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트럼프 탄핵 논의 본격화, 실현에는 `글쎄`
입력 2017-06-08 16:18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트럼프 수사 개입' 증언으로 탄핵 논의에 불이 붙었다.
미국의 정치전문매체 더 힐에 따르면 앨 그린 민주당 하원의원이 6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탄핵안 발의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그린 의원은 성명에서 "팩트는 단순하고 반론의 여지가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선거캠프와 러시아의 내통 의혹을 수사하던 FBI 국장을 해고한 것이 명백한 증거"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여론의 목소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받았던 혐의가 모두 '사법방해'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명분도 충분히 축적됐다.
하지만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될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하다는 쪽에 무게가 실려있다. 미국의 법과 제도에 따르면 탄핵의 최종관문을 통과하기까지 수많은 시간과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에선 역사상 단 한번도 탄핵이 이뤄진 적이 없었다.

탄핵의 첫 단추는 하원에서 꿰어진다. 하원의원이 탄핵안을 발의하면 하원 법사위가 탄핵 조사를 통해 대통령의 범죄사실을 확인해 탄핵안의 타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코미 전 FBI 국장의 상원 청문회 증언으로 일단 트럼프 대통령의 사법방해 혐의는 드러났다. 현재 진행 중인 특검수사도 추후 트럼프의 범죄를 입증할 근거가 될 수 있다.
탄핵안은 그러나 하원 전체표결에서 과반수 동의를 얻어야 최종 결정된다. 현재 하원 435석 중 공화당이 239석을 확보하고 있어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또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 밥 굿래트 법사위원장이 공화당 소속이라는 점도 탄핵안 가결이 어려울 것이라고 추정하는 이유다.
탄핵안이 하원을 통과하고 나면 상원으로 옮겨져 탄핵심판을 한다. 한국처럼 헌법재판소와 같은 별도 기관이 탄핵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미국에선 상원의회가 심판을 하는 시스템이다. 상원에서는 3분의 2이상 동의를 얻어야 탄핵이 성립되는데 현재 공화당이 과반수인 100석 중 52석을 장악하고 있다.
이같은 제도적, 절차적 여건 때문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나 앤드루 존슨 전 대통령이 하원에서 탄핵안이 발의됐지만 상원에서 좌초됐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당사자인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상원 표결 직전에 사임했다.
상원에서 탄핵이 최종 가결되더라도 연방 대법원의 심리가 남아 있다. 연방 대법원의 심리는 의회 절차가 합법적으로 이뤄졌는지를 살피는 것이므로 상원의 판단이 뒤집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닐 고서치 대법관을 임명하면서 대법원 이념지형이 보수 5 대 진보 4로 기울어진 점은 최종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처럼 공화당이 우세한 연방 상·하원 의석구도는 민주당이 트럼프 탄핵에 선뜻 나서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따라서 민주당은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압승을 거둬 상·하원 모두 다수당 지위를 확보한 이후에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이 가장 원하는 시나리오지만 그러나 이것 역시 용이하지는 않다. 내년 11월 상원 선거 지역구는 현재 민주당이 차지한 25곳과 공화당이 차지한 8곳이어서 민주당이 현재 지역구를 모두 지키고 공화당 지역구 8곳을 모두 뺏어오더라도 과반을 겨우 넘는 56석을 차지할 뿐이다. 탄핵결정을 얻어내는 3분의2까지는 얻기 힘들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예상을 깨고 탄핵이 성립되는 것도 민주당 지도부로서는 부담스럽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될 경우 강경보수 성향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이어받게 되는데 펜스 부통령은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보다 입지가 확고하고 보수진영의 지지도 탄탄하다. 공화당이 펜스 부통령을 앞세워 국정운영을 안정시켜 나간다면 내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2020년 대선을 감안하더라도 민주당으로서는 반대여론이 높은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하는 것이 펜스 부통령을 상대하는 것보다 수월할 수 있다.
찬반 양론이 고루 존재하는 상황에서 섣부른 탄핵 추진이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가 있다는 점도 민주당을 주춤하게 하는 요인이다.
한편 워싱턴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될 경우 펜스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물려받을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선 당시 러시아 정부와의 내통 혐의가 포함될 경우, 대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사안이므로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같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 펜스 부통령 역시 자격이 중지된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주장이 공식적으로 제기되면 소송절차를 밟아 최종적으로 법원에서 부통령의 권력 승계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물려받지 못하면 미국 권력서열 3위인 하원의장이 임시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며 선거를 새로 치러야 한다.
대선을 새로 치른다면 공화당으로서는 지난 해 대선 경선에 출전했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 등 후보군이 두텁지만, 민주당으로서는 마땅한 대선후보가 없어 새로 대선을 치르는 것이 부담스럽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이메일 스캔들과 한 차례 대선 패배로 재기가 어렵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고령이라는 점이 약점이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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