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재일교포 감독 이상일, 영화 `분노`로 열도를 흔들다
입력 2017-04-04 16:49 

영화가 장방형의 스크린 안에 구현해놓은 모든 것들은 제 나름의 쓰임과 의미가 깃들어 있기 마련이다. 어떠한 앵글로 어떠한 거리에서 무엇을 포착하느냐는 전적으로 감독의 의도와 직관에 따르는 것으로, 그렇게 만들어진 개별적 숏들이 배열되면서 영화라는 마법이 창조된다. 나가타현 태생의 재일한국인 3세이자 일본에서 활동 중인 이상일 감독의 아홉번째 영화 '분노'(지난달 30일 개봉)는 영상예술로서 영화의 미학을 잘 살려낸 예다. 이상일 감독은 일본영화대학 졸업작품 '청'(1999)으로 시작해 '보더 라인'(2002) '69식스티 나인'(2005) '훌라걸스'(2006) '용서받지 못한자'(2013) 등을 연출했으며, 지난해 '분노'로 도쿄영화제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한 13개 상을 휩쓸었다. 국내에서도 같은해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이 영화는 의문의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인간의 신뢰와 믿음의 문제를 매우 중층적이고 다각적으로 파고든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이상일 감독을 서울 강남에서 만나 '분노'의 연출 미학에 대해 들어봤다.

―거의 모든 숏들이 강렬하다. 높은 하늘에서 빼곡한 주택가를 내려다보는 첫 숏부터 그렇다. 한 주택 내부의 살인현장을 비춘 다음 영화는 1년 뒤 치바, 오키나와, 도쿄라는 세 공간을 중심으로 연관 없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뒤섞는다. 맨 처음 부감숏(위에서 내려다보는 숏)부터 얘기해달라.
▷일단 세 공간 구성은 요시다 슈이치의 원작 소설에 충실했다. 하늘에서 주택가를 훑은 것은 앞으로 보게 될 살인사건이 우리 일상 어느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인지시키려던 거다. 끔찍한 사건이 생각보다 삶의 지근거리에서 일어날 수 있음을, 그런 범죄의 당사자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 있을 수 있음을 말이다.
―여고생 이즈미(히로세 스즈)가 미군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상당히 충격적이다. 이 신을 매우 비중있게 다뤘는데.

▷오키나와에서 미군들과 일반인이 사는데 강간 사건이 일어난다. 이즈미가 당한 피해와 아픔은 현재 오키나와 사회를 축약해주는 축도다. 넓게는 국가라는 거대한 힘이 끼치는 억압과 폭력으로도 읽힐 수 있겠다.
―영화는 서로 다른 인물들을 자주 교차시킨다. 이를테면 영화 중후반부 침실에 멍하니 앉아 있는 유마(츠마부키 사토시), 거칠게 캐리어들을 집어던지는 타나카(모리야미 미라이)의 숏이 병치돼 반복된다. 어떤 효과를 노렸나.
▷연관없는 숏 같지만, 서로의 감정이 서로에게 스며 들게 했다. 오키나와에서 타나카의 행위는 도쿄에 사는 유마의 현 시점에서의 심상풍경과도 같다. 별개의 인물 같지만 각자의 감정들이 연결된다.
―아이코가 사랑하는 타시로를 의심하자 타시로는 사라진다. 유마가 사랑하는 나오토를 의심하자 나오토는 사라진다. 그러나 타시로는 돌아오고, 나오토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러한 미세한 차이가 영화의 결을 풍성하게 한다.
▷인간이 남을 신뢰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그럼에도 삶이란 타인을 향한 신뢰를 저버릴 수 없는 것임을 강하게 보여주려던 거다. 신뢰는 무언가를 잃게 하기도, 얻게 하기도, 상처를 주기도 하는데, 다양한 결론을 보여주면 의미가 한층 풍성해질 것 같았다.
―와나타베 켄, 미야자키 아오이, 츠마부키 사토시 등 초호화 캐스팅이다. 어느 하나 모자람 없는 꽉 찬 연기를 한다. 특별히 요구한 게 있나.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상태를 원했다. 지금까지 해온 연기에 대한 모든 것들을 벗어던지게 했다.
―어떤 소재에 흥미를 갖나.
▷쉽게 간단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이번 영화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기분과 감정들에 손길을 뻗쳤다.
―마지막 질문. 당신에게 영화란 뭔가.
▷(신중히 고민하더니)나와 당신을 이어주는 것. 연결시키는 것.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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