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美틸러슨 외교 데뷔무대서 호된 신고식
입력 2017-03-20 16:19  | 수정 2017-03-21 16:38

세계적인 석유기업 엑손모빌 CEO 출신인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사실상의 외교 데뷔 무대였던 한·중·일 3개국 방문에서 신고식을 단단히 치렀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중국 방문에서는 중국의 노련한 외교에 끌려다녔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한국에서는 외교적 프로토콜이 몸에 배지 않은 탓에 섣부른 말실수로 '만찬 거절' 논란과 '동맹 차별' 비판에 휩싸였다.
국내에선 국무부 예산이 예년보다 28% 삭감된 것에 대해서 수용해야 한다고 했다가 내부 직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WP)는 19일(현지시간) 틸러슨 장관의 첫 중국 방문에 대해 "중국에 외교적 승리를 안겼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를 뜻하는 세컨더리보이콧 발동 가능성이나 한국에 대한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못한 채 중국이 주장하는 '상호존중' '합작공영' 등에 합의하면서 외교적 주도권을 중국에 내줬다는 것이다.

특히 공동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상호존중'이라는 표현은 신형 대국관계를 주창해 온 중국이 캐치프레이즈처럼 강조해 온 것으로 중국 측에서는 미·중 양국이 상대방의 '핵심 이익'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다시 말해 미국이 대만, 티베트, 홍콩 문제는 물론 더 나아가 남중국해 문제까지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교적 수사에 익숙하지 않은 CEO 출신 틸러슨은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헤리티지 재단의 월터 로만 아시아연구소장은 "틸러슨 장관의 언급은 공개 석상에서 시진핑 주석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것이기를 바란다"면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협력과 우정에 의해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비꼬았다.
중국에서는 틸러슨의 방중결과에 대해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는 '중국의 승리, 미국의 패배'를 반증하는 것이다.
중국 주요 관영매체들은 오바마 정부에서는 결코 사용하지 않았던 '불충돌, 불대립, 상호존중' 등의 단어를 틸러슨이 수용한 것에 대해 "미국과 중국이 드디어 신형대국관계로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앞으로 중국은 미국과 여러 가지 이슈를 놓고 자주 거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반도와 남중국해 대만 문제 등을 놓고 '주고받기'식 거래가 가능하다는 해석이다.
결정적으로 중국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선이(沈逸) 푸단대학 국제정치학과 부교수는 틸러슨 장관의 아시아 순방에 대해 "전임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한 것 외에 실질적으로 보여준 내용이 없었다"며 "포장만 요란하고 알맹이가 빠졌다"고 지적했다.
국무부 예산이 28% 삭감된 것에 대해 틸러슨 장관이 이를 수용할 것을 촉구한 것은 내부적으로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틸러슨 장관은 순방기간 중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미국의 대외 관여와 원조를 더 효율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무부 직원들은 장관으로서 조직과 예산을 최대한 확보하고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리더십 상실을 우려했다.
틸러슨 장관은 또 취임 50일이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부장관과 차관 등 주요 보직 인선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외교적 프로토콜을 무시한 '말실수'로 논란을 초래했다. 외교 일정상 조율이 안돼 불발된 만찬 문제를 틸러슨 장관이 개인적인 서운함을 담아 인터뷰에서 노출해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한국만 유독 외교장관 회담 후 만찬 일정이 빠진 것을 놓고 외교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트럼프정부의 대북정책 리뷰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시점에서 핵심 의사결정권자인 틸러슨 장관과 좀 더 많이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북핵과 사드라는 한반도 안보 현안의 중요성을 '주입(input)'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송대성 전 세종연구원장은 "미 국무장관이 1박 2일간 한국에 머물렀는데 만찬 일정이 없었던 것은 변명할 수 없는 우리 측의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베이징 = 박만원 특파원 / 서울 = 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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