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는 무슨! 비켜요 비켜!" 특유의 여유로움과 자신감 가득찬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미국 워싱턴에서 14시간 비행 끝에 21일 새벽 인천공항에 도착한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대통령 특보의 얼굴엔 피로감이 역력했다.
문 특보는 이날 공항에 몰려든 취재진에 "학자로서 (워싱턴에서) 한 발언이 왜 문제가 되냐? 학술회의에서 애기한 것을 두고 새벽부터 이게 무슨 고생이냐?"고 답답함과 억울함을 토로했다. 문 특보는 취재진을 뚫고 공항을 빠져나가며 가방을 실은 수레로 기자들을 거칠게 밀어내는 등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였다.
어떤 외국 고위 인사를 만나든 유창한 영어로 자신의 외교안보 구상을 펼쳐내던 학자 문정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문 특보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역임한 뒤 현재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관장과 명예특임교수를 맡고 있다.
문 특보는 지난 16일 한미 싱크탱크가 워싱턴에서 공동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해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의 한반도 전략자산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국 정부의 입장 조율이 없던 상황에서 문 특보의 발언은 워싱턴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양국 정부가 이례적으로 문 특보의 발언은 한국 정부의 공식 견해가 아니라는 입장을 언론에 전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9일 문 특보에게 "엄중 경고했다"며 뒤늦은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문 특보는 이날 자신의 발언을 번복하거나 되돌릴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학자이자 대통령 특보 자격으로 소신을 밝힌 것일 뿐 결국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대통령의 몫이라 주장했다.
문 특보는 '청와대로부터 경고를 받았나', '청와대와 발언을 사전에 조율했나'는 질문에 "그런 것 없다. 내 직업은 교수이며 대통령에게 자문을 해주는 것일 뿐"이라 언성을 높였다. 특보라는 직함의 책임감을 묻는 기자에게 "특보는 무슨 봉급도 안받는 특보는 무슨"이라며 자신은 특보에 앞서 학자임을 재차 강조했다.
[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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