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일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계란 농장 이름과 검출량, 난각 코드(계란 껍데기의 식별 번호) 등을 공개하고 있지만 일부 계란에서는 난각 코드가 아예 없거나 중구난방으로 표기가 제각각 달라 명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면서 소비자 혼란이 커지고 있다.
경주 지역에선 '살충제 달걀'이 나온 산란계 농장과 동일한 난각 코드를 사용하는 농장이 엉뚱한 피해를 입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계란 유통에 대한 관리 감독이 총체적으로 부실하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18일 매일경제가 실제 서울의 대형 마트·수퍼마켓 등을 둘러보니 상당수 계란의 껍질에는 '00농장'이라는 식으로 농장 이름만 찍혀있을 뿐 생산된 지역을 나타내는 숫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살충제 달걀이 검출되기 시작한 지난 15일부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카페에도 "계란 껍질에 번호는 없고 농장명만 찍혀 있어 어디서 생산된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농장명만 보고는 생산 지역을 알 수가 없어 직접 마트에 전화로 문의를 하고 있다" 등 불안을 호소하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현행 축산물 표시 기준에 관한 정부 고시에 따르면 모든 계란에는 최소포장단위에 유통기한, 생산자명, 판매자명 및 소재지, 제품명, 내용량 및 기타표시사항을 표시하고 난각에는 '00농장' 등 생산자명이 적혀 있어야 한다.
문제는 소비자들 상당수는 상품 구입 후 개봉 하면서 생산자 관련 정보가 표시된 종이띠 형태의 포장을 버린다는 것. 소비자들은 '00농장'만 표시된 계란 껍데기만 갖고 생산지역을 비롯해 살충제 계란 유무를 정확히 확인 할 수 없어 곤란을 겪고 있다. 경기도 고양 화정동에 사는 주부 윤모씨(39)는 "냉장고 속 계란 껍질에 그냥 '고덕농장'이라고 표시돼 확인할 길이 없어 난감했다"며 "마트로 다시 찾아가 구입 후 버렸던 겉 포장지를 확인한 후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들쭉날쭉 표기 방식도 문제로 지적된다. 예를 들어 김준우(가명)씨 소유 경기도 '00농장'계란 껍데기에 표시되는 글자는 '00농장' 외에도 '08 00', '08 KJW' 표기도 가능하다. 이 중에서 '08'은 경기도, 'KWJ'는 김준우 씨의 영문 이니셜이다. 결국 '08 00'은 경기도(08) 소재 '00 농장'이라는 뜻이며 '08 KJW'는 경기도 소재 김준우 씨(KJW)의 농장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같은 표기 이유를 알 턱이 없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00농장' '08 KJW' 같은 난각 표시가 암호처럼 느껴진다. 식약처 관계자는 "생산자명을 이니셜 등의 기호로 표시하는 경우에는 지역을 나타내는 숫자가 의무적으로 포함되는 게 맞지만 기호가 아닌 농가명이 그대로 들어가는 경우에는 지역 코드가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경주에서는 살충제 성분 조사결과 아무 문제 없는 한 농장이 경북 칠곡군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은 농장의 난각코드인 '14소망'을 동일하게 표시해 사용하다가 소비자들의 환불요구와 도매장의 납품 거부로 엉뚱한 피해를 겪기도 했다.
해당 농장 관계자는 "분명히 다른 농장인데 문제가 된 살충제 달걀 생산자와 똑같은 이름을 쓰는 바람에 농장 문을 닫게 생겼다"며 하소연 했다. 이는 난각코드가 신고사항이다가 보니 같은 이름을 쓰는 농장 간 발생한 문제지만 정부가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도 크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심지어 아예 난각 코드 자체가 찍히지 않은 채 유통되는 계란도 발견되고 있다는 것.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살충제 계란'이 나온 산란계 농장 총 45곳 가운데 계란에 난각 코드가 없는 농가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난각 표시를 위해 선별기와 표시기, 세척기 등 수천만원의 장비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영세 농장 중에는 이를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게 양계업계의 설명이다. 난각(계란 껍데기) 코드 표시는 현행 법령상 의무사항임에도 관리당국이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정부도 이런 한계를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18일 본지 취재결과 식약처는 올해 3월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계란 생산자 정보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계란 난각에 생산자명 대신 사업장 명칭을 표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축산물의 표시기준 일부개정고시(안)'을 행정예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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