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선장없는 금융권…경영 공백 곳곳 몸살
입력 2017-06-25 17:40  | 수정 2017-06-25 19:39
금융위원장을 필두로 한 금융권 수장 인사가 탄핵과 대선 정국 이후 3개월 이상 잇달아 지연되고 있다.
이 때문에 가계부채와 기업 구조조정을 비롯한 금융 현안은 물론이고 새 정부의 일자리 창출, 4차 산업혁명 등 국정과제의 신속한 추진에 난항을 겪고 있다. 금호타이어 등 현안을 조율할 기업 구조조정 실무 책임자는 현재 공석이고 잠수함 건조 등을 위한 방산보증을 담당하는 서울보증보험 사장 역시 4개월째 공석이다. 새 정부의 '금융 홀대설'을 제기해온 금융권에서는 최근 '금융 포기설'이라는 자조 섞인 표현까지 나돌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대선 하루 전인 지난달 8일 사의를 표명했지만 25일 현재 문재인 대통령은 신임 금융위원장 후보자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수석전문위원과 금융정보분석원장을 지낸 김광수 법무법인 율촌 고문,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과 금융연구원장 출신인 이동걸 동국대 교수, 이명박정부 말기 금융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는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지명설이 꾸준히 흘러나왔지만 청와대의 공식 발표는 아직 없다. 특히 김 대표의 경우 최근 지명 여부를 놓고 청와대 수뇌부에서 이견이 불거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향후 지명 여부와 시기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금융위원장 인선이 장기간 지연되면서 각종 범정부 대책에서 이른바 '금융패싱'이 나타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서울 등 일부 지역에 대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강화를 단행한 최근 6·19 부동산대책은 소득심사 체계인 DTI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통해 내실화하고 LTV는 냉온탕식 단기 처방이라 자제해온 금융당국의 기조와 거리가 있었다"며 "금융정책 수장이 공백아닌 공백 상태에서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의 대세에 휩쓸린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매각을 놓고 옛 계열주와 채권단 간 힘겨루기가 장기화한 금호타이어 등 구조조정 현안에 대해서도 금융위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조화로운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금호아시아나그룹 전체가 공중분해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기업 구조조정 실무 책임자인 기업구조개선과장은 전임자가 최근 청와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공석이다. 임시로 금융정책국 산업금융과가 이 사안을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외교 문제, 채권 회수, 지역 경제 등 복합적인 정책 목표를 아우르는 정책 조정 기능은 전혀 수행하지 않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해당 자리는 신임 위원장 성향에 절대적으로 부응해야 하는 자리라 현재로선 임명하기 어려워 금융위 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최근 대통령 방미 경제사절단 명단에 금융인이 전무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새 정부는 금융을 아예 포기한 것이냐"는 자조도 금융권 안에서 나오고 있다. 이 같은 금융위원장 인선 지연으로 준국책금융기관 수장 임명 역시 덩달아 지연되고 있다. 수협은행은 이원태 전 행장이 지난 4월 퇴임한 이후 2개월 넘게 행장 자리가 비어 있다. 행장 추천에 관여할 정부 수장들의 인선 지연 때문이다. 수협은행 주주인 수협중앙회 관계자는 "해양수산부 장관이 늦게 임명됐고 금융위원장은 아직 지명조차 안 돼 행장 선임을 위한 추천이나 교감 작업을 시작도 못하고 있다"며 "행장 자리가 상당 기간 비어 있을 각오를 하고 있다"고 했다.
SGI서울보증 사장 역시 지난 3월 최종구 전 사장이 수출입은행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래 4개월째 공석이다. SGI서울보증은 예금보험공사가 최대주주인 준국책금융기관으로 우리은행, 한화생명과 더불어 금융위원회 관할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의 민간 지분 매각 대상이다. 지난 정부에서는 중금리 대출을 확대하기 위한 보증 공급 차원에서 매각을 무기한 보류하기로 했지만 현재 새 정부의 방침은 오리무중이다. SGI서울보증은 통상적인 보증 업무뿐 아니라 주택담보대출을 위한 모기지신용보험(MCI)을 담당하고 대우조선해양이나 현대중공업의 잠수함 건조를 위한 방산 보증을 담당하는 금융권의 '숨은 중역'이다.
BNK금융지주와 산하 부산은행도 성세환 회장 겸 행장이 구속된 이후 어정쩡한 대행 체제를 수개월째 이어가고 있다. 성 회장은 170억원대 자사 주식을 시세 조종하라고 지시한 혐의로 지난 4월 구속됐다. 경영 공백 장기화를 우려한 BNK금융은 지난 22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최고경영자 경영 승계 개시 사유 해당 여부 결정안'을 논의했지만 성 회장의 구속이 경영진 교체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반론이 많아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BNK금융 내부에서는 성 회장에 대한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후임 인선에 착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옹호론'과 구속 수사로 리더십이 타격을 받았고 고객 신뢰가 추락한 만큼 새로운 수장을 임명해 하루빨리 경영 재건에 나서야 한다는 '현실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은행, 경남은행 등 영남권 시중은행을 자회사로 둔 BNK금융은 일단 7월 초 열릴 예정인 이사회에서 후임 회장 인선 문제를 다시 논의할 방침이다.
[정석우 기자 / 김종훈 기자 / 노승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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