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익혀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두 가지 면에서 다소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
알랭 드 보통의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한 연인의 일상을 토대로 결혼과 그 후 벌어지는 갈등을 다룬다. 행복할 것만 같았던 결혼. 하지만 현실과 맞딱뜨리자 그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갈등과 좌절로 위기가 찾아오고 외도까지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공주와 왕자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로 끝나는 동화에 익숙하기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은 결혼을 사랑의 종착지로 여긴다. 고생끝 행복한 날의 시작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신데렐라가, 백설공주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왕자와 결혼한 뒤 평생 행복하기만 했을까.
윤달을 앞두고 많은 연인들이 결혼을 한다. 예식장은 꽉 찼고 신혼 부부는 환하게 웃는다.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는 결혼. 과학은 결혼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결혼이 많은 6월 셋째주, 진화심리학적 관점과 실험적 관점에서 결혼을 살펴봤다. 결혼은 행복만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결혼이 '미친 짓'도 아니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여자 말 들으면 손해 볼 것 없다." 어른 들이 결혼하는 부부에게 하는 대표적인 말 중 하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실제로 이는 부부사이에 만연되어 있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규칙'이었다. "엄마와 아내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고 하는데 사실일까. 미국 연구진은 속담과도 같은 이 말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지난 2007년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상담심리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부부사이에서는 아내가 '보스'인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진이 결혼한지 평균 7년이 된 72쌍의 부부를 대상으로 설문 및 인터뷰 조사를 진행했다. 먼저 설문조사를 통해 부부간 의사결정 만족도를 조사했다. 또한 부부의 협력 없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고르도록 해 중요도와 해결 방안에 대해 적도록 했다.
그 뒤 연구진은 작은 공간에서 이야기하도록 한 뒤 10분 동안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고 그 장면을 녹화해 분석했다. 부부가 대화하는 내용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연구진은 "문제해결 과정에서 아내가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경향이 짙었다"며 "남편의 동의를 이끌어냈고, 남편은 아내에게 이끌려 가는 성향을 보였다"고 말했다. 아내가 더 힘있는 주제를 통해 문제 해결을 주도했으며 남편은 이에 동의하거나 따랐다는 설명이다. 부부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의 원인이나 해결책이 남편에게 있다 하더라도 최종 결정은 아내가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연구진은 "행복하고 만족한 결혼생활을 할수록 남편이 아내의 의견에 영향을 받고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남성들에게는 안타까운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속설이 끊임없이 전해 내려오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어쩔 수 없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아내의 말을 듣는 수밖에.
과학자들 역시 사람인만큼 결혼에 관해 궁금한 것이 많기 때문일까, 아니면 결혼을 망설였기 때문일까. 지금까지 '결혼'과 관련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실험 논문이 발표됐다. 이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기혼자와 미혼자 간의 건강 지표 비교다. 학술사이트 검색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논문을 찾을 수 있다.
일단 결혼을 하면 미혼자와 비교했을 때 건강상에 이점이 생긴다는 연구가 많다. 특히 심혈관계 질병과 관련해 많은 논문이 이를 뒷받침한다. 2014년 뉴욕대 연구진 미국 심장병학회에서 전 세계 50개국에서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350여만명의 데이터를 분석해 발표했다. 240만명은 기혼자였고 47만명은 미망인, 29만명은 미혼자였으며 31만명은 이혼한 사람이었다. 이를 토대로 심혈관계 질환을 분석하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값이 나왔다. 기혼자는 미혼자와 비교했을 때 혈관 계통 질병에 걸릴 확률이 5% 낮았으며 복부대동맥류 이상과 뇌혈관질환, 말초동맥 질환에 걸릴 확률은 각각 8, 9, 19%나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50살 이전의 경우 기혼자는 미혼자보다 혈관계 질환에 걸릴 확률이 12%나 낮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당시 "기혼자가 관련 질병에 덜 걸리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추가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가 올해 4월 국제학술지 '정신신경내분비학'에 게재됐다. 미국 카네기멜론대 연구진의 논문에 따르면 결혼생활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농도를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미국의 건강한 성인 남녀 572명의 타액을 24시간 동안 한시간 마다 채취한 뒤 코르티솔 농도를 분석했다. 결혼을 한 사람들의 코르티솔 농도는 혼자 살거나 이혼을 한 사람들에 비해 훨씬 낮았다. 또한 시간별 코르티솔 농도의 변화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가장 높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떨어졌는데 기혼자는 떨어지는 속도가 미혼자와 비교했을 때 현저히 빠른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진은 "결혼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물학적 관점의 증거를 제시한 첫번째 연구"라며 "코르티솔 호르몬의 감소는 심장질환에 걸릴 확률도 낮출 수 있다"고 전했다.
결혼이 건강에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주변에 결혼한 사람들을 보면 신혼때 급격하게 살이 찌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를 실험으로 증명한 연구진이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다. 연구진은 프랑스와 독일, 영국 등 유럽 9개국에 살고 있는 1만 226명의 체질량 지수와 식사패턴, 운동량 등을 조사했다. 조사한 9개국 모두 기혼자나 동거를 하는 사람들의 체질량지수가 미혼자와 비교했을 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적정 체질량지수는 18.5~25. 과체중은 25~30, 비만은 30 이상이다. 솔로 남성의 경우 체질량지수는 평균 25.7을 기록한 반면 기혼 남성은 26.3으로 다소 높게 나타났다. 여성 역시 미혼자는 25.1, 기혼자는 25.6을 기록했다. 연구진은 "차이가 작아보이지만 의미있는 결과"라며 "설문조사 결과 남성들의 경우 기혼자는 미혼자보다 상당히 식사를 잘 챙겨먹지만 그만큼 운동량이 적어 건강에 꼭 좋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결혼생활이 만족스러운지 알아보려면 체중 증가 정도를 보면 된다. 2013년 '건강심리학'에 발표된 미국 서던메소디스트대의 논문에 따르면 미국 신혼부부 169쌍을 조사한 결과 결혼생활이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신혼기간 체중 증가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결혼생활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낄 경우 배우자에게서 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만큼 스트레스 때문인지 체중이 감소했다. 부부생활이 만족스러울수록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 식사를 잘 챙겨먹는 반면 운동량은 떨어지면서 체중이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결혼 사진을 보면 부부가 닮은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닮은 사람한테 끌려"라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많은데 실제 이역시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등 국제 공동연구진은 유럽계 부부 2만 4622쌍을 대상으로 이를 입증하는 실험을 진행한 뒤 이를 '네이처 인간 행동' 저널 1월자에 발표했다. 배우자 중 한 명의 체질량지수와 키 정보를 분석한 뒤 이를 통해 상대 배우자의 체질량지수와 키를 예측한 것이다. 연구진이 예측한 자료와 실제 배우자의 특성은 상당히 비슷하게 나타났다. 이는 학업수준과 IQ 등을 비교한 결과도 동일하게 조사됐다. 연구진은 "배우자의 선택은 어떤 유전체를 물려주느냐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배우자를 욕하는 자, 어쩌면 누워서 침뱉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원호섭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