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지식서비스산업 `듣보잡` 육성 절실
입력 2017-07-31 16:45 

대전에 있는 우리안과 원장인 민병무 씨는 최근 독일과 대만 의료기기업체와 각막 형태 교정술과 관련한 업무제휴 협약을 체결했다. 민 원장이 기술과 아이디어를 제공하면 해외 의료기기 업체는 민 원장의 주문에 맞춰 의료기기를 제작한다. 민 원장은 15년 전부터 수술을 받은 이들의 각막 지형도와 시력 등에 대한 데이터를 모아 이를 분석해 왔고,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취득했다. 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한 셈이다. 민 원장은 "내 사업 모델은 애플"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각막 교정술 특허를 적용한 의료장비는 전 세계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지만 환자 진단과 병리학적 분석은 한국이 독점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민 원장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편안한 삶을 찾아 의대에만 몰리는 국내 현실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주문했다. 그는 "국내 최고 인재라고 할 수 있는 의대생에게 4차 산업혁명 마인드를 집어 넣어 의료·바이오 관련 비즈니스에 진출하게 하면 된다"며 "미래 일자리 창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키워드는 융·복합이다. 국경을 뛰어 넘는 지식서비스 산업의 대표적인 예가 의료·바이오 산업이다. 의료·바이오 업종은 정보통신기술(ICT)과는 달리 기술표준이 없다. 인종·지역별 차이는 관찰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분야 기술은 인류 전체에 보편적인 특성을 갖는다. 기술만 확보하면 시장 제한 없이 산업을 키우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큰 장점이 있다는 얘기다.
취업 유발계수를 봐도 의료업종은 기존 제조업을 뛰어 넘는다. 전통적인 효자 노릇을 해 왔던 자동차는 8.8명, 반도체는 3.2명인데 비해 의료산업은 14.7명으로 고용 효과가 훨씬 크다. 아시아권에만 비행거리로 3시간 내 위치한 인구 100만명 이상 도시가 6곳이나 존재한다는 점도 한국이 이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키워야 할 당위성을 더한다. 글로벌 의료·바이오 허브로 키운다면 미래 일자리는 따놓은 당상이다.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고령화는 전 세계적인 추세고, 지금은 개발도상국에까지 의료기반이 깔려 있다"며 "더 이상 질병에 국한되지 않고 건강을 돌보는 쪽으로 시장 잠재력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 하에서는 △원격 진료 코디네이터 △의료소송분쟁 조정 전문가 △유비쿼터스 헬스 전문가 △의료 빅데이터 전문가 등이 과거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직업 '듣보잡(Job)'으로 떠오를 것이란 전망이다.
지식서비스 업종과 제조업의 결합도 가능하다. 미국의 스포츠 의류 업체 '언더 아머'는 자사 제품에 센서를 부착해 맥박·운동량 등 정보를 모은 뒤 스마트 워치에 보여주고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한다. 운동화·의류 회사가 인간의 생체 정보를 축적하고, 의학·산업적으로 응용한 사례다.
한국은 인재 측면에서 의료·바이오 산업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여건이 돼 있다. 제조업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지식서비스업으로 시각을 전환을 하면서 바이오·헬스케어 분야 육성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개발시대 때는 물리학과 등에 몰렸던 우수 자원들이 산업역군으로 활약한 반면 최근 10~20년 동안 의대·치의대·약대·한의대 등에 인재 쏠림 현상이 발생했다"며 "'특정 분야가 인재를 빨아들이는 게 문제다'고 지적할 게 아니라 특정 분야에 집중된 우수 인재를 산업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찾는 편이 생산적"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팀=고재만 차장 / 김세웅 기자 / 나현준 기자 / 부장원 기자 / 뉴욕 = 황인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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