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통시장·청년창업 동시에 키운다…`정용진식 상생`의 진화
입력 2017-06-27 14:53 
이마트가 구미 선산봉황시장에 문을 연 노브랜드 상생스토어의 간판 아래로 시장 상인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사진 = 이마트]

지난 3월 7일. 이마트에 뜻하지 않은 공문이 도착했다. 구미에 위치한 전통시장인 선산봉황시장 상인회장 명의로 발송한 공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었다. "선산봉황시장의 청년몰 사업과 이마트가 연계, 상생스토어를 만들어 시장 활성화를 꾀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그로부터 한달 뒤인 4월 11일, 상인회는 시장 상인 106명의 100% 찬성 동의서를 받았다는 내용을 담은 공문을 다시 이마트로 보냈다. 첨부문서에는 시장 상인들 모두에게 받은 자필 서명이 담겨있었다. 이 시장의 30대 청년 상인 김수연(39) 씨와 박성배 상인회장이 발로 뛰면서 받아낸 자필 서명들이었다.
시장 상인들의 역제안에 이마트도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공문을 접수받은 직원들은 이를 바로 경영진에 보고했고, 이마트 경영진 또한 새로운 상생 모델로서 이 지역에 상생스토어를 열기로 결정했다. 상생스토어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앞장서서 펼치고 있는 사회공헌 사업이다. 이마트는 정 부회장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27일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선산봉황시장에 청년상인들이 주축이 된 청년몰과 함께 '노브랜드 청년 상생스토어'를 열었다. 이 점포의 오픈은 첫 공문이 접수된 지, 4개월이 지나지 않아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이는 정용진 부회장을 비롯한 이마트 최고 경영진은 물론, 시장 상인들의 공감대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선산봉황시장은 조선시대 5일장으로 시작돼 24년전인 1993년 지금과 같은 현대식 건물로 탈바꿈한 경북지역의 유서깊은 시장이다. 1층에는 106개의 점포가 상시 운영되고 있지만, 2층 공간은 지난 24년간 버려진 채로 남겨져 있었다. 이 2층 공간이 노브랜드 청년 상생스토어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이마트의 첫 상생스토어인 당진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간의 협업이었다면, 선산봉황시장은 청년 상인들이 추가됐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시장은 정부 지원사업인 '청년몰' 조성사업자로 선정돼 청년 상인들을 유치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었다. 이에 시장 내 청년 상인들과 기존 전통시장 상인들이 함께 힘을 합쳐 이마트와 협업에 나선 것이다.

이마트는 선산봉황시장 A동 2층의 1650㎡(약 500평) 가운데 420㎡(약 125평)을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로 꾸미고, 바로 옆 공간에는 17명의 청년 상인들이 운영하는 청년몰을 825㎡(약 250평) 규모로 들어서도록 했다. 나머지 공간은 젊은 소비자들의 방문과 체류시간을 늘릴 수 있도록 장난감을 갖춘 어린이 놀이터와 고객 쉼터 시설로 꾸몄다.
이마트는 상생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반드시 청년몰을 거쳐야만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로 들어설 수 있도록 매장을 설계했다. 청년상인들을 위한 배려가 반영된 것이다.
상생스토어의 판매 품목도 시장 상인들과 긴밀한 협의를 거쳤다. 전통시장의 주력 상품인 신선식품은 판매하지 않고, 가공식품과 생활용품만을 판매한다. 다만 시장 상인회가 그동안 시장의 약점으로 지목됐던 수산물을 판매할 것을 요청하면서 생선·조개 등 일부 수산물은 구비하기로 했다. 시장의 취약점을 보완해 구색을 갖추게 된 것이다.
선산봉황시장에 노브랜드 상생스토어의 문을 연 것은 30대 청년 상인 김수연 씨의 아이디어가 시작이었다. 지난 2015년 정부의 청년창업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김씨를 포함한 8명의 청년 상인이 이곳에서 점포 운영을 시작했지만, 영업난을 극복하지 못했고, 결국 2명 만이 시장에 남게 됐다. 그러다 당진전통시장에 문을 연 노브랜드 상생스토어의 사례를 접했고, 김 씨 스스로 시장 상인들의 동의를 구해 이마트 측에 검토를 요청했던 것이다.
박성배 선산봉황시장상인회장도 동참했다. 박 회장은 "지난 2015년 청년 상인들의 실패를 또다시 반복할 수는 없었다"며 "초기에는 대형마트가 들어온다며 반발하는 상인들도 많았지만, 꾸준한 설득을 거쳐 결국 상인 100%가 동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마트는 이번 상생스토어의 오픈이 전통시장 활성화는 물론 청년 창업이라는 새로운 모델까지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기대를 걸고 있다. 이갑수 이마트 사장은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청년 상인과 협의를 거쳐 더 나아진 형태의 상생모델로 진화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경제주체들과 함께 진정한 상생을 이룰 수 있는 방식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구미 = 최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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