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학원 끝나고 밤 10시 농구교실로…대치동은 지금 `체육학원` 열풍
입력 2017-06-09 14:24 

초등학교 6학년 김모군은 금요일 밤 10시가 되면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농구교실로 향한다. 농구교실에 가면 김군과 비슷한 또래 아이들 십여 명이 모여 있다. 이들은 하교하면 각자 국어·영어·수학 학원을 다니고 모두가 시간이 비는 밤 10시에 이곳으로 모인다.
김군의 부모는 "농구는 한 팀에 5명씩, 대결하려면 최소 10명은 있어야 한다"며 "친한 아이들과 같이 다닐 수 있는 시간대를 선택하다보니 밤 10시 이후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군의 부모는 비교적 학업부담이 덜한 초등학생 때 전인교육 차원에서 아이에게 팀 운동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중학교 3학년인 첫째 아이도 초등학교 때 농구를 배웠다.
그는 "둘째 아이는 중학생 저학년 때까지 계속 농구교실을 보낼 예정"이라면서도 "친한 아이들과 팀을 꾸리려면 앞으로도 농구교실을 밤 10시 이후로 미루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농구교실 관계자는 "학생들이 5~6시간 씩 학원 다니고 스트레스 풀 곳이 없다보니 밤에 와서 농구하는 것을 굉장히 즐거워한다"며 "선생님들도 그 시간까지 일하는 게 힘들지만 아이들이 원하니까 오후 10시부터 수업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학원 공화국'인 대치동 초·중학생 사이에서 저녁 시간을 이용한 '체육 사교육' 바람이 불고 있다. 체육학원이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학원법)'에 의거한 교습시간 규제를 받지 않는 틈을 노린 것이다.
체육시설은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으로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이 적용된다. 따라서 서울시교육청이 학원·교습소 교습시간을 오후 10시까지 제한한 것과 상관없이 그 이후에도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다.
체육학원은 최근 전인 교육을 강조하는 분위기와 맞물려 오후 10시 이후 초·중학생들을 흡수하고 있다. 초·중·고등학생의 체육 사교육비 총액은 지난해 1조7163억원으로 전년 대비 38.4% 증가했다. 그 가운데 초등학생의 체육 사교육비는 1조3676억원으로 전체의 80%에 육박했다. 이어 중학생의 체육 사교육비는 2225억원, 고등학생은 1262억원 정도다.
오는 7월부터 서울 지역에서 학원뿐 아니라 과외시간도 오후 10시로 제한되는 것을 감안하면 이같은 흐름은 더욱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교육 1번지'인 강남에선 이미 다양한 형태의 체육 사교육이 성행하고 있다. 강남구의 한 수영장에선 수영강사가 라인 하나를 빌려서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가르치는 학원 내 과외가 벌어지고 있다. 수업은 학생이 교습학원을 마치고 올 수 있게 9시 넘어서 시작한다. 수영장이 문을 닫지 않는 한 밤 10시까지 수업을 끝내야 한다는 부담이 없다. 아파트에 입주민이 쓸 수 있는 수영장이 있으면 강사가 직접 와서 아이를 가르치기도 한다.
초등학생 자녀를 수영학원에 보내는 박모씨(44)는 "초등학생 때 체력을 길러놔야 중학생이 됐을 때 학원을 다닐 수 있다"며 "강남 학원은 한 과목당 3시간씩 수업하는데 체력이 안 되면 학원에서 버티질 못한다"고 말했다.
학교 내신이나 고교 입시를 위해 체육 사교육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강남구에 위치한 D중학교는 수행평가를 까다롭게 보기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이 학교의 일부 학부모들은 아이에게 줄넘기나 달리기 과외를 시키기도 한다. 아이가 오후 10시까지 학원에서 공부하고 집에 오면 그때부터 체육과외가 시작된다. 몇몇 학생들은 체력검사를 보는 자사고 입시를 미리 준비하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체육 사교육을 받는다.
태권도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은 밤 10시 넘어서 학원에 있는 경우가 더욱 흔하다. 올해 중학교 1학년이 된 B군은 학교가 끝나면 교습학원에 갔다가 태권도 학원까지 들리고 밤 11시 이후 집에 들어간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밤 늦은 시간에 태권도를 배우는 초등학생들도 더러 있다. 일반 교습학원은 오후 9~10시에 끝나지만 체육학원은 시간제약이 없기 때문에 퇴근이 여의치 않을 때 아이를 맡기듯이 보내는 것이다.
아이의 소질과 적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이 개정되면서 예체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체육 사교육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아이를 태권도학원에 보내는 한 학부모는 "학교 끝나면 영어·피아노 학원에 갔다가 저녁 먹고 태권도를 하러 간다"며 "잘 노는 아이가 공부도 잘 한다는데 체력도 튼튼해지고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같은 흐름에 힘입어 1인당 월평균 체육 사교육비는 2012년 이후 계속 상승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 초·중·고 사교육비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생 1인당 월평균 체육 사교육비는2만4000원으로 전년대비 19.3% 증가했다. 그 중 초등학생의 1인당 월평균 체육 사교육비는 2012년 2만4000원에서 지난해 4만3000원으로 거의 2배 가량 늘어났다. 중학생의 경우도 2012년 7000원에서 2016년 1만3000원으로 늘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다양한 체육활동 수요를 공교육으로 모두 충족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체육 사교육은 학교교육의 빈틈을 메꿔주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학생의 신체리듬상 밤 늦게까지 운동을 하는 것은 학생의 건강권과 수면권을 위협한다. 건강을 위한 체육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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