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조용히 살고 싶다` 침묵시위 효자동 주민에 되레 역정 낸 민주노총
입력 2017-08-17 16:03  | 수정 2017-08-18 07:41
17일 오전 청운·효자동 주민들이 민주노총 산하 노동단체가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 인도 위에 설치한 불법 농성텐트 인근에 모여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유준호 기자>

17일 오전 '청운·효자동 집회 및 시위 금지 주민대책위원회'에 소속된 한 주민이 주민센터 앞 인도 위에 설치된 불법 농성텐트를 가리키며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유준호 기자>
청와대 이웃사촌 청운·효자동 주민들이 새 정부 출범 이후 연일 계속된 시민·노동단체의 집회에 견디다 못해 거리로 나왔다. 3개월간 300회에 달하는 '집회 홍수' 속에 주민들은 '제발 조용히 좀 살자'며 침묵시위로 하소연 했다. 반면, 불법 농성 텐트를 치고 보도를 점령한 노동단체 조합원들은 되레 "왜 여기 와서 이러냐"고 역정을 냈다.
17일 오전 '청운효자동 집회·시위 금지 주민대책위원회'는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주민들은 성명문을 통해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우리 동네가 청와대와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매일 기자회견, 장기 천막농성, 대규모 행진 등으로 인도를 점령 당하고 있다"며 "전국의 각종 현안들을 전부 들고 와 마이크를 사용해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하는 통에 이제 인내에 한계가 왔다"고 토로했다.
주민대책위가 경찰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새 정부 출범 이후 약 3개월간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만 총 300여건의 집회·시위가 열렸다. 주민대책위는 "이전에는 없었던 주제의 집회와 시위가 매일 새로 생긴다"며 "하루에도 수차례씩 청와대를 향해 외친다는 집회 시위 소리에 정작 힘들고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이곳에 살고 있는 우리 주민들"이라고 하소연했다.
이날 특히 이목을 끈 것은 청운·효자동 주민들이 보인 '집회 반대 집회' 방식이다. 주민들은 기자회견과 집회에서 마이크나 확성기를 사용하지 않았고, 구호도 외치지 않았다. 단지 피켓만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침묵시위'를 택했다. 매일 고성과 소음에 시달리면서 자신들 만이라도 조용한 시위를 개최하겠다는 취지였다.

침묵 집회에 참여한 주민 박복순 씨(70)는 "남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을 해가면서 집회를 해야지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하는 집회는 온당한 집회라고 보지 않는다"며 "이곳에서만 46년을 살았는데 매일 손주 손녀들에게 데모하는 것만 보여줘야 하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주민대책위원장을 맡은 김종구 씨도 "인근의 집회 소리를 자체 측정한 결과 현행법상 주간 소음 기준인 65㏈(데시빌)을 훌쩍 뛰어넘어 최고 90㏈까지 측정됐다"며 "집회 참가자들이 밤낮 없이 떠드는 데 제발 조용히 좀 살자는 게 우리 주민들의 공통된 하소연"이라고 말했다.
매일 같이 확성기를 틀어대는 시민·노동단체와 차별점을 보인 셈이지만, 민주노총 산하 노동단체 조합원들은 이들에게 되레 역정을 냈다. 이곳에서 지난 6월 초순부터 불법 농성텐트를 치며 종로구청과 실랑이를 계속해 온 노동단체 관계자는 항의하는 주민들을 향해 "우리는 정상적으로 집회를 신고했으니 방해하지 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새 정부의 기조에 맞춰 경찰이 '느슨한 집회 관리 방침'을 고수하면서 인근 주민들의 피해가 더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100m 이내로 집회·시위가 엄격히 금지된 청와대 분수대 광장과는 달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인근은 지난 촛불집회 이후 집회와 시위를 위한 시민·노동단체의 진입이 허용돼 왔다. 경찰도 청와대 분수대 앞 기자회견이 확성장치나 인원이 많아 집회로 변질될 우려가 있는 경우 참가자들을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인근으로 몰아내고 있는 형편이다.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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