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당국·시중銀 주담대 분할상환 목표 `마찰`
입력 2017-07-24 17:30  | 수정 2017-07-24 19:32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제시한 주택담보대출 분할상환 목표 때문에 주요 시중은행들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위원회는 분할상환 대출 구조를 정착시키겠다는 취지로 올해 말까지 분할상환 대출 비중 목표치를 당초 50%에서 55%로 상향 조정했지만 시중은행들은 사실상 이 같은 숫자를 달성하기 불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이 시장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행정지도를 하달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담대 분할상환에 대한 행정지도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 경우 공식적인 규제는 없지만 시중은행들로서는 금융당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다음달로 예정된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앞두고 최근 취임한 최종구 신임 금융위원장이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4일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신한, 국민, 하나, 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비거치식 분할상환 대출 비중이 전체 주택담보대출에서 47.82%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은 이 비중을 올해 말까지 50%로 확대할 방침이었으나 가계부채 리스크가 커지자 55%로 상향 조정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2015년 말 분할상환 비중이 40% 초반이었는데 1년6개월 만에 40% 후반대까지 끌어올렸다"며 "앞으로 남은 6개월 동안 5%포인트 이상 더 끌어올리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다. 올해 말 주담대 분할상환 목표치는 50%였으나 지난해 12월에 금융당국이 이를 5%포인트 상향 조정했고, 이 과정에서 은행권과 금융당국 간 구체적인 의견 교류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2016년 목표치가 45%였던 것과 비교해 1년 만에 10%포인트 오른 셈이다.
정부가 주택담보대출 원금 상환 구조를 일시상환에서 분할상환으로 변경해 가계부채의 질적 개선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분할상환은 매월 일정 부분의 원금을 상환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이자는 상환할 수 있으나 원금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대출 금액을 줄이거나 대출 자체를 포기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분할상환은 투기적 대출 수요를 제약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시중은행들이 분할상환 비중을 단시간 내에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대출 특성상 전세자금대출, 집단대출(이주비대출·중도금대출)처럼 분할상환이 되지 않는 대출이 있는 데다 일시상환 대출을 선호하는 대출자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주택 구매와 같이 대출금 규모가 큰 차입자, 소득 변동성이 큰 차입자, 안정적으로 투자 재원을 확보해야 하는 차입자들은 일시상환 대출을 선호한다. 은행 입장에서는 이 같은 대출자를 설득해 분할상환을 유도할 만한 유인책도 마땅히 없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재무 상황이 양호하지 못한 대출자가 주로 일시상환을 선택한다는 것도 문제"라며 "금융당국이 분할상환을 유도하면 이들이 은행권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분할상환 비중을 무리하게 높일 경우 일종의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이 발표한 '주택담보대출 원금 상환 구조 결정 요인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나이가 많거나 소득이 불안정하고, 신용등급이 낮은 경우에 일시상환 대출을 받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컸던 것으로 조사됐다. 구체적으로 신용등급이 높은 1등급과 2등급은 분할상환 비중이 35% 수준이지만, 이후 점차 낮아져 3~6등급에서는 32~33% 수준으로 낮아진다. 임 연구위원은 "정부의 분할상환 정책으로 은행권 우량 차주에 대한 대출 건전성은 개선됐지만 비우량 고객의 경우 2금융권으로의 이동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부 은행은 분할상환 유도 전략이 고객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규제 강화는 신용대출 등 주택담보대출이 아닌 다른 대출에 대한 수요를 늘릴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동일한 차주더라도 더 높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주택담보대출의 분할상환 전환이 오히려 가계부채 리스크를 확대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목표치가 과도하게 설정됐다고 인식하고 있다"며 "은행권 의견을 수렴 중"이라고 밝혔다.
[박윤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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