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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 NH농협금융 회장 "내가 평생 추구한 경영철학은 `원칙 제일주의`"
입력 2017-04-30 17:27  | 수정 2017-04-30 21:37
"현대증권을 매각하기에는 법적 근거가 부족합니다. 현대그룹도 설득하기 어려우니 재고해주시기 바랍니다."
2003년이 저물어 가는 어느 날, 집무실을 찾아온 부하의 끈질긴 설득 때문에 이정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현대증권의 증자 및 매각계획을 철회했다. 당시 금융당국은 유동성 위기에 빠진 현대그룹을 살리기 위해 현대의 금융계열 3사(현대투자증권, 현대투신운영, 현대증권) 가운데 현대투자증권과 현대투신운용을 매각했다. 이후 매각 과정에서 투입된 공적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당국은 남은 금융계열사인 현대증권 역시 매각하겠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위원장의 집무실을 찾은 김용환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증권감독과장.
당시 그는 4급 과장이었고 상대는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금융관료 수장이었다.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은 당시 위계질서를 뛰어넘어 논쟁을 벌일 수 있었던 힘의 원천으로 "격식보다 원칙, 형식보다 실리를 앞세웠기 때문에 당당히 설명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당시 현대증권에서는 "매각은 법적 문제가 있다"며 반대했다. 당국에서 매각을 밀어붙이기에는 법적근거가 미약하고 매각 과정에서 필요한 증자 역시 주주의 주식가치를 떨어뜨리는 '배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김 회장은 "원칙이 무너지면 시장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매각을 반대했고 이를 관철시켰다.

1980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관료사회에 입문한 김 회장은 '원칙 제일주의'를 앞세워 숱한 난관을 극복해 왔다. 그리고 한국수출입은행장에 이어 지난 4월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연임에 성공한 이후에도 역시 철저하게 원칙경영에 입각해 회사를 이끌고 있다.
그는 "농민지원이라는 목적으로 저렴한 이자와 수수료를 적용하고 있지만 이 같은 혜택이 농민들에게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며 "돈을 많이 벌어 농업지원사업비를 많이 납부하는 것이 농협금융의 할 일인 만큼 앞으로 돈 버는 능력을 키워 수익센터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협금융은 지난 1분기 2216억원의 흑자를 기록하며 2012년 지주 출범 이후 최대 실적을 올린 데 이어 올해 4월 말까지 흑자폭을 2600억원으로 늘렸다.
금감위 감독정책2국장, 증권선물위 상임위원,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등 금융정책과 감독분야 요직을 차례로 거친 김 회장은 2012년 3월 농협금융지주가 출범한 이후 첫 번째 연임한 수장으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그는 2015년 4월 취임한 이후 소통 현장 신뢰 스피드를 '4대 경영 원칙'으로 제시하며 농협금융에 신선한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연임(임기 1년)에 성공한 김 회장은 "보험, 증권 등 비은행 분야는 선전하고 있지만 은행 부문의 수익성은 다른 금융지주에 비해 여전히 취약하다"며 "농협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을 개선하고 다른 은행보다 활용도가 낮은 방카슈랑스와 펀드 수수료도 현실화해야 한다"고 구체적인 경영목표를 제시했다. 그는 최근 금융계를 강타하고 있는 핀테크 열풍과 관련해 "점포 숫자는 줄이되 개별 점포의 역량은 강화해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전국 7개 지역에서 운영 중인 허브앤드스포크 방식의 통합점포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허브앤드스포크 방식은 허브 센터와 스포크 영업점으로 구성된 클러스터를 구축해 영업점 간 시너지를 노리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는 농협은행을 오는 2020년까지 4대 시중은행(신한·국민·하나·우리)과 비슷한 경쟁력을 갖춘 메가뱅크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 회장은 "임기 내에 어떤 성과를 내는 것보다는, 누가 수장으로 오더라도 탄탄한 경쟁력을 갖춘 금융회사를 만들도록 기본 구조부터 바꿔 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제2기 임기를 맞은 김용환 회장은 농협금융의 탄탄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수익창출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그는 "3000억원 단위로 조성한 인프라 펀드를 8000억원 수준으로 키우고 새로운 먹거리사업을 창출하기 위해 IB(투자은행) 분야에도 과감하게 진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금융계 최대 화두인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김 회장은 "금융지주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빅데이터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고객들 눈높이에 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농협금융지주는 빅데이터 전략단을 구성하고 산하 계열회사인 농협카드의 고객정보를 활용해 농협생명보험·농협손해보험과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카드부문에 축적돼 있는 풍부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맞춤형 보험상품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겠다는 복안이다.
금융계의 또 다른 화두인 글로벌 시장 공략에도 박차를 가한다. 농협금융은 올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의 현지 금융사를 인수해 소액신용대출 사업에도 본격 진출할 계획이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만큼 순이자마진이 크기 때문에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하며 특히 현지 시장에서 농협 경제지주와의 협업도 적극 고려하고 있다. 김 회장은 "진출 대상 국가 대다수가 농업국가이기 때문에 앞으로 농협 경제지주 사업인 사료와 비료, 농기계 수출 사업 진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앞서 농협금융은 지난해 12월 미얀마에서 소액대출 회사를 신설했으며 홍콩에서도 증권분야 현지법인을 설립한 뒤 은행과 보험의 추가적인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김 회장은 "금융의 경우 네트워크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융외교'라는 말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면서 "잦은 스킨십을 통해 해외 금융당국과의 접촉면도 넓히고 현지 시장의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해외 진출에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진출과 관련해서는 지난해 양해각서를 체결한 이후 공소그룹과의 협업이 현재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공소그룹은 현재 소속 직원들과 이들이 설립한 인터넷 쇼핑몰 이용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 소액대출회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농협금융은 지분투자 방식으로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 회장은 "중국 공소그룹은 인터넷 쇼핑몰과 백화점 등 폭넓은 유통망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번 사업은 향후 농협 경제지주 사업의 진출에도 좋은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계부채 1300조원, 자영업자 대출 650조원 시대를 맞아 농협금융은 리스크 관리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고 김 회장은 강조했다. 그는 "일본의 경우 자영업자가 몰락하면서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된 바 있다"며 "우리나라도 자영업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자영업 리스크관리 태스크포스를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이전부터 조직·운영하면서 변동상황을 확인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 김용환 NH농협금융 회장은
△1952년 충남 보령 출생 △서울고·성균관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밴더빌트대 경제학석사 △1980년 행시 23회 △2004년 금감위 공보관 △2008년 금융위 상임위원 △2009년 금감원 수석부원장 △2011~2014년 한국수출입은행장 △2015년~NH농협금융지주 회장
[김종훈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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