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살충제 계란` 농장 발견하고도 공개까지 27시간…후속조치 미비
입력 2017-08-16 17:11  | 수정 2017-08-23 17:38

#. 경기 안양시에 사는 주부 강 모씨(47)는 지난 15일 오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08번이 찍힌 계란은 모두 폐기해야 한다"는 글을 읽고 구입한지 이틀 된 계란 한 판을 모두 버렸다. 이후 저녁시간이 돼서야 "'08마리', '08LSH' 난각이 있는 계란은 폐기하는 것이 좋다"는 공식적인 언론보도가 나왔지만 살충제 계란에 대한 공포로 일찌감치 폐기해버린 것이다. 강 씨는 "해당 계란이 살충제에 오염된 걸로 오해해 가족들 모두 이미 섭취한 계란 때문에 불안감에 떨었다"며 "임신부인 딸을 데리고 병원을 갈까 고민하던 차에 공식 발표가 나왔지만 추가로 검출되는 농장이 있을 것 같아 안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충북 충주시에 사는 정 모씨(56)도 지난 15일 살충제 계란에 대한 보도를 접하고 약 3주 전에 인근의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08송일' '10옥천농장' '11부강양계' 등 다양한 출하지가 찍힌 달걀을 모두 버렸다. '08'이 경기도를 의미한다는 소식까지 접하고는 도무지 계란을 그냥 놔둘 수 없었다. 정씨는 "남양주와 광주에서 농약(피프로닐·비펜트린)을 썼다면 다른 경기도 지역의 농장에서도 그럴 가능성이 높은 것 아니냐"며 "안심하고 먹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전부 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0'은 옥천이라는 걸로 봐서 충청북도에서 나온 달걀인데, 여러 곳에서 출하된 계란이 섞여서 소비자들한테까지 오는 것이라면 그런 과정(유통)에서 살충제가 여기 저기 옮겨지는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살충제에 오염된 계란을 출하한 농장이 추가로 속속 드러나면서 살충제 계란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지만 축산물 안전관리를 맡고 있는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때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농식품부가 벨기에 살충제 계란 파동 이후 선제적 검사 대상을 늘리며 오염 농가를 발견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소비자 안전과 관련된 후속조치가 제대로 내려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행 축산물위생관리법에 따르면 농식품부는 계란 생산단계의 안전관리업무를 맡고 유통과 소비단계는 식약처에서 관리하도록 돼 있다. 축산물위생관리법의 소관부처는 식약처지만 생산단계 업무를 농식품부에 위임했기 때문이다.

두 부처에서 생산과 유통을 따로 관리하면서 소비자 안전에 대한 정보전달이 제대로 안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농식품부가 14일 오후 3시께 2개 농장의 살충제 오염 사실을 인지했으나 식약처는 15일 오후 6시가 돼서야 해당농장의 상호와 계란에 새겨진 코드를 공개했다. 이미 구입한 계란이 살충제에 오염됐는지가 소비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지만 이를 공개할 수 있는지 권한 문제를 놓고 공개하는데 27시간이 걸린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오전 "이번 건의 주무부처가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로 이원화돼 중복발표가 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식약처는 이미 비축해둔 계란 재고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미 유통된 계란을 추적해 폐기하겠다고 했지만 일선 급식업체·학교 등은 창고에 쌓인 계란을 두고 불안감에 떨고 있다. 이날 서울시교육청 등 전국 주요 시·도교육청은 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급식에 계란 사용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미 사들인 계란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에서다.
대규모 식품기업은 식품안전센터 등 자체 검사기관을 통해 재고분에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는 지 여부를 직접 검사하기도 하지만 자체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중소 식품기업들은 재고분에 문제가 있는지 여부를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한 급식업체 관계자는 "정부는 문제가 발생한 농장부터 찾고, 거기서 계란 유통 받은 가공업체는 나중에 찾아내서 조치 취하겠다는 입장"이라며 "하지만 이미 풀려 있는 계란 중에 문제가 있는 계란이 섞여 있을 수도 있는 만큼, 일정한 방향점을 제시해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영세업체나 계란을 가공품이 아닌 요리로 소비하는 외식업체라면 재고 계란으로 제품을 만들고 소비자가 벌써 그걸 섭취했으면 나중에 문제가 불거져도 별다른 방법이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14~15일 발견된 6개 농장에 쌓인 재고와 1차 유통단계인 식용란 수집·판매업자, 중간상인으로 출하된 물량은 추적해 회수·폐기조치를 취하고 있으나 이미 최종소비자로 판매된 물량에 대해서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날 경기도는 살충제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진 남양주와 광주시 산란계 농장에서 생산한 계란 20만4000개를 회수해 폐기 조치했다. 또 남양주와 광주 농가가 중간 유통상인을 통해 출하한 12만9000개를 모두 회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살충제 살포 시점과 검출 시점 이후 얼마만큼의 계란이 최종소비자에 전달됐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 양계·유통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석민수 기자 / 김세웅 기자 /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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