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촌스러운 게 좋아"…보정 없는 `인생샷` 직접 찍어보니
입력 2017-09-08 14:31  | 수정 2017-09-08 14:39
[사진 = 이유현 인턴기자]

"아날로그는 물리적인 사물과 경험이 사라져가는 영역에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재적 물건을 창조하고 소유하는 기쁨을 준다."
'아날로그의 반격' 저자 데이비드 색스는 자신의 책에서 옛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심리를 이같이 설명한다.
그의 말처럼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아날로그 사진이 젊은 세대 사이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때맞춰 즉석사진 부스가 보정 없는 '인생샷'으로 온라인상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즉석사진 부스는 과거 증명사진이 급히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빠르게 찍을 수 있도록 지하철역이나 공항에 주로 설치됐다.
그런데 최근 대학로·홍대 등 젊음의 거리를 대표하는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도 이 즉석사진부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부스 앞에서는 사진을 찍기 위해 몇십분간 줄을 지어 기다리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실용적인 용도로 이용됐던 즉석사진 부스가 감성적인 스튜디오로 부활했다. 마지못해 가는 곳이 아닌 찾아가는 '핫플레이스'로 거듭난 것이다.
어떤 매력이 20대의 발길을 이끄는 것일까.
[사진 = 이유현 인턴기자]
지난 7일 서울 홍대 한 영화관 내부에 위치한 즉석사진 부스는 개장 시간부터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두 명이 겨우 들어갈 비좁은 공간에 겨우 앉자 현금을 넣어달라 재촉하는 기계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투입구에 천 원짜리 몇 장을 넣고 한숨을 돌리기도 잠시 10초 카운트가 시작됐다.
5, 4, 3, 2, 1…. 자세를 채 정하기도 전에 '찰칵'하는 우렁찬 셔터 소리가 부스를 울렸다. 정신없이 지나간 한 컷에 같이 온 일행도 당황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또 한 번 의미 없는 10초를 흘려보내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카메라 렌즈를 쳐다봤다. "생각보다 10초가 빨리 지나가니 포즈를 정하고 찍는 게 좋다"는 어느 블로거의 뼈아픈 조언은 잊은 지 오래였다.
4초 같은 40초가 지나고 이내 부스 한 귀퉁이에서 네 장의 사진이 일렬로 나왔다. 사진 속에는 어색한 포즈에 어설픈 표정을 한 두 여자가 서 있었다. 몇 백장을 찍어 마음에 드는 한 장을 건지는 '셀카'에 너무 익숙해진 탓이다.
[사진 = 이유현 인턴기자]
즉석사진부스의 특징은 스티커 사진과 달리 보정을 거치지 않고 원본 그대로 인화된다는 점이다. 턱선을 갸름하게 만들기는커녕 잡티 하나도 제거할 수 없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사진의 색깔 뿐이다. 여기에 흑백 필터를 얹으면 흡사 90년대로 돌아간 듯한 향수를 느낄 수 있다.
아날로그 열풍은 비단 즉석사진 부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필름 카메라를 연상케 하는 앱 '구닥'은 자신이 찍은 사진을 3일 뒤에나 확인할 수 있음에도 57만이 넘는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흑백 사진을 전문으로 촬영하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사진관'은 데이트 코스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선 촬영 후 보정'을 필수 관문으로 거쳤던 젊은 세대가 불편함을 자처하면서도 '뽀샵(포토샵의 줄임말)'을 하지 않은 사진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같은날 즉석사진 부스를 찾은 대학생 이예은 씨(22·여) 이런 구닥다리 감성을 '색다른 즐거움'이라 표현했다. 이씨는 "사진을 보관할 수 있어서 셀카랑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며 "특히 요즘 셀카 앱과는 다르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촌스러운 감성이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젊은 세대가 디지털 기기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도 아날로그 열풍에 한몫한 듯 보인다. 대학생 김지호 씨(21·여)는 "요즘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지칠 때가 많다"며 "그래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옛것을 찾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이유현 인턴기자 / 영상 = 윤해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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