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과 지성] 마르틴 루터
입력 2017-09-08 10:34 
마르틴 루터

세상 사람들은
자기 엄마에게서
혹은, 거리에서 언어를 배운다
나는 시장에서 쓰는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싶었다
'마르틴 루터가 없었다면 괴테나 니체도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너무 많이 나간 이야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명제는 참에 가깝다. 루터는 종교개혁만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독일어의 표준도 만들어냈기때문이다.
1917년 10월 31일 가톨릭 사제이자 대학교수였던 루터는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95개 논제'라는 대자보를 붙인다.
"불경건한 자들이 돈으로 경건한 영혼을 살 수 있다면 도대체 신앙이란 무엇인가?"
"부자들보다 더 부자인 교황이 왜 자신의 돈으로 교회를 짓지 않고 가난한 신자들의 돈으로 교회를 짓는가?"
면죄부 판매에 대한 불만이 도화선이 된 이 '격문'은 때마침 발명된 구텐베르크 인쇄술 덕이 전 유럽으로 발빠르게 퍼져나갔다.
불씨를 지피는 데는 성공했지만 개혁이 완수되려면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성경이 필요했다. 교황청이 보낸 파문경고장을 참나무 아래서 불태워버린 루터는 산악지대인 아이제나흐의 성에 숨어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기 시작한다.

1534년,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서가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책값이 당시 송아지 한 마리 가격과 맞먹는 1굴덴이었지만 독일 내에서만 무려 50만부가 팔려나갔다. 글이 서툴렀던 평민들은 루터의 성경을 읽으며 독일어를 익혔다.
루터가 번역한 성경이 성공한 데는 몇가지 요인이 있었다.
우선 인쇄술의 발명이 큰 역할을 했다. 인쇄술 덕분에 루터의 성경은 엄청난 속도로 독일어권 전역으로 흘러갈 수 있었다. 수백명의 필경사가 몇 달을 매달려야 했던 일을 기계는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었다. 16세기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인쇄술은 20세기 후반에 발명된 인터넷 보다 훨씬 충격적인 발명품이었다. 얀 후스를 비롯한 루터 이전의 뛰어난 종교개혁가들이 대중들의 지지기반을 확보하지 못한채 모두 처형된 것만 봐도 인쇄술이 종교개혁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삽화'였다. 루터는 문맹이거나 독해력이 떨어지는 대중들을 위해 친구인 루카스 크라나흐에게 부탁해 성경에 삽화를 그려넣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민중들은 삽화를 보면서 성경의 높은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세번째 요인은 언어였다. 루터는 성직자나 귀족들이 쓰던 언어를 버리고 당시 저자거리에서 일반인들이 쓰는 단어와 문체로 성경을 번역했다. 표준 독일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루터 성경에서 비롯된 관용구들 중에는 지금까지 사용되는 것들이 많다.
루터의 번역능력은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그는 대단한 학식을 가지고 있었다. 교황청의 모든 공격을 받아낼 정도의 역사적 신학적 지식을 장착하고 있었고, 그것들을 설득력있게 써내려갈 논리와 문장력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광부의 아들이었던 루터는 당시 독일 민중들이 쓰는 일상어를 꿰뚫고 있었다. 번역에서 요구되는 모든 덕목을 다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그가 썼던 '번역에 대한 공개편지'라는 글이 지금도 남아있다.
"독일어를 배울때 라틴어 문헌을 찾아보는 독일사람은 없다. 엄마에게서, 거리의 사람들에게서, 시장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배울 뿐이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언어 그대로 번역을 한다. 그래야 사람들은 내가 독일어로 말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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