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대법, 삼성전자 LCD 노동자 희귀병 최초 산재 인정
입력 2017-08-29 14:01  | 수정 2017-09-05 14:08

대법원이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일하며 얻은 희귀질환인 '다발성 경화증'을 산업재해로 인정해달라는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9일 이모 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양 승인을 거부한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깼다. 그리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업무와 질병 사이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 씨는 2002년 당시 18세의 나이로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그 후 2007년까지 LCD사업부 공장에서 패널 화질검사 일을 하던 이 씨는 퇴사 이듬해인 2008년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다발성 경화증은 중추신경계에 이상이 생겨 감각이 없어지거나 신체 일부에 마비가 오는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희귀질병이다.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3.5명 정도에서 발병한다.
이 씨는 작업과정에서 전자파와 화학물질에 노출, 불규칙한 교대근무, 차단된 햇빛을 이유로 들며 "업무상 이유로 병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이 씨는 근로복지공단에 낸 요양승인신청을 거절당하자 법원에 소송을 냈다.

1·2심은 병과 업무의 연관성을 발견하기 어렵다며 이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씨가 작업 환경상 과로를 하고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제출된 증거만으로 질병과 업무 사이 연관성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판결했다. 2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씨의 발병·악화는 업무와 타당한 인과관계가 있을 여지가 크다"며 이 씨 승소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 했다.
대법은 ▲이 씨가 입사 전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고 이 질병과 관련해 유전적 병력이나 가족력이 없는 점 ▲발병 요인으로 유기용제 노출, 햇빛 노출 부족에 따른 비타민D 결핍 등이 거론되는 점 ▲역학조사 방식 자체에 한계가 있으므로 증명이 어렵다는 사정은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판단해서는 안 되는 점 등을 이유로 이 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날 대법원 판결은 하급심 판단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법 관계자는 "삼성 LCD·반도체 공장 근로자가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 측이 산재를 인정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올해 들어 서울고법에서만 산재를 인정한 판결이 2건 확정됐다. LCD·반도체 제조공정에서 일한 2명은 올해 5월과 7월 각각 승소 판결이 확정됐다. 나머지 1명은 현재 근로복지공단에서 업무상 재해 여부를 심사 중이다.
이종란 노무사는 "노동자에게 증명 책임을 돌리는 잘못된 법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본 판결"이라며 "삼성전자도 공장 노동자의 업무 여건을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디지털뉴스국 김제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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