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대전으로 옮겨 붙은 대치동의 사교육 바람
입력 2017-03-28 16:42 

대전시 유성구 월드컵경기장 인근에 거주하는 김모씨(48). 고등학생 자녀를 둔 그는 재작년까지 방학기간 동안 서울 대치동 인근에 원룸을 구해 아이를 대치동 학원으로 보냈지만 올해부터는 대전 둔산동에 위치한 유명 대치동 학원 분원에 보낸다. 대치동에 있던 학원이 지난해 둔산동에 분원을 개원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사교육 무용론 얘기가 있지만 그래도 대치동 사교육이 대한민국에서 제일"이라며 "굳이 서울까지 가지 않아도 돼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20년차 베테랑 영어강사인 이모씨(46).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강의해온 그는 2년전부터 매주 하루씩 대전으로 향한다. '대전의 대치동'이라 불리는 둔산동에 위치한 한 학원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서다. 이씨는 "서울 대치동에서 대전 둔산동까지 자동차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다"며 "서울보다 학생들이 더 많이 모이고 강사료도 더 많이 받을 수 있어 대전에 가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 대치동 사교육이 대전으로 확장되고 있다. 대치동 학원가가 경기도 분당을 거쳐, 부산 해운대, 울산, 창원 등에 이어 대전 둔산동까지 분원을 내면서 확장되는 모양새다. 한때 '대전족(대치동 전세족)'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열성파 맹모(孟母)들의 집결지가 대치동이었는데, 이제는 진짜 '대전 학부모'들이 맹모 대열에 합류한 셈이다.
28일 학원가에 따르면 이강학원 명인학원 비전21학원 등 서울 강남 유명 학원들이 지난해부터 잇따라 대전 둔산동에 분원을 열고있다. 대치동에서도 메이저급으로 꼽히는 이들 학원은 대입을 앞둔 고등부 강의를 주력으로 한다. 이강학원 관계자는 "대전에는 정부대전청사가 있고, 대덕연구단지 등 연구단지가 밀집해있어 학부모들의 학력수준과 교육열이 유난히 높다"며 "사교육에 대한 수요가 많다고 판단해 대전에 분원을 냈다"고 설명했다.

대치동에서 퍼져나온 분원들은 지방 학부모와 학생들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대치동 사교육의 모든 것을 그대로 옮겨놓고 있다.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수능과 내신을 위한 개별 단과강의는 기본이고, 입시 컨설팅도 주무기로 삼는다.
지난해말 대전에 분원을 개원한 비전21학원의 경우 개원을 기념하며 본원 입시센터 소속 센터장과 소장 등 3명이 토요일 하루에 학년별 맞춤형 입시 설명회를 세 차례나 열었다. 지난해말 대전 명인학원 개원 설명회에 참석한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대전 학부모들의 입시에 대한 이해수준이 서울 못지 않게 높아 놀랐다"며 "마치 대치동을 방불케 했다"고 당시 상황을 소개했다.
대전이 뜨는 이유는 학원과 대전 학부모들 이해가 모두 맞아떨어진 결과로 보인다. 학원들은 대치동 사교육시장이 정체되면서 확장을 노릴수 밖에 없었는데 대치동 사교육에 대한 욕구가 컸던 대전 학부모들이 이를 대신 채워줬다는 것이다. 한 입시업체 평가이사는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추세인데다 올해 수능부터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쉬워져 영어 사교육시장이 축소됐다"며 "결국 고등학생 대상 사교육은 국어와 수학으로 좁혀졌는데 대전에서 이 분야에 대한 수요가 유난히 많다"고 설명했다.
대전 지역 학원교습시간이 서울 경기 세종처럼 밤 10시까지로 제한되지 않은 점도 학원들로서는 큰 이점이다. 학원교습시간은 시·도 조례로 정하도록 돼 있다. 현재 서울 경기 세종 등 5개 지역은 밤 10시, 부산 인천 등 3개 지역은 11시, 대전 등 9곳은 자정까지로 제한돼 있다.
대전에서 10년 넘게 보습학원을 운영해온 한 학원 관계자는 "정부 세종청사 신설에다 교육수요까지 겹쳐며 최근 5년새 둔산동 일대 집값은 두배 가까이 껑충 뛰었다"며 "인근지역인 세종시에 영재학교가 들어서면서 중학생 사교육시장 일부는 세종시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강봉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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