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10억원 전재산 고대에 기부한 노신사…"이름 석자만 남기고 싶소"
입력 2017-06-01 15:53 

팔순을 앞둔 노 사업가가 이름 석자만 남긴 채 아무 연고도 없는 고려대에 10억원이 넘는 전 재산을 기부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1일 고려대에 따르면 충청남도 청양 출신인 이문치(78)씨는 지난 3월 학교 측에 접촉해 "공학도를 위해 써달라"며 현금 1억원을 기부했다. 이씨는 본인을 비롯해 가족 중 어느 누구도 고대와 접점이 없다. 고대가 더 깜짝 놀란 건 한 달 뒤였다.
지난 4월 이씨는 본인소유 아파트 두 채와 예금계좌 등 전 재산을 부동산 증여 및 유언공증 형식으로 고대에 쾌척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모두 합쳐 시가로 10억원을 훌쩍 넘는 금액이다. 고대는 공식 기부식이라도 마련해 감사를 표하려 했다.
그러나 이씨는 "이름 석 자만 남기고 싶다. 아무것도 묻지도 밝히지도 말아달라"며 사양했다. 그는 고액 기부 결심 배경에 대해 학교 측에 "어린 시절 중학교도 못 다닐 정도로 형편이 어렵고 안 해본 일이 없다"면서 "학생들이 학비 때문에 학업에 지장받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꿈을 펼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고려대 내에서도 공대를 딱 찍어 기부했다. 그는 "고대가 사회를 이끄는 인재를 많이 배출하고, 나라가 부강해지고 사회가 풍요로워지려면 공대에서 뛰어난 인재가 많이 배출돼야 한다"고 밝혔다. 고대는 이씨 뜻에 따라 '이문치 장학기금'을 조성해 향후 집행할 계획이다. 이씨가 3월에 기부한 1억원은 공대생 6명에게 이번 학기 장학금으로 수여됐다. 장학위원회가 경제적 상황과 성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발했다.
첫 장학생으로 선발된 건축학과 10학번 최정현 학생은 "얼굴을 직접 뵙고 감사 인사를 드리지 못해서 아쉽다"면서 "기부해주신 선생님 뜻대로 성실하게 공부하겠다"고 말했다. 기계공학부 13학번 이호정 학생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서 "기술 관련 대안학교를 설립해 세상에 도움이 되는 교육플랫폼을 만들고 싶다"고 미래의 또 다른 나눔을 약속했다.
염재호 고려대 총장은 "자수성가하신 분이 평생 모은 재산을 기부해 더욱 의미가 깊다"면서 "이름 석 자만 남기신 기부자의 겸양에 존경을 표한다"고 말했다.
한편, 올 들어 고려대에는 기부가 줄 잇고 있다. 지난 3월에는 긍정심리학계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는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가 정년 퇴임하면서 후학들을 위해 1억원을 기부했다. 2월에는 지난해 10월 향년 90세의 나이로 작고한 고(故) 최재석 고려대 명예교수의 부인 이춘계(87) 동국대 명예교수가 고인의 뜻에 따라 상속받은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아파트를 학교에 기부했다.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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