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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DAY②]우광훈 감독 “돌아가신 父 영혼 담긴 운명 같은 영화”
입력 2017-06-28 09:31  | 수정 2017-06-28 09:47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우광훈 감독은 망설임 없이 운명”이라고 정의했다. 자신의 인생 가운데 가장 강력한 터닝 포인트이자, 아버지와의 아름다운 이별을 가능케 해준, 감독으로서나 개인적으로나 큰 깨달음을 얻게 한, 영화 ‘직지코드는 시작부터 끝까지 운명과도 같았단다.
정지영 감독은 제2의 아버지”라고 밝힌 우광훈 감독은 역시나 정 감독과의 인연으로 ‘직지코드에 참여하게 됐다. 시나리오를 쓰던 중 갑작스러운 전화 한 통에 이 험난한 여정에 덜컥 합류하게 됐다고. 그는 이번에도 (정지영 감독님께)또 속았다. 그런데 정말, 속길 참 잘했다”며 웃었다.
‘직지코드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인 ‘직지(직지심체요절, 이하 ‘직지)와 동서양 문명사의 숨겨진 관계를 추적한 다큐멘터리 영화.
라이프(LIFE)지 선정 ‘인류 역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 1위로 꼽힌 구텐베르크의 서양 최초 금속활자 발명이 당시 동양 최고의 문명국 고려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가설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동서양 금속활자 문명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프랑스 파리부터 이탈리아 로마 등 유럽 5개국 7개 도시와 한국을 종횡무진하며 완성된 다이내믹한 대장정을 스크린에 옮겼다.
우 감독은 찍어온 지는 2년이 넘었고, 준비한지는 벌써 3년 반이 다 돼간다. 빨리 관객들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는데 실현돼 기쁘다. 아쉬운 게 있다면 그토록 영화 개봉을 기다리시던 아버지가 이제는 세상에 안 계시다는 점, 그래서 극장에서 보여드리지 못한다는 사실 뿐”이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께서 역사에 대한 관심이 워낙 많으셨고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자긍심이 큰 분이었기 때문에 저의 ‘직지 작업을 시작부터 끝까지 굉장히 응원해주시고 함께 토론해주시고 사랑해주셨어요. 유언장에 ‘직지와 관련된 그 어떤 작업에 지장이 없도록 장례를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남기셨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응원해주셨죠.”
우 감독은 정지영 감독님과 초반 작업을 1년 2개월 정도 진행하다가 아버지의 암 진단 소식을 듣고 짐을 싸들고 가 아버지 곁을 지켰다”면서 어느 정도 큰 틀은 정해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세부적인 작업은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고, 자연스럽게 이별 준비를 했던 것 같다. ‘직지를 소재로 아버지와 아들 간 특유의 서먹함을 뛰어 넘어 치열하게 논쟁하고 고민하고 사랑했다”고 회상했다.
하루는 아버지가 ‘직지 내용이 대체 뭐냐고 물으셨는데, 아버지께서 앞을 보지 못하셨기 때문에 제가 옆에서 다 읽어드렸어요. 본래 기독교이시기도 한데 차근차근 읽다보니 ‘직지와 ‘성경이 맞닿은 이야기가 참 많았죠. 특히 ‘너무 현세에 집착하지 말고 하늘로 돌아갈 때 지혜를 쌓아라. 현세는 잠깐 왔다가 잠깐 가는 것뿐이니 육체에 집착하지 말고 한줌의 흙도 남기지 말라. 등의 내용은 우리 부자의 이별을 굉장히 성숙하게 만들어준 대목이에요. 이 외에도 인종이나 종교 등 어떤 것이든 차별 없는 참사랑으로 하나가 되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줬죠.”
그는 ‘직지코드를 통해 발견한 역사적 사실 보다 더 값진 것을 얻었다고 했다. 인생을 대하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일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다.
우 감독은 영화를 찍기 전까지만 해도 저 역시 단지 우리 민족의 우수성, 서양인들이 자신들이 먼저라고 주장하는 그것을 뒤집는 새로운 발견, 이것을 통해 얻는 우월감 등에 휩싸였던 게 사실”이라며 그런데 이 힘든 여정을 끝내고 나니, 너보다 앞선 나의 우월함이 아닌 ‘우리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는 점, ‘직지라는 소중한 유산의 진짜 내용에 대해 알게됐다는 게 더 큰 수확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리고 그 뜻을 내 인생에 조금이나마 적용해 생각하게 됐다는 게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우리의 역사적 발견에 대해서는 앞으로 이를 진정 필요로 하는 학자들에게 개인적인 용도가 아닌 진짜 연구를 위해 잘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전문가가 아닌 우리들도 미친 듯이 뛰어들다보니 이런 발견을 할 수 있었으니, 이를 토대로 더 크고 의미 있는 작업들은 전문가들이 해야겠죠. 여전히 많은 서적들, 숨겨진 역사적 진실은 학자들의 손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다만 우리는 ‘직지의 내용을 다시금 짚어보고, 우리의 여정을 통해 그 뜻을 경험해봤다는 것에 가장 뿌듯함을 느껴요. 그동안 ‘직지가 기술사적인 면에만 중점을 두고 자랑스러웠다면, 이제는 그 내용 자체가 너무도 자랑스럽죠. 보다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재발견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영화의 출발인 가설은 실제로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논쟁의 중심에 오르기도 했으며, 제작진의 탄탄한 취재력과 끈질긴 열정이 뒷받침됨에 따라 점차 신빙성을 더해간다.
현재 ‘직지의 원본을 소장하고 있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측은 연구 목적으로 사전 허가를 받은 일부 관람객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열람을 허락, 제작진의 취재 요청을 수차례 거부하며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로마에서는 제작진의 촬영분이 모조리 도난당하는 위기를 맞기도 한다.
모든 촬영을 마친 이들이 힘든 여정의 마무리를 자축하며 축배를 드는 사이 그들의 버스는 알 수 없는 이들에 의해 모든 걸 도난당하게 되고, 현지 경찰관들은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도움의 손길이 없는 절망의 상황에서 결국 제작진은 한층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재촬영에 돌입한다.
뭐 하나 쉽지 않은 여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구를 포기하지 않는 제작진의 끈질긴 추적 과정은 ‘직지를 둘러싼 은밀한 미스터리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극영화에 버금가는 긴장감과 희열을 선사한다. 여기에 다큐멘터리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생생한 에너지가 매력을 더한다. 28일 개봉.
사진 유용석 기자/ kiki2022@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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