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대한민국은 녹취공화국] 사생활 중요시 미국·유럽선 통화도 녹취금지
입력 2017-04-06 14:27 

'몰래 녹음'이 범죄가 되지 않는 한국과 달리 사생활 보호에 민감한 유럽 및 미국은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엄격한 통화 녹음 관련 규정을 두고 있다.
영국은 통화녹음 자체를 제재하지는 않는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상대방 동의 없이 녹음 가능하다. 그러나 녹음된 제3자와 공유해선 안 된다.
유럽에서도 사생활 이슈에 가장 민감한 것으로 알려져있는 프랑스에서는 상대방 동의 없는 통화를 녹음하는 것은 물론, 녹음한 파일을 소지하고만 있어도 법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독일, 아일랜드, 호주 등에서는 상대방 동의 없이 녹음을 하거나, 녹음을 하는 이유를 상대방에게 사전에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을 경우 형사 처벌을 받게 된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다.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메사추세츠, 미시간 등 13개 주에서는 상대방 동의 없는 통화 녹음이 가능하다. 수도 워싱턴DC와 경제중심지인 뉴욕이 있는 뉴욕주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상대방 허락 없이 녹음 가능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의 스마트폰과 달리 애플이 아이폰에 녹음기능을 기본 앱으로 제공하지 않는 이유 역시 주마다(국가마다) 관련법이 상이한 환경에서 법적인 문제에 혹시라도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다.

같은 북미권이 캐나다는 상대방 동의 뿐 아니라 녹음을 하는 이유를 사전에 상대방에게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는 각 국가에 수출할 때 통화중 녹음 기능 탑재 여부를 달리한다. 각 국가마다 상이한 관련법 때문이다. 주로 상대방 동의 없이 통화 녹취가 범죄행위가 아닌 국가들에만 통화중 녹음기능을 기본 애플리케이션으로 탑재해 수출한다. 가령 삼성전자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 6개 국가에서만 통화중 녹음기능을 기존 애플리케이션으로 장착해 판매하고 있다. 모두 상대방 동의 없는 '몰래 녹음'이 가능한 국가들이다. 반면 애플 아이폰은 국내·수출용 관계없이 모든 제품에 관련 기능이 없다.
상대방 동의 없이 통화를 녹음할 수 있는 국가들에서도 이를 사용하는 데에 있어서는 대부분 법적 제한이 있다. 영국, 핀란드, 덴마크 등 상대 동의없는 녹음이 합법적인 국가에서도 이를 제 3자에게 제공하거나 특정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법적인 제한을 받는다.
한국은 상대방 동의 없이도 통화나 대화를 녹음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한국에서도 대화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타인들의 대화를 녹음하면 안된다. 반드시 그 대화에 참여한 사람이 녹음해야 한다. 제3자가 몰래 녹음한 녹취 내용은 아예 재판 증거로 사용할 수 없게 돼있다.
나아가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대화 당사자가 몰래 녹음한 내용을 3자에게 유출하는 행위도 법적 제한을 받는다.
정연석 법무법인 정률 변호사는 "대화에 참여한 녹음의 경우 범죄는 아니지만, 타인에게 명예훼손 등의 피해를 입힐 경우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위자료가 200~300만원으로 적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현행법이 '몰래 녹음'에 관대한 게 맞다는 얘기다.
법률전문가들은 한국사회가 녹취에 관대한 이유가 높은 사기범죄율과도 연관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2013년 세계보건기구(WHO)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사기범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하루 평균 600건의 사기사건이 발생하는 나라로, 멕시코, 남아공, 인도, 아르헨티나를 압도한다.
녹취로 인한 사생활 침해 사건이 잦아지고 사회적으로 '불신 사회' 풍조를 만드는 만큼 제도적 개선을 본격적으로 논의해 볼 시점이 왔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S대 로스쿨의 한 법학교수는 "적어도 휴대폰에 녹취기능이 기본적으로 탑재되는 것만 없애놔도 일반인들 사이에 녹취가 범죄가 될 수도 있다는 인식이 생길 것"이라며 "지금은 사회에 녹취에 대한 법감정의 문턱이 너무 낮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강제로 셔터 소리가 나는 것처럼 상대방이 녹음 여부를 알 수 있는 기술을 내장해 역기능을 막는 식의 법적제도 보완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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