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해외로 빠져나간 범죄금액, 피해자에 첫 반환
입력 2017-03-24 14:39 

A씨는 24일 은행통장에 입금된 200만원을 보고 지난 10년 간 마음고생을 한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사건은 2007년 지인에게서 곽모씨(48)를 소개받고 시작됐다. 그는 "곧 외환 투자회사를 상장할 건데 일이 잘 되면 수익을 나눠주겠다"고 했다. A씨는 고민 끝에 퇴직금 3000만원을 곽씨에게 투자했다. 하지만 모두 거짓말이었다. A씨는 투자금을 돌려받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검찰 수사 결과 자신 같은 피해자가 수 천명에 달한다는 말에 망연자실했다. 그런데 이날 10년 만에 피해액 일부를 돌려받게 된 것이다. 그는 "오래 전 일이라 포기하고 있었는데 국가가 사기당한 돈을 이렇게라도 찾아줘서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검찰청 국제협력단(단장 권순철 부장검사)은 미국에 유출된 금융다단계사기 범죄수익 9억8000여만원을 국내 피해자 691명에게 돌려줬다고 밝혔다. 검찰이 해외로 유출된 재산범죄수익을 환수해 피해자들에게 직접 돌려준 것은 처음이다. 이제까진 해외에서 범죄수익을 돌려 받아도 모두 추징금으로 국고에 귀속했다.
◆ 10년만에 돌려받아
다단계 사기범 곽씨는 2007∼2008년 "투자회사를 상장한 뒤 수익을 나눠주겠다"고 속여 총 1만여명으로부터 2580억원을 받아 챙겼다. 그는 2010년 10월 징역 9년이 확정됐다. 곽씨는 사기금액 중 19억6000만원을 세탁해 미국으로 빼돌렸다. 이 돈으로 캘리포니아에 부인 명의의 빌라를 산 사실이 드러나면서 범죄수익은닉 혐의로 징역 1년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2010년 10월 검찰은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 한국지부에 "부동산을 몰수하고 범죄수익을 환수해달라"고 요청했다. 2011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 중부연방검찰청은 현지 법원에 "해당 부동산을 몰수해달라"고 청구했다. 미국의 '민사몰수제도'는 범죄수익으로 형성한 재산은 형사기소 없이 민사소송절차에 따라 몰수할 수 있도록 한다. 2012년 2월 법원 허가가 나자 미국 사법당국은 이듬해 3월 해당 빌라를 공매해 약 11억원(96만5000달러)을 확보했다.

이후 피해자들이 이 돈을 돌려 받기까지 4년이 더 걸렸다. 우리나라 법에 해외로 유출된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할 수 있는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원칙적으로 국가가 범죄피해재산을 확보해 피해자에게 반환할 법적 근거가 없다. 외국법에 따라 현지에서 범죄피해재산을 몰수해도 이를 국내로 환수해 피해자에게 돌려줄 수 있는 규정도 없다.
검찰은 고심 끝에 2015년 11월 미국 연방검찰에 "미국법상의 '몰수 면제 및 피해자환부' 제도에 따라 반환을 해달라"고 제안했다. 이는 범죄행위로 취득한 자산은 법무부 장관이 해당 피해자에게 돌려주는 제도다. 지난해 9월 미국 법무부는 절차 비용 등을 뺀 나머지 금액을 한국에 넘기기로 결정했다.
◆ 제도개선 시급
검찰은 곧바로 '미국유출 범죄피해금 환부지원팀(TF)'을 만들었다. 대검 국제협력단에 수사관 7명을 파견해 총 15명의 검사 및 수사관이 뭉쳤다. 이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피해자 규모를 확인했다. 피해자 1800여명의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2000여건의 전화와 방문상담을 실시했다. 그 결과 총 691명의 피해자를 확정했다. 이들의 피해금액은 139억원에 달한다.
검찰은 이날 오전 미국 법무부로부터 9억8000만원을 환수한 직후 피해자들에게 배분했다. 1인당 평균 140만원을 받았다. 금액은 피해규모에 비례해 정해졌다. 피해액이 1000만원인 경우 돌려받은 금액은 약 70만원 수준이다.
반환절차를 맡은 권순철 대검 국제협력단장(48·사법연수원25기)은 "한국과 미국이 6년 간 협상을 통해 국내 피해자들을 보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해외 범죄수익을 돌려 받기 위한 법적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것은 개선해야 할 과제다. 그는 "국내법상 법적 근거가 미비해 환수하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관련 법 제도를 개편할 때 이 같은 문제점을 반영하고, 장기적으로는 피해자들이 돌려 받을 수 있는 범죄피해재산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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