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내가 쓴 소설 중 가장 재밌다" 신작펴낸 소설가 김주영
입력 2017-04-26 16:01  | 수정 2017-05-03 16:08

"이 소설 장담합니다. 굉장히 재밌습니다. 난 좀처럼 내 작품 이렇게 얘기 안 하는데. 한 번 읽기 시작하면 금방 밤 새울 겁니다. 아, 밤은 안 새우겠네요. 그정도로 두껍진 않지요?(웃음)"
노작가의 패기라고 해야 하나. 처음에는 농담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지금까지 쓴 소설 중 최고로 재미있다"며 그렁그렁한 경상도 사투리를 내뱉더니, "딱 만부만 팔렸으면 좋겠다"며 껄껄대는 것이었다.
등단 47년째를 맞은 김주영 소설가(79)가 장편소설 '뜻밖의 生'(문학동네)을 냈다. 지난해 11월부터 4개월 간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 연재했던 작품이다. 26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실시간 독자 반응은 따로 살피지 않았다. 보면 미리 행복해질 것 같으니까"라며 능청스레 또 한 번 좌중을 웃겼다.
소설의 중심 인물은 박호구다. 노인이 된 호구와 소년 시절 호구의 서로 다른 시점이 교차 전개된다. "그녀의 출현이 몽환적이었던 까닭은 안개 때문이었다." 동해안 바닷가에서 불을 쐬며 노숙 중이던 노인 호구는 오리무중을 헤치고 나타난 매춘부 윤서와 대화를 주고받는다. 투명한 언어를 구사하는 윤서가 노인의 닫힌 마음을 열어젖히자, 호구는 잊고 있던 옛 시절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나는 외로웠고, 외톨이었다." 소년 호구는 주변의 따스한 손길 한 번 받지 못한 채 쓸쓸히 자란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도박에 중독된 무능한 가장이었고, 어머니는 그런 남편의 폭력을 못 이겨 무당 집으로 달아났다. 소외된 소년을 위로해준 건 옆집 단심이네가 키우던 개 칠칠이 뿐. 이 계통없는 똥개의 따뜻한 체온에 기대어 호구는 터미널 노숙자로서 추운 겨울을 견딘다.

작가는 이번 소설의 실질적 주인공이 '개'라고 했다. "우리가 인간을 비하할 적에 가장 손쉽게 하는 말이 '개XX'죠. 그런 개가 사람을 가르치고 다스리는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가장 비천할 지 모를 똥개가 사람을 기른다는 이야기. 이 역설은 자신의 시선을 항상 소외된 존재들에 정박시킨 작가의 글쓰기와도 무관치 않다.
작가는 "어두운 곳에서 사는 사람들,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는 사람들, 이런 존재들이 얻어갈 수 있는 위로는 무엇인지가 항상 마음 속에 도사리고, 수시로 남아 있기에 지금껏 글을 쓰는 게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어 자꾸 표현 수위를 고민하게 된다고 그는 털어놨다. 하층민들의 리얼한 이야기를 묘사하고 싶지만 나이가 눈에 밟힌다는 것이다. "쌍소리를 리얼하게 쓰고 싶고, 성애 장면도 질퍽하게 쓰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게 잘 안 됩니다. 며느리가 있고 사위가 있고 손자 손녀가 있으니 자꾸 눈치가 보여요. 혹여 손자가 '아, 내가 저런 할어버지를 두고 사나, (이 책) 태워버려야겠다' 이런 생각이라도 하면 어떡해요.(웃음)"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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