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JSA 벙커 의문사' 김훈 중위 아버지 김척 "진실 알리려 노력…잘못 인정해야 국민의 군대"
입력 2017-09-01 10:54  | 수정 2017-09-08 11:05
'JSA 벙커 의문사' 김훈 중위 아버지 김척 "진실 알리려 노력…잘못 인정해야 국민의 군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지하벙커에서 의문사 한 김훈중위가 순직 인정을 받음에 따라 그의 아버지 김척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1일 한 매체와의 통화에서 김척씨는 "아들 훈이는 죽었지만, 미력이나마 진실을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김훈 중위는 지난달 31일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 결정으로 세상을 떠난지 19년 만에 순직 처리됐습니다.

김 중위는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JSA 소초(GP)에서 머리에 총상을 당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군 수사당국은 서둘러 사건을 자살로 결론 내리고 덮으려고 했지만, 타살 의혹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김 중위의 사망이 의문사가 된 이유입니다.

사건 현장에서는 타살 가능성을 암시하는 흔적이 나왔습니다.

김 중위의 손목시계와 사건 현장의 지뢰 박스 등이 부서져 있어 김 중위가 사망 직전 누군가와 격투를 벌인 게 아니냐는 의심을 낳았습니다.

김 중위의 왼손에서 화약흔이 발견된 점도 타살 의혹의 근거가 됐습니다.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방부와 함께 김 중위의 사망 당시 사격 자세로 권총 발사 실험을 했는데 실험 참가자 12명 중 11명이 오른손에서 화약흔이 나왔습니다.

일각에서는 김 중위 소속 부대 일부 장병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한군 GP를 오가는 심각한 군기문란 행위를 저질렀고 이를 뿌리 뽑으려던 김 중위가 살해됐을 수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습니다.

김 중위의 의문사로 유가족의 삶도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예비역 중장으로, 명예롭게 군 생활을 마친 김척씨는 사건의 진상규명과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자신이 평생 몸담았던 군을 상대로 지난한 싸움을 벌여야 했습니다.

타살 의혹이 불거지자 국방부는 특별조사단을 편성해 사건을 재조사했지만, 김 중위가 자살했다는 결론은 바꾸지 않았습니다.

사건 직후 군 당국이 현장 보존을 제대로 하지 않는 등 부실한 초동 수사를 한 탓에 진상규명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김척 씨는 1999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2006년 12월 군 당국에 부실한 초동 수사의 책임이 있다며 유가족에게 정신적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당시 주심 재판관은 김영란 전 대법관이었습니다.

대법원은 군 당국이 초동 수사에서 현장 조사와 보존을 소홀히 하고 주요 증거를 확보하지 않았으며 소대원들의 알리바이 조사도 형식적으로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척 씨는 "수사팀이 조작을 하지 않았다면 19년 동안 이 고통을 겪었겠는가, 가정이 파탄이 났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2012년에는 국민권익위원회가 국방부에 김 중위의 순직 처리를 권고했지만, 국방부는 5년이 지나서야 김 중위 사망의 공무 수행 관련성을 근거로 순직 처리하게 됐습니다.

국방부는 정확한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는 '진상규명 불능' 사건도 사망의 공무 수행 관련성이 인정될 경우 순직 처리할 수 있도록 군인사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 중입니다.

김척 씨는 "군 당국이 아들의 순직을 인정하지 않아 오랜 세월 고통을 겪었다"며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인정하는 게 국민의 군대"라고 말했습니다.

군 사건 수사에도 민간 전문가를 포함한 '제3의 기관'이 참가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게 김 씨의 주장입니다.

그는 "의문사도 세상에 알리고 공론화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런 노력을 통해 제2, 제3의 김훈 중위 사건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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