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푹 쉬겠다`던 文대통령, 北 도발에 휴가 아닌 휴가
입력 2017-07-31 16:40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휴가 이틀째를 맞아 강원도 평창에서 경남 진해로 휴가지를 옮겼다. 지난해 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이후 10개월여를 쉼없이 달려온 문 대통령으로선 이번 여름휴가를 맞아 제대로 쉬면서 몸과 마음을 회복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휴가 직전 북한 미사일 도발로 휴가 아닌 휴가를 보내게 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를 떠나 진해 군(軍) 부대 내 휴양시설로 이동해 이곳에서 남은 5박6일의 휴가 일정을 보낼 예정이다. 앞서 평창에서 하룻밤 묵은 것은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모으기 위한 일정으로 올림픽준비위원회 관계자들과의 만남, 올림픽시설 관람 등 일정으로 짜여져 사실상 휴가로 보기 힘들었다.
문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이번 여름휴가 때 정말 푹 쉬겠다"는 얘길 여러 차례 했다고 한다. 그만큼 휴식이 절실했다는 얘기다. 사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대선 정책캠프인 '정책공간 국민성장'을 발족한 이후 10개월여간 휴식 다운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같은 달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보도가 본격적으로 터져나오면서 곧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으로 돌입했고 대선전이 예상보다 일찍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후 주말 촛불집회 참석, 치열했던 당내 경선, 대선을 거치면서 쉴 틈을 찾지 못했다. 전임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조기대선이라 인수위 없이 곧바로 취임하면서 역대 대통령들이 누린 꿀맛같은 인수위 휴식을 맛보지도 못했다.
문 대통령은 잘 쉬어야 일도 잘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21일의 연차를 모두 사용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인식에서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기자들이 대통령께서 휴가 중 어떤 구상을 할지, 무슨 책을 읽을지 궁금해 한다"고 하자, 문 대통령은 "휴가 중에 정국 구상도 독서도 안하겠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휴가 때도 사실상 대통령에게 일을 시키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에 정말 쉬고 싶다는 바람이 더해진 '진담 반 농담 반' 답변인 셈이다. 수행원도 부속실장· 경호실장으로 최소화하고 김정숙 여사와 산책하며 소일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휴가 직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시험발사를 감행하면서 문 대통령은 결국 휴가 아닌 휴가를 보내게 됐다. 사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이미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보고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북한의 움직임 때문에 이미 공개된 대통령 휴가일정을 변경하는 모습을 보이면 북한에 끌려다닌다는 인상을 줄 수 있고, 국민들의 불안감을 키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휴가 일정을 변경하지 않았다.
다만 군 지휘관들과의 화상회의 시스템 등 군 지휘체계 인프라가 갖춰진 진해 기지를 휴가지로 택하면서 북한 움직임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했다.
야당이 문 대통령이 북 도발에도 휴가를 떠났다며 비판한 데 대해 청와대 측은 "북한이 미사일을 쐈다고 해서 휴가를 미룰 이유는 없다"며 "그런 문제에 있어서는 철저히 준비돼 있고 언제든지 대통령이 군 통수권을 지휘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놨다"고 반박했다. 청와대의 이 같은 반박에도 대통령이 마음 편히 휴가를 즐기긴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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