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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예프의 기적` 세계 톱리그 진입한 한국 아이스하키
입력 2017-04-30 17:08 

지난 달 29일(한국시간)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열린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 디비전 1 그룹 A 대회 최종 5차전. 홈팀 우크라이나를 만난 한국은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부었다. 몸이 성한 선수 하나 없었고 체력도 바닥이 났다. 하지만 선수들은 이를 악물었다. 이 한 경기에 '꿈의 무대' 월드챔피언십 진출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축구의 승부차기와 같은 슛아웃에서 극적으로 승리를 거두며 A그룹 2위에 오른 한국은 이제 세계 최고 수준의 16개국이 나서는 월드챔피언십 멤버가 됐다. 등록 선수 233명, 고등학교 팀 6개와 실업팀 3개에 불과한 한국 아이스하키가 일궈낸 기적과도 같은 결실이었다.
지난 달 3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금의환향한 백지선 감독은 "나이가 들면서 정말 눈물이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어린 선수들을 보면서 정말 대단한 감정을 느꼈다"고 밝혔다.
'2부리그 2위'. 혹자는 이들의 성과를 폄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낼 수 밖에 없다.

불과 14년전인 2003년.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 출범 당시 한국은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중국에도 밀렸다. 2010년 동계올림픽 지역예선에는 출전조차 하지 않았다. 상대도 되지 않는 전력이기에 출전비가 아깝다는 이유에서 였다. 게다가 지난 2014년 4월 평창동계올림픽 개최국 자동출전을 걸고 출전했던 세계선수권 디비전 1그룹 A조에서 한국은 전패를 당하며 '3부리그'로 강등되기까지 했다.
그런데 불과 3년만에 한국은 미국, 캐나다, 러시아 등 아이스하키 강국과 같이 경쟁할 수 있는 월드그룹으로 올라섰다. 참고로 2012년 이후 월드그룹 16개국 중 14개국은 단 한번도 변하지 않았고 나머지 강등을 오가는 2개국도 오스트리아, 카자흐스탄,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정도에 그쳤다. 말 그대로 '철옹성'.
그런데 한국이 이 철벽을 깨고 1부리그에 오른 것이다. 3부리그에 있던 팀이 2부리그를 거쳐 2년만에 월드그룹에 오른 것은 세계 아이스하키 역사를 따져도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한국 아이스하키의 기적. 그 시작은 '아낌없는 지원'이었다.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이 2013년 1월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한국 아이스하키는 막강한 투자를 받으며 싹을 틔웠다.
먼저 국내 선수들의 기량 강화를 위해 핀란드 2부리그에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 10명을 파견해 경험을 쌓게 했다. 또 일본을 설득해 상무를 아시아리그에서 뛸 수 있게 하며 선수들의 생명을 연장시켰다. 이번 대회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김기성 이돈구 김원중 조민호 신상우 등이 상무에서 기량을 향상시켰다.
최고의 지도자도 영입했다. 2014년 7월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스타 선수 출신인 백지선(50·영어명 짐 팩)을 감독으로 선임한 것. 백 감독은 한 살 때 캐나다로 이민가 1991년 NHL 피츠버그 펭귄스 수비수로 뛰면서 아시아인 최초로 1991년과 1992년 스탠리컵을 거머쥔 '슈퍼스타'다. 그리고 두달 뒤 역시 NHL에서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박용수(41·영어명 리처드 박)가 대표팀 코치로 가세했다.
감독과 코치만 최고로 선임한 것이 끝은 아니다. 선진 시스템을 과감하게 도입했다. 비디오 분석관을 영입해 전술 및 선수들에게 디테일한 훈련을 진행했다. 또 한국 선수들의 장점인 '스피드'를 극대화 하기 위해 체력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며 괴롭혔다. 마치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한국 대표팀이 떠오르는 이유다. 한국에 패한 리치 커노마스 헝가리 감독도 "한국은 자국 협회의 꾸준한 프로그램을 통해 발전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초반 3연승을 거둔 비결"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기도 했다.
물론 즉각적인 전력 강화를 위한 '귀화 선수'에도 공을 들인 것이 사실이다. 2013년 브락 라던스키를 특별 귀화시킨 것을 시작으로 6명의 푸른 눈의 한국인이 태극마크를 달았다. 특히 '골키퍼'인 맷 달튼은 매 경기 30골 이상을 막아내며 맹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토종 선수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기적'도 없었다. '초반 3연승'을 거둘 당시 한국이 넣은 12골 중 10골을 토종 선수가 넣었다. 그 중 김기성은 3경기 연속골을 넣으며 승리를 이끌었다.
정몽원 아이스하키협회장의 아낌없는 지원, 최고의 열정과 지략을 가진 백지선 감독, 귀화 선수와 토종 선수가 하나가 되어 보여준 투지, 그리고 한국 아이스하키 팬들의 열렬한 응원.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된 순간 한국은 기적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꿈의 무대로 진출한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하나같이 "한국팀이 외국 선수들에게 밀리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다", "외국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장착한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질주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조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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