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몰카`잡는 女보안관들 "화장실 나사구멍에도…"
입력 2017-08-21 16:40  | 수정 2017-08-21 17:31
[사진 제공 = 종로 경찰서]


지난 18일 오전 11시 서울 한복판에 '몰래카메라(몰카) 단속반'이 떴다.
'여성안심보안관'이란 글자가 크게 새겨진 조끼를 입은 이들은 종로경찰서 경찰관, 여성가족부 인권 점검 보호팀과 함께 돌아 다니며 이 일대 공중화장실 긴급 점검에 나섰다. 몰카 근절 예방법이 적힌 팸플릿과 부채를 시민에게 배포하고 위험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호신용 호루라기를 나눠주는 등 시민 안전 캠페인을 펼쳤다. 인사동 공공화장실을 시작으로, 탑골 공원 화장실과 종각역 역사 화장실 등을 순차적으로 점검했다.
화장실 앞에 '점검중' 안내판을 펴놓으면 본격적인 '몰카 찾기'가 시작된다.
여성 보안관들은 무전기 모양의 기계를 꺼내 화장실 전등과 비데 속 등 한 칸 한 칸 빠짐없이 화장실을 훑는다. 변기와 쓰레기통 주변은 물론 휴지 걸이, 손잡이 나사까지 몰카를 숨겨놨을 법한 모든 곳이 점검 대상이다. '전자파 탐지기'의 기계 창에 떠 있는 초록색 바가 빨간색으로 바뀐다면 몰카가 설치됐다는 신호다. 그러면 렌즈를 감지하는 기계를 꺼내 의심 가는 곳에 레이저를 비춰본다. 카메라 렌즈가 감지될 경우에는 삑삑 소리와 함께 진동이 온다. 마지막으로 벽에 '남의 몸을 몰래 찍으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경고문구 스티커를 붙이면 몰카 탐지 작업이 끝난다.


◆ "내 가족에게도 생길 수 있는 일"…손들고 나선 지역 주민들
"내 딸에게도 닥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만있을 수 없겠더라구요"
지난해 8월 1일부터 활동했다는 김태성 씨(61·여)는 '딸'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으로 처음 이 일을 시작했다고 입을 열었다.
김 씨는 "날로 몰카 범죄가 심각해지면서 지역구 안전을 위해 지난해 여성안심보안관에 지원했다"면서 "'보안관'이라는 이름까지 얻고 나니 책임감이 절로 생겨 몰카 근절을 위해 일주일에 3번 시찰에 나선다"고 말했다.
출범한 지 막 1년이 된 '여성안심보안관 제도'는 서울시가 '몰카와의 전쟁'을 내세우면서 도입한 정책이다.
지역 주민을 상대로 모집해 전문 교육을 한 후 서울 25개 자치구에서 2인1조로 총 50명 배치했다. 이들은 전문 탐지장비를 지니고 지하철역·개방형 화장실, 수영장, 체육시설 탈의실 등을 점검한다. 특히 지역구 내 경력 단절여성들이나 취업준비생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효과까지 있어 '뉴딜일자리 정책'으로 꼽힌다. 몰카 탐지 작업뿐 아니라 시민 예방 캠페인 등을 전개하면서 여성들이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지만 남모를 고충도 상당하다.
용산구청 소속에서 파견을 나온 박광미(49·여) 여성안심보안관은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시민들이 경각심을 갖고 또 몰카 범죄를 줄일 수 있다는 기대도 있지만 남들이 잘 하지 않는 화장실을 훑고 다니면서 자괴감을 느낄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공공 화장실의 경우 팻말을 걸어 놓으면 내부 검사를 진행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민간 건물 점검에 나설 때는 상황이 다르다. 일부 건물 관리인들이 '우리는 그런 거 없다'며 손사래를 치며 거부하거나 상가 주인이 "누구 신고로 왔냐"며 항의하는 경우가 간혹 발생한다.
순탄하지 않은 작업임에도 이들이 주 3회(월·수·금)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몰카 색출 작업을 벌이는 이유는 '자부심' 때문이다.
박 씨는 "저도 여자이고 두 딸을 가진 엄마로서 아이들이 생각이 나서 더 열심히 점검하게 되고 또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면서 "오늘같이 시민들이 여성안심보안관들의 활동과 몰카 예방 캠페인에 뜨거운 호응을 보내주면 절로 힘이 난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 종로경찰서]
이날 몰카 근절 캠페인에는 가수 긱스도 참여해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긱스 멤버 릴보이(27·남)는 "주변에 실제로 (몰카로 인한) 데이트 폭력을 당했던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 심각성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길 기회는 없었다"면서 "친누나가 있어 남일 같지 않았는데 때마침 종로경찰서에서 요청이 오면서 적극 참여하게 됐다"고 소감을 털어놨다. 이번 캠페인을 통해 여성안심보안관 제도를 알게 된 배성원(31·남)씨는 "기사를 통해 몰카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며 "가장 큰 문제는 (몰카를) 아무나 살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몰카 판매를 금지하는) 법제적 장치가 선행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몰카 범죄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카메라로 타인의 신체를 찍어서 배포·판매 하는 경우만 처벌이 가능하다.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있는 소형·특수 카메라 등 신종 몰카의 판매를 금지하는 법률은 아직 없다.

◆ 몰카 적발 건수는 '제로'…범죄 예방·홍보가 더 큰 목적
김태성(60)·박광미(49)·우다은(27) 용산구 여성안심보안관 [사진 제공 = 윤해리 인턴기자]
경찰청에 따르면 2006년 517건에 불과했던 몰카 범죄는 10년이 지난 지난해 5185건으로 급증했다. 같은기간 전체 성범죄에서도 몰카가 차지하는 비율은 3.6%에 불과했으나 2015년에는 24.9%로 급증했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여성안심보안관들이 발견한 몰카는 '0개'다.
공공 화장실을 제외하고 술집, 노래방 등 사적 소유 건물 등 민간 점검은 거의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민간 건물에서 몰카가 나오면 건물 평판 하락이나 사건 접수 등으로 문제가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개인 건물주들이 꺼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여성안심보안관들은 "몰카를 발견하는 것보다 우리의 존재 자체로 몰카 범죄가 줄어드는 것이 목표"라고 입을 모았다.
최근에는 학교나 사무실 등 민간 기업에서 먼저 연락이 오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몰카 범죄에 대한 시민 불안이 커지면서 민간에서도 몰카 점검의 필요성을 절감한 결과다. 또한 몰카 안심 점검을 받게 되면 입주자들의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고 빌딩 이미지에도 긍정적이라는 판단을 한 건물주들의 요청도 이어지고 있다.
이용철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여성정책담당 주무관은 "내년도 예산 편성이 확정되면 구역별 여성안심보안관을 현 2명에서 4명으로 증원하고 온라인으로 신청을 받아 몰카 점검 영역을 넓혀갈 예정"이라며 "자연스럽게 민간 기업까지 여성안심보안관의 활동 영역을 넓힐 것"이라고 밝혔다.
[디지털뉴스국 김규리 기자 / 윤해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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