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별빛기행` 돌풍 일으킨 나선화 문화재청장
입력 2017-04-23 15:52 

"사람이 들지 않는 집은 낡기 마련이죠."
최근 나선화 문화재청장(67)과 경복궁 길을 함께 걸었다. 발걸음은 궁궐 가장 깊숙이 위치한 고종 황제의 서재 '집옥재'로 향했다. 지난해 6월 55년만에 일반인에게 개방된 곳이다. 동쪽 협길당은 열람실로 서쪽 팔우정은 궁중 다과와 책을 파는 북카페로 변신했다. "한옥 문화재의 경우 그냥 꽁꽁 사매고 있을게 아니라 환기를 시키고 난방을 하고 사람의 온기가 돌아야 더 오래 보존할 수 있어요. 문화재는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여기고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최선의 보존정책이죠."
신념과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다. 지난 11일 나선화 청장을 만나 지난 2년 반동안 이뤄낸 성과와 아쉬운 점, 각종 현안에 대해 가감 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나선화 청장의 정책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개방'이 아닐까 싶다.
▷지난해 궁·능 관람객이 1000만 시대를 맞았다. 경복궁 별빛야행, 궁중 문화 축전 등 궁궐 프로그램 개발과 고궁 야간 개방 확대에 힘입은 성과다. 지방에도 향교·서원 체험, 충무공 유적 연계 프로그램을 발굴했다. 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발굴현장을 관계자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사전신청 없이 방문하도록 한 '월성 발굴조사 현장 개방'도 성과로 꼽고 싶다. 문화재 발굴현장을 꽁꽁 싸매고 있으면 국민들의 관심도 멀어질 뿐더러 사정을 모르니 '왜 이리 오래 걸리느냐' 성을 내시기 마련이다. 그 과정을 함께 국민과 공유하면 쉽게 이해를 구할 수 있다. 그래서 발굴현장을 공개하기 시작했는데 기대이상으로 효과가 좋았다.

-얼마 전 문화재위원회는 설악산의 오색케이블카를 희귀 동식물의 서식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로 부결시켰고, 또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인근 지역 개발 사업을 모두 중단시킨 바 있다. 이는 활용보다는 보존의 손을 들어준 것 아닌가.

▷문화재를 둘러싼 보존과 개발의 문제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문화재청이 늘 고민하는,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이익이 상충되는 이런 사안들은 심사숙고해야 한다. 문화재는 한 번 훼손되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보존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 돼야 한다. 그럼에도 청장으로서 일률적으로 규제해오던 문화재 주변 건축관련 허용기준을 조정하는 등 제도적 측면에서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기위해 노력했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역시 재심의를 열어두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 역시 보존이냐 개발이냐를 놓고 갈등이 여전하다.
▷이 역시 첫 번째 목표는 울산반구대 암각화의 보존이다. 하지만 댐은 울산시민들의 식수다. 울산시민들의 건강과 문화재의 건강 모두를 지키는 방법을 모색하다 보니 시간이 걸린다. 현재 최종적으로 생태제방을 쌓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반구대암각화로부터 30m떨어진 둘레에 길이 357m, 높이 65m의 제방을 쌓는 것이다. 현재 울산시에서 그 제방을 설치할 때 암각화 기초에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세계 최고 금속활자냐를 놓고 7년간 논란이 됐던 증도가자 보물 신청건이 결국 부결됐다. 원소장자가 반발하고 나섰는데.
▷보물신청 여부 결정은 온전히 문화재위원회의 몫이다. 세계 활자 역사가 바뀌는 중대한 사안이니 대한민국의 명예가 달려 있는 것 아닌가. 아주 명료해야하고 객관적이어야 했다. 그리고 객관성이 담보될 때까지, 아직 우리 연구수준이 부족하면 보다 시간을 들여도 나쁠 게 없다. 몇 십 년이고 기다려서 보다 확실한 답이 나온다면 기다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요즘 '신(新) 서해문명론'을 주창하시며 강연도 열심이신데, 왜 갑자기 서해인가.
▷서해는 황하문명과 요하문명이 흐르는, 동서 문명의 소통의 역사가 흐르는 곳이다. 서해 앞에 흐르는 조류는 태평양에서 시작해 황해를 거쳐 오키나와 그리고 동남아의 인도양을 거쳐 아랍해까지 이어지는 해상의 '고속도로'다. 과거 경제의 통로이자 문화의 통로였다. 말하자면, 그리스 로마 문명의 지중해와 같은 곳이 바로 서해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서해문명의 중요성을 복원하는, 역사성을 가진 사업이다. 하지만 그동안 이런 역사적 중요성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동서 문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이화여대에서 역사를 공부했고 이후 도자기, 그 중에서도 도자사(史)를 공부했다. 당대 도자기의 유통과정을 보면 전라도 강진에서 만든 청자는 서해의 조류를 타고 개성에 전달됐다. 그리고 그게 다시 중국으로 갔다. 태안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저선이 바로 그 조류를 탄 조운선이다.

-그 조류가 현대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오늘날 현대 기관선도 그 조류를 타지 않고는 항해를 할 수 없다. 바닷길이 그만큼 중요하다. 이곳을 통해서 서구의 물질문명이 아시아 동쪽의 끝 대한민국까지 오지 않았나. 이제 반대로 대한민국이 이 조류를 타고 동양의 정신과 문화를 서쪽의 끝까지 보낼 차례다. 세계 많은 철학자들이 물질문명의 폐해에 대한 해결책을 '동양정신'에서 찾고 있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러시아 등 전 세계가 서해를 주목하고 있다. 정작 그 한가운데 존재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지 않아서야 되겠나. 새만금이 시작이다. 새만금은 굉장한 역사성 갖고 있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한 프로젝트다. 그 역사성을 알리는 일 역시 학자 나선화로서 할 일 중 하나라 생각한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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