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기는 타인의 삶 살아보는 것…외교와 유사"

■ '영화, 뉴욕을 찍다' 펴낸 박용민 외교부 아중동 국장
"영화는 잠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건 외교에서도 중요한 기술입니다. 전쟁을 하지 않고 호혜적으로 문제를 풀 길을 찾는 것이 외교의 궁극적 목표인데, 상대방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일을 해낼 수가 없습니다."
박용민 외교통상부 아중동 국장이 최근 책 '영화 뉴욕을 찍다'를 펴냈다. 박 국장은 북핵협상과 과장, 주 유엔대한민국대표부 공사참사관, 주 르완다대한민국대사관 대사 등을 지낸 26년 차 외교관이다. 박 국장이 영화에 관련된 책을 펴낸 건 벌써 세 번째다. 외교관답게 글로벌 정세에 대한 풍부한 분석을 담은 것이 무엇보다 큰 특징이다. 그는 평소 후배들에게는 영화 뿐만 아니라 소설 읽기도 강조한다. 외교적 이슈로 매일같이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글로벌 세상에서 이 역시 '타인이 되어 보는' 좋은 훈련법이기 때문이다.
다방면에 조예가 깊은 그는 부임지에 갈 때마다 해당 국가와 관련된 문화, 음식, 음악과 관련된 책을 꾸준히 써왔다. 문화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은 외교 업무를 하는데도 '촉매' 역할을 해왔다. 과거 인도네시아에서 다자관계인 아세안 업무를 담당할 땐 그들과 함께한 밴드활동이 큰 도움이 된 적도 있다. 누군가와 친해질 수 있는 무기가 늘 장착되어 있는 셈이다.
이번 책에서는 국내 미개봉작을 포함한 총 273편의 영화 이야기를 담았다. '대부'부터 '스파이더맨'까지 시대를 관통하는 영화들이 뉴욕의 역사, 경제, 문화 이야기와 맞물려 깊이를 더했다.
특별히 뉴욕이 무대가 된 사연은 업무지와 관련이 있다. 그는 과거 5년 반 동안 뉴욕의 유엔대표부에서 근무했다. 유엔대표부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휴일도 없이 언제든 '비상콜'이 울리면 본부로 뛰어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한국은 늘 북핵 및 대북제재와 관련된 이슈와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렇게 숨 돌릴 틈 없는 긴장의 연속이지만, 그는 변화하는 뉴욕과 영화 이야기를 꾸준히 기록했다. 영화와 여행에 대한 경험을 글로 남기는 것은 그의 오래된 습관이기도 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뉴욕은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눈에 보였지요. 영화에서 보던 범죄로 얼룩진 뉴욕은 부동산 시장의 활황으로 변모했습니다. 다시 2012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바라본 국제정세는 세기말보다 더 세기말적이었죠. 영화 '스타워즈'에서 제국이 역습하듯이 '역사의 역습'이 한창이었죠."

그는 책에서 유엔본부가 있는 미드타운 이스트 지역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와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를 정치학적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자유를 지키는 주체 등을 다루며 새롭게 영화를 볼 수 있는 시각을 던져준다. 물론 '뉴욕은 언제나 사랑 중' '티파니에서 아침을' 같은 로맨스 영화도 빠지지 않았다.
그는 영화로 뉴욕을 안내하는 여행기 같은 책을 마치기까지 2년의 시간 동안 세계적으로 반이민, 반난민같은 외국인 증오현상이 급격히 확산됐다며 이럴 때일수록 여행자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전했다. 누구나 여행자가 되는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당부이기도 했다.
"여행자는 안락하고 익숙한 자기편의 세계에 머물지 않고, 굳이 다른 삶을 경험하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모든 여행자들은 잠재적 증인이자 소통자이고 안내자입니다. 저는 여행자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우리 삶의 현장이 함부로 우쭐댈 만큼 대단치도, 쉽게 절망할 만큼 암울하지도 않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이윤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