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후에도 EU 국민들의 영국 거주권을 확실히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총선 참패로 리더십이 추락하자 한 발 물러선 태도를 보인 것이다.
메이 총리는 22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 업무만찬에서 "현재 영국에 합법적으로 머무는 EU 국민 중 어느 사람도 브렉시트가 이행된 후 영국을 강제로 떠나도록 요구받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약속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는 영국의 "공정하고 신중한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이고자 내놓은 방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메이 총리의 계획에 따르면 특정한 날짜를 기준으로 그 때까지 영국에서 5년간 산 사람에게는 보건과 교육, 복지, 연금 등에서 영국인에 상응하는 영원한 권리를 부여하는 '새로운 정착 지위'를 줄 방침이다. 특정 날짜는 영국이 브렉시트를 공식 통보한 지난 3월 29일부터 브렉시트가 이행되는 2019년 3월 30일 사이에서 선정된다.
그동안 강력한 하드 브렉시트를 천명했던 메이 총리는 EU 국민들의 영국 거주권을 브렉시트 협상의 '카드'로 쓰려했다. 이 때문에 EU 국민들의 거주권 얘기가 떠오를 때마다 메이 총리는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은 채 협상이 시작되면 논의하겠다는 말만 내놓았다.
하지만 총선 보수당 과반 확보 실패와 잇따른 악재로 메이 총리의 '하드 브렉시트'가 위기에 처하게 되자 한 발 물러서서 EU 측의 요구를 충족시켜주려 한 것이다. 앞서 EU는 브렉시트 협상에서 영국에 거주하는 EU 국민들의 권리문제를 최우선 순위에 둘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메이 총리의 제안에 대해 "(협상의) 좋은 시작이다"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았으며 다른 EU 정상들도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EU 측은 "브렉시트 협상은 미셸 바르니에 EU 협상대표와 데이비드 데이비스 영국 브렉시트장관 사이에서만 진행돼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며 말을 아꼈다.
EU 폴리티코에 따르면 메이 총리는 만찬에서 이같은 발언을 한 뒤 모두가 남아있는 회의장을 혼자만 떠나야 하는 다소 어색한 상황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만찬 바로 뒤 영국을 제외한 EU 27개국이 브렉시트에 대한 비공식 회의를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EU 폴리티코는 "다른 정상들은 화기애애했다"며 "하지만 자국에서 참패를 맛보고 온 메이 총리에게 정치적 연민을 보내는 사람조차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한편 이날 EU 정상들은 브렉시트에 관한 논의 외에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를 6개월 더 연장하기로 했다.
[김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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