 승리, 그리고 886일 만에 세이브.
박정진은 한결 같다. 소금 같이 빛나는 그는 한화의 산 같은 존재다. 불혹의 나이에도 불펜의 중심축이다. 올해는 KBO리그의 ‘형들이 유니폼을 벗고 있다. 그 가운데 박정진은 스스로 가치를 더욱 빛내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도 굴곡이 참 많은 한 시즌이었다. 어느 때보다 전하고 싶은 말이 많을 터다. 박정진의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후반기 최고의 불펜
박정진은 후반기 최고의 불펜 중 1명이다. 16일 현재 19경기에 등판해 3승 1세이브 6홀드 평균자책점 1.35를 기록했다. 후반기 10경기 이상 뛴 투수 중 1.26(23경기)의 이명우(롯데) 다음으로 낮다.
박정진의 8월 평균자책점은 0.75에 불과했다. 9월 초 다소 흔들리기도 했지만 안정감을 되찾았다. 현재 100% 피칭이 아니라고 한다. 그럼에도 그의 공에는 묵직함이 있다.
금요일(15일) 경기에서는 모든 투수가 잘 던졌다. 특히 내 바로 앞에 (김)민우가 오랜만에 등판했다. 민우의 주자(1사 1,2루)였기에 어느 때보다 더욱 주자를 막아주고 싶었다. 팀도 승리해 정말 기뻤다. 그렇지만 내 공에는 아주 만족하지 않는다. 현재 컨디션이 썩 좋은 상태가 아니다. 그래도 코칭스태프의 배려 및 관리로 좋아지고 있다.”
박정진의 전반기 성적표는 2패 1홀드 평균자책점 5.33이었다. 후반기와 상당히 대조적이다. 두 차례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특히, 지난 6월 26일 말소된 뒤에는 한 달간 빠져있었다. 하지만 푹 쉬면서 구위를 회복했다. 반전의 계기였다.
전반기에는 (감독 교체 등으로)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나 역시 휩쓸렸다. 심리적으로 많이 쫓겼다. (6월)2군으로 내려가면서 (언제 돌아올지)기약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군 감독대행께서 전화를 주셨다. ‘다시 몸을 만들어 봐. 같이 하자라고 말씀하셨다. 내게 큰 동기부여였다. 마음을 다 잡고 몸을 만들었다. 좋았을 때 피칭도 정말 많이 봤고 생각했다. 투구 동작 시 중심이동이 안 됐는데 이를 바로 잡으면서 한결 좋아졌다.”
한화는 10시즌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박정진의 가을야구는 2001년에서 멈춰있다. 사진=김영구 기자
◆10시즌 연속 PS 탈락
박정진은 후반기 들어 비상했다. 그러나 한화는 높이 날아오르지 못했다. 지난 13일 삼성에게 패하면서 10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됐다.
LG(2003~2012년)가 세웠던 역대 최다 시즌 포스트시즌 탈락 타이로 불명예 기록이다. 8월 이후 20승 17패로 3번째 순위지만 부진한 성적을 만회하지 못했다. 씁쓸하고 안타깝다. 비통한 심정의 박정진이다.
최근 팀 성적이 좋지 않은가. 그런데 해마다 시즌 막바지 포스트시즌 탈락이 결정된 뒤에야 이렇다. 그 점이 참 아쉽다. 지난 5월 김성근 감독님이 나가시고 이상군 감독대행님이 팀을 맡으셨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고비를)잘 넘어가야 했으나 그렇지 못했다. 나 혼자 힘으로 바꿀 수는 없으나 아쉬움이 크다.”
기대가 컸던 시즌이었다. 외부 FA 영입은 없었으나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외국인선수를 영입했다. 선수 개개인의 면면도 화려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팀은 크게 힘을 내지 못했다.
김성근 감독님이 부임하신 뒤 멤버들이 좋았다. 포스트시즌을 넘어 우승까지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선수단도 실망감이 컸다. ‘우리는 안 되는 건가라는 좌절감도 갖게 되더라. 선수 개개인은 리그 최고라고 자부하는데 한데 성적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언론에서도 언급됐듯 ‘베스트 멤버가 제대로 모이지도 못했다. 부상자가 많아졌다. 신체와 정신은 또 다르더라. 난 한화에서만 뛰었다. 외부에서 우리를 ‘약팀으로 의식하는 게 싫었다. 그런데 올해도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해 선참으로 (체면이)서지 않기도 한다. 가을야구를 기다리셨을 한화 팬께도 죄송하다.”
박정진은 후배의 귀감이 되고 있다. 사진(잠실)=김재현 기자
◆보여줘야 한다
기회는 강한 동기부여다. 가을야구의 꿈은 다음으로 미뤘으나 한화의 시즌은 끝나지 않았다. 탈락 확정 뒤 14경기를 남겨뒀다. 그 이후 한화는 연승을 달렸다. 젊은 선수들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베테랑 박정진도 다르지 않다. 그에게는 다음이 없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한 법이다. 그는 더욱 절실하게 야구를 하고 있다.
올해는 내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내가 아직 더 할 수 있다는 걸 스스로 보여줘야 한다. 선참이라고 설렁하지 않는다. 오히려 후배의 귀감이 돼야 해 더 조심하고 더 열심히 한다. 마운드에 오르면 매우 집중하며 공을 던지고 있다.”
박정진은 프로 통산 689경기를 뛰었다. 70% 가까이(479경기)가 2010년 이후다. 시즌 초반 결장했던 2013년(30경기)를 제외하고 해마다 50차례 이상 마운드에 오르고 있다. 아직 그가 필요한 존재라는 방증이다.
팀이 필요할 때 마운드에 나가는 것은 투수의 기본이다. 그런데 내 나이에 못 하면 그대로 끝이다. 내년은 없다. 계속 잘 해야 한다. 내 역할은 팀이 지는 경기의 롱릴리프가 아니다. 타이트하거나 리드하는 상황에 나가 팀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보탬이 안 된다면 필요가 없어진다. 그런 부담이 없지 않으나 당연히 받아들어야 한다.”
1999년 독수리군단의 일원이 된 박정진은 프랜차이즈 스타다. 그러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그의 역할은 늘 그렇듯 상대적으로 덜 화려한 셋업맨이다. 가장 힘든 위치다. 항상 등판 대기의 초긴장 상태다. 하지만 그는 언제든지 나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한다.
이제는 힘들지 않다. 이 자리가 내 보직이다. 지금은 그 위치 밖에 할 수 없는 몸 상태다(웃음). 물론, 가장 고생을 많이 하는데 관심을 못 받는 보직이다. 불펜의 비애다. 그렇지만 저마다 고충이 있기 마련이다. 홀드라는 기록도 있어 재미도 있다. 무엇보다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제 역할만 한다면 만족스럽다.”
박정진의 역투. 그는 은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했다. 사진=천정환 기자
◆최고령 선수
박정진은 한화의 맏형이다. 그조차 40대에도 야구를 계속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1년 뒤에도 공을 계속 던진다면, 그는 KBO리그 최고령 선수가 된다(KIA 임창용보다 생일이 빠르다). 이호준(NC)과 이승엽(삼성)은 올해를 끝으로 현역 은퇴한다.
내년에도 (현역으로)뛰기 위해 (또 몸을)잘 만들도록 열심히 해야 한다. 올 시즌을 잘 마무리해야 한다. 선수 생활을 참 오래 했다. 내가 최고령 선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내가 입단할 당시 기라성 같은 선배가 많았다. 그들을 보면서 컸다. 난 ‘스타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오면서 선배들 생각이 많이 난다. ‘참, 대단했구나라고. 그들처럼 오랫동안 한화에서 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럽다.”
잦은 부상으로 방출 통보까지 받았던 박정진이었다. 그의 야구는 뒤늦게 꽃을 피웠다.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2009년 시즌을 마친 뒤 방출됐다. 재활을 3년간 했으나 보여준 게 없었다. 그런데 팀에 좌투수가 없었다. 테스트 겸 교육리그에 참여했는데 전화위복이 됐다. 희한하게 그 이후 크게 다친 적이 없다. 사실 내 프로 경력의 50%는 부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너무 아팠다. 그 때문에 이제는 부상에 대한 나만의 노하우가 생겼다.”
박정진의 몸 관리는 정평이 나있다. 시쳇말로 ‘몸짱이다. 그의 몸에는 군살이 없다. 몇 년간 그의 체중은 84kg을 유지하고 있다.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들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식습관, 운동 등 생활이 몇 년간 그대로다. 마치 기계 같다. 관리가 필요한 시기다. 이렇게 꾸준하게 관리를 해야 계속 공을 던질 수 있다. 지금도 체력적으로 어려움은 없다. 50경기 이상 등판도 거뜬하다. (2009년까지)많은 경기를 뛰지 않았기에 자주 호출되는 게 힘들지 않다. 오히려 감사하다. 이렇게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훗날 박정진은 마지막 꿈을 이루며 활짝 웃을 수 있을까. 사진(잠실)=김재현 기자
◆마지막 꿈
영원한 선수는 없다. 박정진도 언젠가는 유니폼을 벗을 터다. 그의 말대로 베테랑에게 내일은 보장돼 있지 않다. 스스로 만들고 잡아야 한다. 입단 동기 이승엽의 은퇴는 그에게 많은 걸 일깨워줬다.
지난 8월 11일 이승엽의 은퇴투어 첫 장소가 대전이었다. 악수를 나누면서 내가 ‘축해줘야 하는 건가라고 물으니 승엽이가 ‘축하해 달라고 하더라. 동기지만 우러러보게 된다. 나도 현역에서 물러날 때가 있을 텐데, 은퇴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고 축복이다. (소리 소문 없이)옷을 벗는 선수가 더 많지 않은가. 정상에서 내려가는 게 쉽지 않은데, 그래서 승엽이가 대단하고 멋있다. 나도 그 날이 오기 전까지 미련 없이 야구를 하고 싶다. 비록 난 정상은 아니겠으나 좋게 마무리를 하고 싶다.”
선수 박정진에게는 마지막 꿈이 있다. 가을야구다. 그가 입단한 해 한화는 정상에 올랐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러나 신인 박정진은 그 축제의 현장에 함께 있지 못했다.
한화는 2000년 이후 네 차례(2001·2005·2006·2007년) 포스트시즌에 나갔다. 그러나 박정진이 초대 받은 적은 1번 밖에 없다. 2001년 준플레이오프 2경기 등판. 그의 포스트시즌 통산 성적이다. 한화의 주축 선수로 자리매김했을 때에는 가을야구와 거리가 멀어졌다. 그래서 안타까움이 더 큰 박정진이다.
최고령 100홀드, 700경기 등에 대해 주변에서 묻더라. 그러나 난 기록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마흔이 넘었다. 사실 자연스럽게 따르는 기록이지 않는가. 예전에는 개막 전 목표를 물으면 ‘부상 없이 시즌을 치르고 싶다라고 답했다. 지금 내 마지막 목표는 포스트시즌 진출이다. 할 수 있다면 우승까지 해보고 싶다. 매번 남들의 가을야구를 구경하는 것도 지친다. 은퇴 전에는 그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 그렇기에 한 해, 또 한 해가 아쉽다. 그래도 ‘우리도 할 수 있다라고 항상 믿는다. 지금도 희망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꼭 꿈을 이루고 싶다.”
박정진
1976년 5월 27일생
183cm 88kg
청주중앙초-청주중-세광고-연세대-한화
1999년 한화 1차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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