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이후 보수시민단체들이 직원들을 명예퇴직시키고 문을 닫는 등 극심한 '보릿고개'에 시달리고 있다. 전경련과 개별 기업 등이 '탄핵정국' 이후 시민단체 지원을 사실상 중단하면서 보수 시민단체 자금줄이 바싹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전정권 국정 농단사태에 따른 자승자박이라는 평가가 많지만, 건전한 비판을 제기해온 곳들마저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균제와 균형 기능 상실을 염려하는 지적도 나온다.
30일 매일경제 취재 결과 자유시장경제 수호를 표방해온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이달 초 현직 상근직원 상당수가 퇴사했다. 바른사회는 보수 시민단체 중 상근직원을 두고 있는 몇 안 되는 시민단체로 그 명맥을 이어왔지만 정권교체를 전후해 재정상황이 어려워져 사무실 유지와 직원 급여 등 고정경비 부담을 줄여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바른사회 관계자는 "재정이 이전보다 열악해져 사무실 공간을 축소하고 상근인력을 줄이는 것이 불가피하다"면서도 "단체규모와 상관없이 이전처럼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바른사회는 참여연대·경실련 등과 대척점에서 국내 간판급 보수시민단체로 활동해왔다. 지난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와 행정수도 이전 반대, 북한인권문제 제기 등에 앞장서며 목소리를 냈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신고리5·6호기 원전 중단, 최저임금인상 등에 대한 토론회를 잇달아 개최하며 보수세력 반대 목소리 대변해왔다.
지난 1997년 전경련 소속 자유기업센터로 처음 탄생한 자유경제원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운영난을 겪으면서 강도높은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지난 정부에서 국정교과서 추진 등을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전 자유경제원 사무총장)을 배출하는 등 정치권에 영향력을 끼쳐왔지만 전경련 등으로부터 지원이 끊기면서 어려움에 놓였다. 현재 자유경제원 홈페이지에는 지난 2017년 2월 이후 새로운 글이 등록되지 않고 있고, 해당 단체의 소개·연구자료·시장 분석 등 게재된 자료는 열람조차 불가능한 상태다.
종북주의와 주체사상 노선을 이끌던 친북 인사들이 전향한 후 만든 시대정신 역시 지난 5월 17일 발간된 통권 78호를 끝으로 휴간에 들어갔다. 시대정신은 보수정권에서 뉴라이트 운동을 이끌어 온 인사들이 목소리를 내온 통로가 돼 왔지만 재정지원 등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무기한 문을 닫게 됐다.
보수시민단체들의 '연쇄 부도'는 기형적인 시민단체의 지원이 불러온 탓도 크다. 시민들이 내는 기부로 단체를 운영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데 그간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없이 거의 정부와 기업 등 지원에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한 보수단체 관계자는 "지난해 전경련이 어버이연합에 자금지원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데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개별 기업 '후원금'에 대한 비판 여론까지 쏟아지면서 자금줄이 싹 말라버렸다"고 말했다.
대안없는 비판과 정치활동 편중 등 '시민 없는 시민단체'로 변질되면서 위기를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민운동정보센터가 올 초 발표한 '한국시민사회연감 2017'에 따르면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도를 묻는 질문에 조사대상의 절반 이상( 56.3%)은 '신뢰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내놨다. 시민단체에 대한 만족도에서도 '만족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64.3%에 달해 '만족한다'는 응답(27.1%)을 상회했다. 시민단체의 문제점으로 대안없는 비판(34.1%), 지나친 정치적 활동(16.7%), 시민참여부족(16.7%) 등이 꼽혔고, 시급한 내부 과제로는 안정적 재정(20.0%)와 민주적 의사결정(14.5%) 등이 선정됐다.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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