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영문학도지만 내가 외도를 좀 많이 했지"
입력 2017-06-26 16:17 

"이번 '회화록'의 10년은 정녕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역사의 유달리 혼탁하고 답답한 시기에 해당한다. 반전과 재반전의 드라마를 내장한 셈이다."
창비 명예편집인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79)가 지난 10년간 치른 좌담, 대담, 토론, 인터뷰 등을 묶은 '백낙청 회화록 6·7권'이 출간됐다. 출판사 창비가 2007년 간행한 총 3000여 쪽 분량의 '백낙청 회화록'(1~5권) 후속작이다.
백 명예교수가 만난 인물들은 정치·사회·문화계 인사 전반을 아우른다. 시인 고은, 정치인 이해찬·김종인·윤여준,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송호근, 유시민, 진중권 등 지식인과 방송인 김미화·김제동 등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 들어 경색된 남북관계가 87년체제의 말기적 국면에서 비롯했음을 통찰해낸다. 이에 대한 극복안으로 내놓은 게 한반도식 통일과 복지·생태와 결합한 민주개혁을 내세운 '2013년체제론'. 하지만 이 방안은 실현되지 못했다. 2012년 19대 총선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다.
총선과 대선 패배의 원인이 선거 승리에 집착한 탓이라는 지적은 곱씹을 만하다. 그는 "어떻게 보면 더 복잡하고 다소 구질구질한 형태로 새 시대의 건설이 진행될 것"이라며 "각자 처한 위치에서 사회의 기초체력을 키워나가는 데 힘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난해 12월 촛불시위에 대해서는 "광장의 민심이 끊임없이 개입하는 메커니즘을 개발해야 한다"며 "시민사회가 독자적인 기구를 만들어 정치권에 원하는 바를 강력하게 요구하자"고 말한다.

백 명예교수의 시국 성찰에 본바탕을 이루는 건 깊고 넓은 인문학 정신이다. 2009년 진행된 한 토론회에서 그는 주체적 인문학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정말 훌륭한 문학이라면 두뇌는 두뇌대로 심장은 심장대로 온몸이 작동케 하는 것이 훌륭한 시의 경지이고 제대로 된 문학"이며 "언어예술이 제대로 작동하는 글들을 읽는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명색이 영문학도이면서 외도를 많이 한 게 사실"이라는 고백도 흥미롭다. 그는 "영문학을 좀 더 열심히 못한 것에 대해서는 조금 후회가 있다"면서 "앞으로 더 열심히 하려는 다짐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영문학만 하지 않고 이런저런 다른 일을 한 것 자체를 후회하지 않는다"며 "그런 것이 영문학 하는 데 도움이 됐고 또 영문학을 공부한 것이, 다른 일을 생각하고 정리하는 데도 많이 도움이 됐다"고 덧붙인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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