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썸타는 토요일] 국회서 `가을 독사`라 불리는 남자
입력 2017-04-01 09:02 
김현목 보좌관 [사진 : 매경DB]


구치소에서 닿은 인연이 인생을 바꿨다. 1986년 '건대항쟁'에 참여했다가 서대문형무소에 들어갔고 이곳에서 5개월을 동고동락했던 감방 동기가 김봉욱 전 평화민주당 의원을 소개해 그의 보좌관이 됐다. 1989년 9월 15일. 당시 나이 25세. 최연소였다.
"그 땐 사회가 암울했고 나이도 어렸고 제도권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으니까 (보좌관 일이 꺼려졌다)" 지난 24일 국회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만난 김현목 보좌관(52)은 이렇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는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이 시대에 내가 과연 그런 걸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한 번 해보자'란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올해 봄은 그가 여의도에서 맞는 27번째 봄이다. 27년 전 최연소 보좌관은 이제 최장수 보좌관이 됐다. 그의 인생 절반 이상을 국회에서 보냈지만 여전히 현직에 몸담고 있다.
올해 초 신년 하례식에서는 보좌관 최고영예인 근정포장을 받았다. 초선의원 시절부터 산업자원부 장관까지 12년 동안 수행했던 정세균 국회의장이 시상자로 섰다. 그는 "말없이 눈빛 만으로 의견을 교환할 때가 있다. (정 의장에게) 상을 건네 받으면서 그런 기분이 들었다"고 전했다.

국회에서 그는 '가을 독사'로 불린다. 독사는 가을에 독이 가장 강한 것처럼 국정감사가 열리는 가을이면 그의 독기가 한껏 오르기 때문이다. 보좌관 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김 전 의원을 도와 제5공화국 청문회에서 일해재단의 비리를 파헤쳤던 그다. 밤이 다 가는 줄도 모르고 핏대를 세우며 보고서를 만들던 20대 청년은 지천명이 돼서도 밤새워 일한다.
특히 1998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공적자금관리특별법을 만들어 통과시켰던 때를 그는 최고의 기억으로 꼽았다. 도박에 빠져 약 350억원을 탕진한 사람을 만나 이를 언론에 폭로하고 사행산업의 문제점을 지적해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와 도박근절 사회운동으로 이어간 것도 잊기 어려운 기억이다.
그는 "밖에서 볼 때 국회는 기대에 못 미치는 질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국민의 비판과 견제와 감시 속에서 나름대로 매일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며 "기사를 보는 분들이 못마땅해 할 수도 있고(웃음) 체력적으로도 굉장히 힘들지만 그래도 보람있기에 일을 계속해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을 독사로 불리는 그는 지난 2012년 제19대 국회 때부터 사단법인 한국비서협회와 함께 보좌진 교육과정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의정활동 홍보와 예·결산 심사, 국정감사 준비, SNS(사회관계망서비스) 활용, 선거 등 실무가 주를 이룬다. 이곳 출신 신입 보좌관들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보좌관 사관학교'로 불린다. 그는 10년 넘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활동하며 '경제통'으로 불렸던 만큼 이곳에서 예·결산 부분을 맡았다. "혈세 낭비는 쓴 다음 막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예산 낭비가 어디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 행정부에 자료 요청은 어떻게 하는지 세부적으로 전달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보좌관 교육과정을 마치고 현재 국회에서 일하는 비서와 인턴, 보좌관은 50명이 넘는다. 그는 "국회가 사회 곳곳으로 파고 들고 입법부 역할이 커지면서 사회 변화에 가치를 둔 젊은이들의 도전이 늘었다"면서 "무엇보다 가치있는 일이다. 부족한 부분은 채워가면 되는 만큼 주변에 봉사하고 선의를 전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보좌관 경쟁률이 50대 1을 넘기는 상황에서 김 보좌관은 국회만큼 실력으로 평가받는 곳은 없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주변 추천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국회 홈페이지 국회의원실 채용공고를 통해 모든 채용이 이뤄진다. 그 역시 최장수 보좌관임에도 남들과 똑같이 이력서와 자소서를 다듬어 제출한다.
그는 "국회의원이 선출직인 만큼 타성에 젖지 않기 위해서라도 보좌관도 현재의 채용 방식을 이어가는 게 맞다고 본다"면서 "다만 보좌관은 의정활동 실무의 핵심인 만큼 비례대표 발탁이나 전문 교육 등 시스템이 체계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보좌관은 이어 "입법부는 누구에게도 먼 곳이 아니다. 누구나 이곳을 찾을 수 있고, 또 이곳에 오면 주변의 목소리를 늘 귀담아 들어야 한다"며 "다양한 지식과 경험, 신의를 찾춘 인물이 보좌관이 되면 정치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생산성이 높아지는 일이다. 후임 양성 등 보다 투명하고 건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계속 일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디지털뉴스국 배윤경 기자 / 배동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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