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금요일 점심 `서울행` 짐싸는 금융공기업 직원
입력 2017-03-29 17:53  | 수정 2017-03-29 22:45
영남권에 위치한 금융공기업에 다니는 김영남 팀장(가명)은 금요일 오후 이른 시간 가방을 싸 KTX역으로 향한다. 김 팀장은 "집과 가족이 모두 서울에 있어 유연근무제로 금요일에 빨리 출근해 업무시간을 채우고 일찍 나온다"며 "서울에 사는 직원들로 이뤄진 팀은 금요일 오후면 부서 문을 닫는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한 차원에서 마련된 탄력근무제를 금요일 이른 시간에 서울 상경용으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공기업 지방 이전 취지와 역행하는 행태인 데다 금요일마다 부실한 업무가 이어져 고객 서비스 저하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로 김 팀장처럼 지방으로 이전한 금융공기업에서 탄력근무제를 신청하는 직원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지방에 본사를 둔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자산관리공사·주택금융공사·예탁결제원에서 지난 한 해 동안 근무시간선택형 근무제 신청 건수가 5168건에 달했다.
탄력근무제는 직원들이 수개월 단위로 몇 번이라도 원하는 대로 신청할 수 있는데 금융공기업 직원들의 탄력근무제 이용 건수는 지방으로 이전한 뒤 급증하기 시작했다. 신용보증기금은 2014년까지 근무시간선택형 탄력근무제 이용 신청 건수가 0건이었다. 하지만 2014년 12월 대구로 이전한 이후 지난 한 해 동안 3607건으로 가파르게 늘어났다.

신보와 같은 시기에 부산으로 이사한 자산관리공사도 건수가 2014년 32건에서 2016년 489건으로 급증했다. 주택금융공사 역시 2014년 159건에서 2016년 899건으로 다섯 배 이상 큰 폭 늘었다. 주택금융공사는 아예 주말에 상경하는 임직원을 위해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KTX 전세까지 냈다. 금요일 오후 6시 부산을 출발하는 서울행 KTX 40석과 일요일 오후 8시·월요일 오전 6시 35분 서울을 출발하는 부산행 KTX 40석이다. 반면 서울에 본사를 둔 나머지 4곳 금융공기업(KDB산업은행·수출입은행·IBK기업은행·예금보험공사)의 탄력근로제 신청 건수는 11건에 불과했다.
산은·수은·기은·예보의 근무시간선택형 신청 건수는 2015년까지 모두 합쳐 0건이다. 지난해 기은에서 10건, 예보에서 1건만 신청했을 뿐이다.
탄력근무제는 근무자가 1주 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유지하면서 스스로 출퇴근시간이나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제도로 시차출퇴근형, 근무시간선택형, 집약근무형 등이 있다.
시차출퇴근형은 하루 근무시간을 8시간으로 맞추면서 출퇴근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하는 근무 형태다.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하던 직원이 1시간 빠른 오전 8시에 출근하면 오후 5시에 퇴근하고, 1시간 늦은 오전 10시에 출근하면 오후 7시에 퇴근하는 식이다. 지방 이전 금융공기업에서 급증한 근무시간선택형은 이보다 더 자유로운 방식이다.
주 5일 근무를 하되 주 40시간 범위 내에서 하루 근무시간을 4시간에서 12시간까지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화·수·목요일에 10시간씩 일하면 월요일과 금요일에 5시간씩만 근무해도 된다. 이론상 주중에 몇 시간 더 앉아 있으면 금요일에 점심을 먹고 퇴근해 주말을 앞당겨 시작할 수 있는 셈이다.
금융공기업 관계자는 "탄력근무제에 대한 직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며 "정부가 일과 가정 양립, 인력운영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명목으로 유연근무제 확산을 장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방이전 금융공기업 직원들의 탄력근무제 이용이 과도해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정부의 공기업 지방 이전 취지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금요일 오후만 되면 지방이전 금융공기업 실무부서에 전화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로 고객 서비스 저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승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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