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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자 로망 `강남4구 재건축`의 그림자
입력 2017-05-12 06:02 
개포주공 1단지 /사진=매경DB
[뉴스&와이]
-'여태까지 낮은 임대료로 산 대가'(?)…겨나는 세입자들
-올해 서울 이주 예상 4만9000가구 중 40% 이상이 강남4구에 집중
-강남 개포주공에서 노원 상계주공·수도권 외곽으로

"개포주공에 살았는데 재건축 때문에 이쪽으로 이사 오겠다며 전세금이 얼마인지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같은 서울이지만 직장 위치를 감안하면 남북은 멀죠. 그래도 돈을 생각하면 선택지가 많지 않잖아요." (서울 노원구 상계동 A공인 관계자)
2017년 상반기가 지나가는 중이다. 7월부터 시작되는 하반기를 앞두고 '서울 재건축·재개발 4만9000가구 이주 대기…전세난 우려'라는 기사들이 나온다. 7월부터 재건축 '최대어'라는 별명이 붙은 강동구 둔촌주공에 이어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등이 줄줄이 이주에 들어갈 계획이기 때문이다.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는 서울 전체의 42%에 육박하는 2만462가구가 올해 이주할 예정이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불확실성이 크다. 계획은 어디까지나 계획일 뿐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주·분양한다던 단지가 올해 하반기에도 제자리걸음 중인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도 이주 얘기가 나오는 것은 사업승인 이후 관리처분인가를 받았거나 인가를 앞둔 단계이기 때문에 불확실성은 확연히 낮은 편이다.
이주 관련 기사가 나올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투자자가 아니라 세입자들이다. 사업이 이주나 관리처분인가를 앞둔 단계이기 때문에 투자 목적에서 집을 사들여 조합원이 된 사람들의 불안감은 이전 단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하다.
하지만 세입자들은 어딘가 살 곳을 정해 떠나야 한다. 어디로 가야 할까. 요즘같이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금)이 70%를 돌파하는 시대에는 전세금을 빼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거나 이참에 아예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상황은 생각보다 눈물겹다. 서울시가 나서서 이주 시기 조정을 하고 있지만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세입자들의 전세난은 부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단 아파트 재건축은 재개발 사업과 달리 세입자 이주비도 나오지 않는다. 당장 7월 이주를 앞둔 강동구 둔촌주공은 2단지 전용 51㎡형의 매매가격이 7억8000만~8억1000만원이다. 하지만 전세금은 7000만원이다. 매매·전세 모두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의 4월 신고 실거래 가격인데 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전세가율이 8.6~9% 선이다.
인근 A공인 관계자는 "실제 매매 시세는 가장 낮게 나온 매물의 호가가 8억원으로 전세가율은 10% 미만"이라며 "이주가 다가올수록 전세금이 떨어지는데 현재 세입자들이 근처 다른 단지로 이사가려면 추가로 들여야 할 돈이 수억 원"이라고 말했다.
8억원짜리 전용 51㎡형 '딱지'(조합원 물건을 이르는 시장 용어)를 가진 집주인에게는 2억7000만원 정도의 이주비가 나온다. 집주인이면서 실거주자였다면 그래도 이런저런 대출을 통해 인근 아파트 전세를 얻을 수 있지만 세입자는 아니다.
인근 B공인 관계자는 "실거주 집주인들은 근처에 새로 대거 입주해 전세가율이 일시적으로 내린 대단지 아파트를 찾아 미리미리 움직였다"며 "하지만 전세 보증금을 빼봐야 2억이 안 나오는 세입자들은 오래된 빌라(다세대·연립)나 하남·남양주 등 수도권 단독주택·빌라 등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합 계획대로라면 하반기 이주 예정인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용 50㎡형은 4월 실거래 매매가격이 12억원 선이지만 전세금은 1억~1억3000만원 선이다. 전세가율이 8.3~11%밖에 안 된다. 더 좁은 전용 42㎡형은 매매가가 10억원이지만 전세는 8000만~9000만원. 전세가율이 8~9% 선으로 더 낮아진다. 개포주공1단지는 총 5040가구 규모지만 실거주 소유자는 700명 정도다. 재건축 사업 논의로 몸값이 뛴 이 단지 소유주들은 대부분 의사·교수·사업가 등이지만 세입자들은 택시운전사, 식당·가정 도우미인 경우가 많다.
이 정도 전세금으로 이사할 수 있는 아파트는 북쪽에 있는 노원구 상계주공 정도다. 내년에 재건축 연한이 다다르는 상계주공 16단지는 전용 45㎡형 매매가격이 2억~2억1500만원인 반면 전세금은 1억2000만~1억5000만원 선이다.
인근 C공인 관계자는 "매매가격이 본격적으로 오르지 않았고 이주 단계에 이르려면 5~10년이 걸리기 때문에 전세를 묻는 사람이 많다"며 "대부분 직장 때문에 서울을 벗어나기 힘든 경우라서 강남 개포동에 살다가 상계주공으로 이사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서울에선 이른바 방 2칸짜리 신축 빌라(전용 30~40㎡)가 1억3000만~1억9000만원 선이고 전용 50㎡형은 1억8000만~1억9000만원 선이다. 돈이 없을수록 관리 상태도 떨어지는 노후 빌라로 찾아들 수밖에 없다.
세입자와 투자자의 사정은 갈린다. 세입자들이 이사할 다른 집을 찾는 동안 투자자들은 새로운 주인이 됐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들어 서울에서 가장 많이 사고팔린 아파트는 강동 둔촌주공(1~4단지·총 201건)이다. 2위는 강남 개포주공1단지(74건)였다. 두 단지 모두 올해 재건축 이주를 앞두고 있다.
[김인오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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