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남자영화가 너무 많다? 내가 하면 다를 자신 있었죠"
입력 2017-05-11 14:23 
영화 `불한당`으로 칸 초청받은 변성현 감독. [한주형 기자]

"형, 나 사실 경찰이야."(극 중반 현수)
"지겹다... 진짜... 이렇게 사는게..."(극 말미 재호)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17일 개봉)의 위 대사들은 조금 이상하다. 교도소 언더커버(위장잠입) 소재의 느와르물임에도, 위장잠입 경찰 현수(임시완)는 서사 중반부 즈음 제 패를 쉽게 드러내 놓는다. 출소 후 범죄조직을 휘어잡는 재호마저 일순간 사는 게 지겹다는 말을 서슴없이 뇌까리는데, 그 모습이 전형적인 한국영화 악인들과 달라 사뭇 인간적이기까지 하다. 10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불한당'의 변성현 감독(37)은 "기존 언더커버물은 장르적 쫀쫀함, 그러니까 걸릴듯 말듯한 긴장감이나 정체성 혼란의 양갈래에 의존한다"며 "두 가지 모두를 배제하고 가면 다른 영화가 나올 것 같았다"고 했다. 한 마디로 자신있었다는 소리다.
이 영화는 17일 개막하는 제70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 초청작이다. 미드나잇 스크리닝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장르영화들을 심야 상영하는 비경쟁 부문으로, 주류 영화계의 각광받는 감독들도 소수만 거쳐간 코스다. 김지운 감독이 '달콤한 인생'(2005)으로, 나홍진 감독이 '추격자'(2008)로 부름 받았고, 최근에는 '표적'(2014)의 윤홍승, '오피스'(2015)의 홍원찬, '부산행'(2016)의 연상호 감독이 연속 초청됐다.
칸 진출이 생애 처음인 변성현 감독은 2012년 '청춘 그루브'로 데뷔한 신예다. 그해 12월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물 '나의 PS 파트너'를 거쳐 이번이 세 번째 연출작으로, 그로서는 일생일대 기회를 맞은 셈이다.
―칸 초청 소감은?
▷처음엔 신나고 좋았는데, 지금은 담담하다. 영화제 노리고 찍은 것도 아니고, 큰 의미 안 두려 한다. 그냥 얻어걸린 거다.

―유쾌한 데이트무비였던 전작과 완전 다른 장르물이다.
▷'나의 PS파트너' 찍으면서 다음 영화는 남성영화로 가야겠다고 장르부터 정했다. 전작이 말랑말랑했으니 선 굵은 영화로 가보자, 마틴 스콜세지 느낌도 살려보자, 이런 생각이었다.
―한국 주류 영화가 거의 남성영화다. 새로움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을 텐데.
▷'신세계'(2013)가 언더커버물의 어떤 대명사가 돼버린 감이 없지 않다. 주변에서 우려했지만 나는 뭔가 다른 영화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스타일적으로도 낯선 시도를 보여주려 했다.
―배우 설경구와 임시완의 조합에 처음엔 갸웃했다. 어떻게 둘을 떠올렸나.
▷시완씨는 반듯한 청년이미지이고, 약간 유약하고 너무 예쁘게 생겼잖나. 그래서 오히려 재밌을 것 같았다. 새로운 모습 보여주면 신선하게 다가오리라 봤다. 설 선생님은 여러 작품을 찍었지만 폼 나는 역할을 장르적으로 해본 적이 없다. 때 빼고 광 내서 멋있고 섹시한 이미지 한 번 뿜어내면 어떨까 상상해봤다. 올림 머리, 핏 들어가는 정장, 꽉 끼는 와이셔츠... 처음에는 쑥스러워하다 금새 적응하시더라.
―두 남자 간의 믿음과 배신, 사랑과 우정이란 테마를 꽤 복잡한 층위에서 그린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게 늘 그렇지 않나. 아주 간발의 타이밍에 엇갈리는. 어릴 때 '로미오와 줄리엣'이 매우 코미디 같았다. 줄리엣이 눈 떠서 약 먹는 그 타이밍 때문에 비극이 벌어진다. 살다보니 그런 엇갈림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누군가를 좋아했을 때에도 그렇고. 재호와 현수도 그런 타이밍에서 엇갈린다. 서로 살겠다는 조바심 때문에 하나씩 멈춰선다.
―결말이 모호한 건 의도적인 결단처럼 여겨졌다.
▷한 두 번 정도는 곱씹어 볼 수 있는 영화이길 바랐다. 통쾌한 답보다 생각할 여지를 주고 싶었다. 엔딩에 대한 걱정의 시선이 있었지만, 현장 스탭들끼리는 확신이 있었다.
―서울예대 연기전공에서 연출전공으로 옮긴 걸로 안다.
▷그냥 연출이 더 멋있어 보였다. 왠지 나는 더 잘 찍을 수 있겠다는 자신도 있었고.
―칸에서 가장 기대하는 건?
=가면 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무엇보다 뤼미에르 극장에서 내 영화가 상영될 때의 그 '때깔'을 얼른 느껴보고 싶다.
[김시균 기자·사진 =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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