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통과 만나면서 `핫` 해진 춤과 오페라
입력 2017-05-17 16:07 
서울오페라앙상블 '붉은 자화상'.

#지난 6일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오페라 '붉은 자화상'. 이글거리는 눈매, 화염 같은 수염의 제 자신을 그린 조선시대 화가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국보 제240호)를 모티브 삼은 이 작품에서 바리톤 장철이 윤두서로 분했다. 극중 시대를 앞선 천재였지만 정치적 당쟁에 아끼던 수제자와 딸을 잃고 비로소 자신의 예술세계를 또렷이 인식하게 된 공재. 그는 노래한다. "삶을 담지 못하는 그림이 무슨 그림인가, 그저 장식일 뿐!"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서 초연한 국립발레단의 '허난설헌 수월경화'. 뛰어난 재능을 지녔던 조선시대 여성 시인 허난설헌의 시와 삶을 춤으로 담았다. 새, 부용꽃, 바다, 잎새 등의 시어들이 저마다 연둣빛, 푸른빛, 붉은빛 옷자락을 휘날리는 무용수들의 하늘하늘한 몸짓으로 그려졌다. 가야금 거장 황병기의 음악을 비롯해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가야금, 거문고 선율이 춤에 생명력을 더했다.
오페라, 발레와 같은 서양의 공연 장르가 한국의 전통을 만나 더욱 흥하고 있다. 이런 장르하면 으레 떠올리는 유럽의 귀족문화나 역사, 오랜 설화, 화려한 드레스와 장식 등 지극히 서구적 소재가 한국적인 것들로 교체된 모습은 분명 낯설지만 묘하게 친근하다. 익숙한 우리의 설화나 역사적 인물, 문학을 녹여낸 오페라와 발레는 대중의 이목을 좀더 쉽게 끌 수 있고, 완성도만 보장될 경우 해외 메이저 무대서 독창적 경쟁력을 갖는 점에서 존재이유가 분명하다.
장인주 무용평론가는 "'백조의 호수''호두까기 인형' 등 서양의 레퍼토리를 전 세계가 공유하는 발레 장르에서 국내 단체가 해외 무대를 겨냥한다면 소재가 반드시 우리 고유의 것일 필요가 있다"고 전한다. 심청 이야기를 소재 삼아 1986년 초연 이래 국내 창작 발레로는 최초로 해외에 진출, 15개국 40여 개 도시에서 공연하며 '발레 한류'라는 신조어를 이끌어낸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이 그 예다.
윤두서의 삶을 그린 창작오페라 '붉은 자화상'의 연출을 맡은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장수동 예술감독은 "우리 전통 가락을 기본으로 하되 현대적 조성의 음악을 도입해 신선한 분위기를 자아냈다"고 밝혔다. 또 대표적인 이탈리아 오페라들의 감미로운 벨칸토 창법을 우리 전통 음악의 시김새 장단과 장식음으로 갈아끼워 한국 관객과 눈높이를 맞추려 했다는 설명이다.

이달부터 내달 말까지 한국 색채를 듬뿍 머금은 작품들이 여럿인 만큼 한번쯤 체험해볼 만 하다. 오는 19~21일 서울 예술의전당서 '제8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의 참가작으로 열리는 노블아트오페라단의 오페라 '자명고'가 대표적이다.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설화를 소재로 옮긴 '자명고'는 1969년 초연됐던 한국의 대표적 창작오페라다.
페스티벌 조직위의 배영주 팀장은 "1960~70년대에는 공연 아카이빙이 미흡했던 만큼 당시 한국적 소재로 창작된 오페라들이 초연 이래 많이들 사장돼왔다"며 "베르디나 푸치니 오페라도 초연 후 여러번 다듬는 과정을 거쳐 걸작이 된 것처럼 한국 오페라들도 이처럼 공연 기회를 계속 만들어 레퍼토리를 늘려보고자 한다"고 전했다. 내달 4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이외에도 전래동화 '옹고집전'을 모티프로 한 하트뮤직의 오페라 '고집불통 옹'(26일), 김유정의 동명 소설을 원작 삼은 그랜드오페라단의 '봄봄'(6월2~4일) 등이 소개된다. 원작 고유의 해학이 고스란히 담겨 연극적 요소가 강하면서도 서양 오페라 어법을 십분 반영한 '봄봄'은 국내 창작 오페라계에서 의미가 큰 작품이다.
국립무용단의 신작 '리진'(6월28~7월1일)도 주목이 가는 대상이다. 김상덕 신임 예술감독이 안무한 이 작품은 개화기 프랑스 외교관과 사랑에 빠진 조선 궁중 무희 리진의 삶을 춤에 녹였다. 김탁환과 신경숙의 소설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리진'은 서양식 고전발레의 형식을 한국에 맞게 변용한 국립무용단 고유의 무용극 장르에 속한다. 한번쯤 들어본 역사적 인물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토대로 진행되는 만큼 한국무용에 익숙지 않은 관객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오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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