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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꿈의 제인` 조현훈 감독 "4년여 작업, 한 번도 포기 생각 안 했죠"
입력 2017-06-07 06:51 
영화 `꿈의 제인` 조현훈 감독. 사진 |유용석 기자
영화 꿈의 제인, 영진위 창작 지원금으로 시작
"이방인 같은 정서로 사는 사람들에게 관심 많아"
"힘들어도 절망하지 말고 힘을 내길 바라는 마음이 컸죠"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지난 2015년 대학교(한양대 연극영화과 연출 전공) 졸업을 하자마자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창작 지원금을 받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두 해 전 겨울부터 쓰기 시작한 시나리오도 완성이 됐고, 모든 작업이 착착 이뤄지는 듯했다. 하지만 인생이 쉬우면 재미없는 법이다. 어린 시절, IMF 위기를 나름대로 잘 넘겼던 그는 다시 또 위기와 맞닥뜨렸다.
1인 제작사이긴 하나 영화사 서울집을 차리고 프리프로덕션 작업과 시나리오 각색 작업을 병행한 그는 구교환이라는 독립영화계 스타를 캐스팅하고, 떠오르는 샛별 이민지까지 함께하게 됐다. 이제 막 첫 장편 연출을 관객에게 소개하는 신인 감독 조현훈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배우들이 꾸려지고 나서야 이제야 영화를 찍을 수 있구나라는 어떤 희망이 생겼다"고 웃었다.
지난달 31일 개봉한 영화 꿈의 제인은 시나리오 작업에만 2년 넘게 걸렸고, 촬영에 후반 작업까지, 그리고 개봉하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투입됐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것 같은데 조현훈 감독은 생각을 하더니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고 딱 잘라 말했다. "2년 가까이 시나리오를 준비할 때는 주변에서 많이 만류하긴 했다"고 한 그는 "하지만 아이들과 성 소수자 이야기를 쓰기로 한 순간부터 포기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유기체처럼 어떤 생명력을 갖고 만들어져 가고 있다는 걸 느낀 순간부터, 거창하게 말하면 사명감까지 생각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최면에 걸린 것처럼 꼭 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영진위의 지원을 받는 건 좋았지만 학생 때 했던 작업 외에 현장에서 연출부를 경험하지 않아서 꿈의 제인을 내놓은 시간은 일종의 맨땅에 헤딩하는 방식이어야만 했다. 실무를 처리하면서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게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추가 비용도 전세금을 빼서 충당해야 했다. 운이 좋게 시작된 작업이긴 하지만 "너무나 힘이 들었기에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진 않은 방식"이다.
영화 `꿈의 제인` 조현훈 감독. 사진 |유용석 기자
혼자서 많은 걸 채워나가야 했으나 조 감독은 꽤 매력적인 이야기로 다양한 영화를 보길 원하는 관객들을 자극한다. 꿈의 제인은 어디에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소녀 소현(이민지 분)과 누구와도 함께하길 원하는 미스터리한 여인 제인(구교환 분)의 특별한 만남을 그린다.
조 감독은 "바다 위에 동떨어져 있는 빙하 같은 두 사람의 이야기라는 이미지를 상상하며 구성했다"며 "세상의 주변을 맴도는 이방인 같은 정서로 사는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관심과 애정을 쏟는 편이라 소현과 제인을 이 이야기로 끌어들이는 게 자연스러웠다"고 했다.
감독 본인이 성 소수자는 아니다. 하지만 주변에 다양한 성적 지향점을 추구하는 친구도 있었기에 일상의 친구들이 반영된 점도 없지 않다. 가출팸 아이들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쉼터에 가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극 중 쫑구라는 부잣집 아이가 가출팸 생활을 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하자 조 감독은 "아무리 잘 살아도 어른들 때문에 마음에 구멍이 난 친구도 있더라. 서로를 위로해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가출팸"이라고 취재할 때 겪은 이야기를 전하며 "아이들의 상처를 어른들의 상식으로 이해하려고 하니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감독은 실체와 영화의 균형을 잡는 데도 고민했다. "가출팸의 현실은 더 참혹할 수 있다. 이 영화로 가출팸이 미화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잘못 전달되는 부분도 있을 것 같기에 고민을 많이 했다. "자극적인 무언가가 강조되거나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도 덧붙였다.

극 중 소현은 한없이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캐릭터다. 그의 얼굴에서 얼핏 미소가 번졌을 때 희망이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간다. 아무리 불행한 세상에서 드문드문 던져지는 행복의 조각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지점이다.
조 감독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나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건 일종의 학습을 통해서 이뤄진다고 생각하는데 소현은 한 번도 그런 걸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허둥지둥 무언가를 쫓기만 하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 안에서 불안해하고 관계를 망치기도 한다. 그런 점들이 부모를 잃은 야생동물이 들판에서 헤매는 것 같았다. 그런 게 소현에게서 느껴졌다. 물론 이민지 배우가 연기를 잘해줘서 그렇다"고 만족해했다.
그는 "이민지 배우가 모든 신에 나오는데 균형을 잡고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연륜이라고 할까? 그런 걸 가지고 있는 배우라고 확신했다"며 "다른 배우들도 많이 만나 봤는데 이민지 배우가 딱 맞았다. 다른 역할을 한 배우들도 그 성격에 부합하는 면을 보고 같이하자고 부탁을 했다. 2년 전 영화인데 출연 배우들이 이제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의 매력을 뽐내는 느낌을 받고 있다. 꿈의 제인 덕은 아니겠지만 멋진 배우들을 내가 운 좋게 만났다는 생각에 기쁘다"고 웃었다.
소현의 발가락이 한 개 없다는 게 소현의 불행을 고스란히 표현한다. 굳이 그의 전사가 필요 없기도 한 이유다. 조 감독은 "우리 영화에서 소현이가 유일하게 진실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라며 "잘못 그려지면 실례이고 오해를 살 수 있는데 민지씨가 잘 표현해줬다"고 좋아했다.
영화 `꿈의 제인` 조현훈 감독. 사진 |유용석 기자
제인의 불행론(혹은 행복론)은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그는 "참혹한 세계에서 어떤 이상적인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사람이 내게도 필요했다"며 "제인이라는 인물에 나조차도 의지한 면이 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대사들이 꽤 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할 때, 영화 안에서 그들을 방치시키고 책임감을 느끼지 않은 방식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해줄 말이 있다면 꼭 내가 아니더라도 제인 같은 인물이 해줬으면 했다. 그 마음이 영화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핵심이었다"고 짚었다.
"영화를 통해 불행한 감정이나 절망을 나만 갖고 사는 게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잘못된 것도 아니라는 걸 사람들이 알았으면 해요. 본인이 절망하지 않고 조금 더 힘을 내도 된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서 얻어갔으면 좋겠어요. 영화가 해주는 역할 중에 그런 게 있다고 믿어요. 저도 영화를 통해서 희망을 품었던 사람이라서 앞으로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연출자가 되고 싶어요."
조 감독은 이방인에 관심이 많기에 차기작도 대안 가족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다. 아직은 구체화하진 않았다. 말하는 게 서툴긴 하지만 조심스럽게 또 진지하게 자기 생각과 의견들을 말하는 감독에게서 조만간 또 괜찮은 작품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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