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아프리카 지역전문가의 조언 "한국적 민관협조 모델이 살길"
입력 2017-05-03 16:23 

지난 2009년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270㎞를 종주하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문헌규 에어블랙 대표가 선후배들에게 선언했을 때만 해도 사실 진심은 아니었다. 국내 굴지의 비철금속 무역 회사를 다니다 자기계발의 필요성을 느낀 문 대표는 회사를 그만두고 MBA 과정을 수료하러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기 힘들었던 문 대표는 장난처럼 아프리카 자원 탐사를 위해 아프리카 종주 마라톤 대회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게 덜컥 회사에 소문이 나버렸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반쯤, 본인의 강한 호기심과 도전정신에 반쯤 휩쓸려간 문 대표는 결국 그해 9월 대회 참가를 결심했다.
아프리카 종주 마라톤은 고통스러웠지만, 중간중간 기이한 인연들이 문 대표와 아프리카 사이를 강하게 묶어놓았다. 대회 초반부터 힘들어 뒤로 처졌을 때 일본 NHK의 한 사막 도전 다큐멘터리에 참여중인 유명 여자 탤런트가 그에게 물을 건네주고 부축을 해주며 챙겨줬다. 전야제에서 인사를 나눈 인연 덕분에 문 대표는 NHK 방송에 20분 가량 출연하게 됐다.
대회 이틀째에는 길을 잃어버려 한 모래둔턱 위로 무작정 올라간 뒤 길을 찾아 내려오다 데굴데굴 구르고 말았다. 그런데 일어나 고개를 들어보니 대회를 중계하던 유로스포츠의 카메라 한 대가 그를 찍고 있었다. 방송사는 문 대표를 방송에 내보내면서 한국인들은 편한 길을 택하지 않고 험지를 찾아 나서는 도전정신을 갖고 있어 성공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렇게 문 대표는 방송을 타게 됐고, 방송을 본 지인들은 그에게 응원의 메세지를 보냈다.
이런 기연들을 만난 문 대표는 아프리카에 8개월을 더 머무르며 아프리카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현재 국내 최고의 아프리카 전문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힐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의 '서울앱비즈니스센터'에서 만난 문 대표는 "민간 기업이 정보 부족 탓에 뛰어들기 힘든 아프리카 지역에서 사업을 하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는 게 내 역할"이라며 "아프리카 각지의 정보, 현지 기업 네트워크 등을 통합 제공하는 '사파리 통' 앱을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표는 코트라(KOTRA), 창조경제혁신센터, 서울시 등 공공기관이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삼성, LG 등 대기업들의 현지 주재원 양성 교육에도 나서고 있다.

문 대표는 "2009년 마라톤을 하면서 여러 마을을 지났는데 아무리 오지라도 일본의 미쓰시비 간판은 버젓이 있었지만 우리나라 기업의 간판은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며 "위기감을 느껴 아프리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미국·유럽·중국·일본이 아프리카에 엄청난 투자를 해 도로·철도를 만들고 발전소·댐을 올리며 자원 확보의 교두보를 만들고 있는데 한국은 소규모 병원이나 다리 정도만 만들며 뒤처지는 모습에서도 자극을 받았다.
선진국보다 아프리카에서 경제력·외교력에서 밀리는 한국 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결국 인적 자원을 양성하고 앞선 IT 기술을 활용해 집단지성을 키워야 한다고 문 대표는 생각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한국의 코이카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일본의 자이카를 보면 아프리카 전문가 한 명을 키우기 위해 신입사원을 2년동안 현지에서 근무시키고, 다시 자국에 돌려보내 석박사 과정을 마친 뒤 아프리카에 높은 보직으로 다시 근무하게 하더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인재 양성 시스템이 체계화돼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아프리카에 있는 중국 화교들이 각종 행사를 통해 문화적으로 화합하며 정보 교류를 통해 집단지성을 만들어가는 모습도 깨우침을 줬다.
2010년 귀국한 문 대표는 아프리카 모든 국가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네이버 카페 '고고 아프리카'를 만들어 현지 교민들, 아프리카 진출을 꿈꾸는 사업가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현재 2만 5000여명의 회원수를 확보하고 있는 이 카페를 통해 문 대표는 사파리 통 앱의 기반도 마련할 수 있었다.
문 대표는 "카페와 앱을 통해 단순히 정보만 공유하는 게 아니라, 아프리카 시장의 파이를 키워 한국 상인들이 더 큰 이득을 얻도록 하는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아프리카 현지 교민들과 국내의 사업가들이 서로를 경쟁자로만 인식해 한정된 시장을 나눠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대립구조에 문 대표는 정부가 아프리카에 투입하는 공적원조자금을 소개해 변화를 일으켰다. 정부가 제안하는 아프리카 공적원조자금 사업을 확보하려면 국내 사업가가 행정절차를 맡고, 현지 교민들은 실제 사업을 담당하는 역할 분담이 필요해져 자연스럽게 협력이 이뤄졌다. 공적원조자금 확보를 통해 사업자들이 얻을 수 있는 이익도 늘어날 수 있었다.
선진국이 경제·외교·군사 모든 분야에서 앞서있는 아프리카에서 우리나라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독자적인 진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문 대표는 강조했다. 그는 "미국·유럽·일본은 물론 중국과 비교해 접근하는 방법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며 "아프리카 진출 사업가와 교민의 개개인 역량을 키우고, 이를 통해 정보 교류를 강화해 나가면서 유연하게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당부했다.
[ 김제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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