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미국 월가에 부는 `친기업` 트럼프 훈풍
입력 2017-08-07 16:55 

미국 월가에 트럼프발 '규제 철폐'의 훈풍이 불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금융규제 완화 기대감에 한껏 취해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금융주가 뜨거운 랠리를 펼친데 이어 미 금융규제 당국이 월가에 부과한 벌금 규모가 전년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대폭 줄어든 것이다.
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선물거래위원회(CFTC), 금융산업규제당국(FINRA) 등 금융규제 당국이 올해 상반기 월가 금융기관 또는 개인에게 부과한 벌금은 총 4억8900만달러(약 5510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이는 2010년 이후 최저 수준이며 지난해 상반기 부과된 벌금 14억달러(약 1조5790억원)와 비교해 35% 수준에 불과하다.
앤드루 볼머 버지니아 법대 교수가 연방 법원 판결문을 분석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SEC가 올 상반기 부과한 벌금은 3억1800만달러로 지난해 상반기 7억5000만달러 대비 절반에도 못 미쳤다. SEC는 세부 내용은 공개하지 않은 채 "지난해나 올해나 제재 건수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규제당국이 보다 친 기업적인 입장으로 돌아선 점이 벌금액 감소의 주요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프로비즈니스'를 표방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는 월가 금융기관의 족쇄로 인식돼 온 '도드-프랭크법(Dodd-Frank Act)'의 문턱을 대폭 낮추려 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 대선 기간 중 "대통령이 되면 연방 정부 규제의 70%를 폐기하겠다"고 호언장담한데 이어 당선 수락 연설을 한 직후인 지난해 11월 10일 도드-프랭크법 폐기를 전격 선언한 바 있다. 공화당이 마련한 '도드-프랭크법 폐기법안'은 지난 6월 하원을 통과하고 상원 표결을 기다리고 있다.
전 SEC 고위 관리였던 토머스 스포킨 버클리 샌들러 로펌 파트너는 "트럼프 행정부는 SEC와 CFTC에 새로운 우선 순위를 부여하고 있다"면서 "규제에 중점을 둔 보수적인 행정부에서 사업 친화적인 행정부로 전환됐다는 것은 어젠더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감독기관들은 적잖은 변화를 겪고 있다. SEC와 CFTC, FINRA 등 3개 규제 기관 모두 지난 5개월새 법 집행 담당 책임자를 교체했다. SEC와 CFTC는 기관장이 바뀌었고 정원이 5명인 위원회에 공석이 발생해 2~3명으로만 운영되는 등 기존보다 적은 숫자로 운영되고 있다.
마크 숀필드 전 SEC 뉴욕지국장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위원회에 공석이 있다는건 규제 집행이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예를 들어 위원이 2명 밖에 없을 경우 1명만 반대해도 규제 집행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취임한 제이 클레이튼 SEC 위원장은 기업에 부과되는 과도한 벌금이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만큼 기업에 벌금을 부과하는 것 보다는 문제가 되는 개인을 처벌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수 차례 피력했다.
'월가의 제왕'으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은 "미 경제를 가로막는 가장 큰 공포는 잘못된 공공정책"이라며 겹겹이 쌓인 규제 덩어리를 풀어내는 데 속도를 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모펀드업계 제왕'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은 "현재 미국의 금융규제는 안전과 건전성에 너무 치중해 있다"면서 "도드-프랭크법에 담겨 있는 과도한 규제 조항은 축소·보완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다만 벌금 규모의 감소와 트럼프 행정부의 친기업 정책을 직접적으로 연관짓는건 아직 무리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친기업 정책 이외에도 벌금 감소를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많다는 지적이다. 올해의 극적인 벌금 규모 감소는 지난해 상반기에 예외적으로 큰 벌금 부과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빚어진 착시효과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CFTC의 벌금 부과액은 지난해 상반기 6억300만달러에서 올 상반기 1억5400만달러로 급감했는데, 이는 지난해 5월 부과된 두 건의 벌금이 워낙 컸기 때문이라고 WSJ은 분석했다. SEC 역시 지난해 몬산토에만 8000만달러 벌금을 부과하는 등 거액의 벌금을 부과한 건수가 많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 부과됐던 벌금에 대한 집행이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이뤄진 것도 영향을 끼쳤다고 WSJ는 분석했다.
제임스 맥도널드 CFTC 집행 담당 국장은 "벌금 부과액이 매년 다른 것은 정상적인 현상"이라며 "벌금 부과액 감소가 감독 당국이 불법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방향으로 입장을 전환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맥도널드 국장은 이어 "우리는 법 집행에 있어 지체하지도, 멈추지도, 봐주지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낸시 콘돈 FINRA 대변인도 "활발한 법 집행은 우리의 감독활동의 핵심"이라며 "벌금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서울 = 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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