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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포커스] 너클볼로 본 魔球 변천사...韓야구는 진화했다
입력 2017-04-23 06:55 
2017 KBO리그에서 너클볼을 던지며 순항 중인 kt위즈 라이언 피어밴드. 다만 피어밴드의 너클볼은 기존 너클볼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분석이다. 사진=MK스포츠 DB
[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내 너클볼은 아버지와 캐치볼로 만들어졌다.”
2017 KBO리그 초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kt위즈의 중심에는 외국인 에이스 라이언 피어밴드(32)가 있다. 특히 피어밴드가 구사하는 너클볼이 화제가 되고 있다. 올해까지 KBO리그 3년차를 맞고 있는 피어밴드이지만, 너클볼을 제대로 구사하는 것은 올 시즌이 처음이다. 피어밴드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 경기에 5개 정도 밖에 던지지 않던 너클볼을 올 시즌에는 20~30개씩 구사하고 있다. 140km대 중후반의 속구(포심 패스트볼)와 섞어 던지면서 타자들의 타이밍을 완벽하게 빼앗고 있다.
흔히 너클볼은 마구(魔球)로 일컫는다. 공의 회전이 거의 없이 흔들흔들 들어오는 너클볼은 어디로 갈지 모른다. 때에 따라서는 포수도 예측하기 어려운 곳으로 공이 들어오기도 한다. 일반적인 구종은 공기 중에서 빠르게 회전을 하면서 타자를 향해 날아가지만 너클볼은 회전이 없기 때문에 기류의 저항에 차이가 생긴다. 공의 표면 위에 울퉁불퉁하게 튀어 나온 실밥이 공기와 부딪히면서 불규칙하고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손가락 관절(너클)을 구부린 채로 공을 잡는 구종이라 너클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다른 구종들과 달리 손목을 채지 않고 밀어 던져야 회전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다.
다만 피어밴드의 너클볼은 전형적인 너클볼과는 다르다는 평가가 많다. 움직임과 떨어지는 폭이 일반적인 너클볼에 비해 작은 반면, 정확한 제구력과 110~130km대에서 형성되는 속도가 특징적이다. 김진욱 kt 감독은 피어밴드의 너클볼을 두고 정통 너클볼은 아니다. 정통 너클볼보다는 회전이 많은 변형 너클볼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피어밴드는 이번 스프링캠프때부터 너클볼을 던지기로 했다. 그는 올 시즌 들어 갑자기 너클볼을 던지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배웠고, 아버지와의 캐치볼을 통해 꾸준히 너클볼을 연마했다. 내 너클볼은 아버지와 캐치볼로 만들어졌다”며 예전부터 너클볼을 던지고 싶었는데 상황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스프링캠프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캠프 기간 포수들에게 너클볼을 던졌다. 쉽지 않은 구종이지만 캠프부터 열심히 던져왔기 때문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 너클볼의 매력? 던지는 사람도 어디로 갈지 모른다”
피어밴드 이전에도 KBO리그에서 너클볼을 구사하는 투수가 꽤 있었다. LG트윈스에서 뛰었던 김경태(현 SK코치)와 한화 이글스에서 은퇴한 마일영(현 한화 코치)가 유명했다. 현역으로는 SK와이번스 채병용이 너클볼을 구사한다. 하지만 이들을 정통 너클볼러라고 하기에는 어렵다. 이들이 던지는 너클볼은 경기당 10개를 채 넘지 않았다. 어쩌다 하나씩 보여주면서 타자들을 현혹시키는 용도였을 뿐, 너클볼이 주무기는 아니었다. 이들 외에는 LG와 롯데, kt에서 뛰었던 외국인 투수 크리스 옥스프링(현 롯데 코치)이 너클볼을 던졌던 대표적 투수다.
올 시즌부터 넥센 히어로즈 사령탑을 맡은 장정석 감독도 너클볼러 출신이다. 1996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할 당시에 장 감독의 포지션은 외야수였지만, 은퇴 직전 잠시 투수 전향을 준비한 적이 있다. 투수 전향을 결심했던 계기가 바로 너클볼이었다. 중학교 때 가끔씩 너클볼을 던졌던 장 감독은 KIA로 이적한 2003년 후반기에 코치와 캐치볼을 하다 이거 잘 하면 경기에 써먹을 수 있겠다”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훈련을 시작했다.
현역 시절 너클볼러로 변신을 시도했던 장정석 넥센 감독. 사진=MK스포츠 DB
하지만 속구 구속이 크게 오르지 않아 결국 실전에서 너클볼을 던져보진 못하고 은퇴했다. 장 감독은 내가 던진 공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 게 너클볼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며 용기를 가지고 도전했지만, 속구 구속이 빠르지 않았고, 제구도 안됐다. 빠른 속구에 느린 너클볼을 섞어 던져야 타자 공략에 효과적이다”라며 타자들이 너클볼을 그냥 버리는 볼로 인식하게 되면, 위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다만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너클볼의 제구에 대해서는 가운데 던진다고 생각하고 던지면, 범타나 헛스윙을 유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공이 흘러간다. 너클볼의 제구가 안되면 그냥 빠지는 볼이다”라고 설명했다.

▲ 마구였던 슬라이더와 포크볼...마구가 야구를 진화시킨다
너클볼처럼 공을 잡지는 않고, 그 효과도 너클볼만큼은 아니지만, 팜볼과 같은 유사 계열의 변화구나 너클볼과 비슷하게 공을 쥐는 너클커브와 같은 구종도 있다. 커브의 일종인 너클커브는 검지손가락을 세웠다는 점에서 너클볼과 비슷하지만, 투구 시 너클볼과 상관없이 세워진 검지 때문에 속도는 커브와 비슷하고, 너클볼처럼 흔들리지는 않는다. LG 봉중근이 너클커브를 구사하는 대표적 투수다. 팜볼은 손바닥에 끼우고, 손가락은 쓰지 않은 채 밀어내 듯이 던지는 공으로, 회전이 전혀 없고 타자 앞에서 제멋대로 변화를 일으킨다. 일명 체인지업 계열의 너클볼이라고도 하는데 과거 OB베어스 박철순, KIA 윤석민이 팜볼을 구사하는 대표적인 투수다.
이처럼 너클볼은 한 시대를 풍미하는 마구로 인식되어져 왔다. 다만 마구에 대한 뚜렷한 정의나 기원은 없다. 마구는 시대에 따라서 그 정의가 바뀐다는 말이 가장 정확한 정의라고 할 수 있겠다.
OB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빙그레 이글스 등에서 사령탑을 맡았던 김영덕 전 감독은 국내에 처음으로 슬라이더를 도입한 투수로 알려져 있다. 사진=MK스포츠 DB
현재는 흔한 변화구가 된 슬라이더와 커브, 체인지업, 포크볼도 마찬가지다. 야구가 도입될 무렵에는 속구 외에 변화구는 커브가 전부였던 시절도 있다. 이런 흐름은 1960년대 실업야구 시절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재일교포들의 국내 실업야구 진출로 인해 슬라이더가 상륙했다. 한국에서 슬라이더를 최초로 던진 이는 김영덕 전 빙그레 감독이라는 게 정설이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야구인인 김 전 감독은 1956년 난카이 호크스에 입단해 1963년까지 통산 69경기에 출전해 7승 9패 평균자책점 3.57을 기록했다. 28세인 1964년부터 국내로 들어와 해운공사에 입단했고 이후 크라운맥주, 한일은행에서 최고의 투수로 군림했다. 사이드암 투수인 김 전 감독은 슬라이더를 앞세워 1964년 33경기에서 255이닝 동안 9자책점으로 실업야구 최고 평균자책점 0.32를 기록했다. 실업야구 퍼펙트게임 1회와 노히트노런 2회를 작성했고, 1967년 17승1패로 최고승률(0.994)과 54연속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에도 재일교포들의 한국 진출은 계속됐고, 포크볼 또한 이들과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위력적인 포크볼은 1991년 한일 슈퍼게임을 통해 국내에 널리 알려졌고, 일본에 진출하는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포크볼을 구사하는 투수들이 증가하게 됐다. 체인지업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투수들이 늘고, 메이저리그 중계를 안방에서 볼 수 있게 되면서 이제는 흔한 변화구가 됐다.
커터(컷패스트볼) 등 패스트볼 계열의 다양화도 메이저리그에 대한 관심과 비례했다. 싱커는 재일교포 야구인인 신용균 전 쌍방울 감독이 처음 구사했다고 알려져 있고, SF볼(스플릿핑거패스트볼)이나 투심 패스트볼도 각각 반포크볼, 슈트 등으로 일본을 통해 건너왔다는 설이 다수지만, 메이저리그를 통해 보편화됐고, 엄밀히는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
어쨌든 다양한 구종의 등장으로 그에 따른 타격 기술도 발전을 거듭해왔다. 물론 타격 기술의 발전은 또 다른 구종의 개발로 이어져, 순환 구조를 보인다. 한 야구인은 게임에서 나오는 마구는 없지만, 새로운 구종의 등장으로 야구가 진화해 온 게 사실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마구 효과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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