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케이블 채널의 신입 PD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배경에 과도한 업무뿐 아니라 조직내부의 '집단 따돌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직장내 괴롭힘 문제가 조직내 불화를 넘어 사회적 문제로 커지고 있다. 직장인 10명 중 1명 이상이 '거의 매일', 10명 중 5~6명은 '한달에 한번 이상' 직장내 왕따·괴롭힘을 경험했다는 조사결과까지 나왔다. 괴롭힘 형태도 폭언 등 드러나는 형태에서 벗어나 '은따'(은근히 따돌림) '방폭'(혼자 카카오톡 채팅방에 남겨두고 나가버림) 등 중·고등학교에서 진행되는 집단 괴롭힘 형태로 변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6일 매일경제신문이 최근 한국심리학회지가 발표한 보고서(남녀 사무직 직장인의 특성분노, 사회적 회피, 직장 내 괴롭힘 피해 간 관계: 조직 분위기의 조절효과를 중심으로)를 입수해 살펴본 결과 수도권에 소재한 대기업 및 중소기업 사무직 종사자 230명 중 남자 집단의 16.5%, 여자 집단의 13.0%가 '거의 매일'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 달에 한번 이상'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경험한 경우는 남자 집단의 60%, 여자 직장인의 46.6%로 조사됐다. 일터에서의 괴롭힘 문제가 일부 특정집단 문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직장 전반의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는 얘기다.
매일경제는 김하연 인하대 경영대학 교수 연구팀이 올 초 '직장 내 왕따' 피해자 들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연구보고서도 입수했다. 이 인터뷰에서 국내의 한 정부출연연구원에서 근무하는 A씨는 "자기네들끼리는 박사라 부르면서 나한테만 선생님도 아니고 '쌤'이라고 부르고 반말로 무시해 스트레스가 컸다"고 말했다. 2년 전 서울의 한 법무법인 입사 후 상사·동료의 집단따돌림·괴롭힘으로 퇴사한 B씨(32·여)는 "계약직으로 입사해 정규직으로 전환되자 민원전화가 오면 무조건 담당도 아닌 나한테 돌려 내 업무를 볼 수 없게끔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직장 내 왕따·괴롭힘이 보편화되면서 강력사건으로 이어지는 일도 심상찮게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경기 화성서부경찰서는 자신이 다니던 공장 사무실에 불을 지른 혐의(건조물 방화)로 C(44)씨를 입건했다. 이 불로 2층짜리 공장 건물 내부 160㎡와 컴퓨터와 테이블 등 사무실 집기류가 모두 타 소방 추산 7000만원 상당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경찰 조사에서 C씨는 "동료 직원들이 평소 대놓고 무시하고 식사시간에도 자기들끼리만 가는 등 따돌림을 당해 불을 질렀다"고 진술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1건당 사회적 손실비용은 1548만원으로 조사됐다.
선진국 중에서 프랑스는 2002년 직장에서 정신적 침해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으며 독일에서는 피해자가 사용자에게 적절한 보호조치를 요구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지난 19대와 20대 국회에서 잇따라 발의됐지만 기한을 넘겨 폐기 또는 계류된 상태다.
김하연 교수는 "사내 왕따는 모욕죄나 명예훼손 등으로 소송이 가능한 심각한 문제임에도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미흡해 산업재해로 인정되는 경우도 드물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초 '직장 내 괴롭힘 근절을 위한 권고안' 마련에 착수했다. 권고안에는 개인에 대한 공격, 업무 관련 괴롭힘, 인간관계상 배척 및 고립(왕따) 등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과 유형을 제시하고 이 같은 피해를 입은 근로자의 법적 구제 수단이 담길 예정이다.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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