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현장] `설마했는데…` 유커 대신 보따리상이 메운 면세점
입력 2017-03-15 17:17  | 수정 2017-03-15 17:42
롯데면세점 소공점 전경

"쇼핑 시간을 줄였어요. 평소 1시간 정도 있었는데 40분 뒤엔 나가려고요."
롯데면세점 소공점을 찾은 중국인 단체관광 가이드 유모씨의 말이다. "얼마 전부터 단체여행객 예약 수가 크게 줄어 중국 담당 가이드들의 걱정이 많다"라는 얘기 외에는 말을 아끼던 그는 단체관광객을 데리고 나가려다 다시 기자를 찾아 "관광객 수가 줄어든 것도 문제지만 심리적 거부감이 더 문제"라면서 "쇼핑을 아예 안 하겠다고 우기는 손님이 많다. 이들이 중국으로 돌아가 불만을 얘기하면 여행사로서는 경고를 받을 수도 있어 맞춰줄 수 밖에 없다. 관광객이 쇼핑을 해야 가이드도 인센티브(성과급)를 받는데…회사와 상의해 아예 관광지로 돌리는 가이드도 많고, 피해가 막심하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한국 여행상품 판매 금지령이 시행된 15일 롯데면세점 소공점은 화장품과 시계 등 일부 매장을 제외하고는 점포 대부분이 한산했다. 화장품 매장 역시 얼마 전만해도 외국인 단체관광객으로 줄이 길었지만 지금은 큰 기다림없이 물건을 계산하는 게 가능했다. 방문객이 많아 종종 줄을 서던 루이뷔통 매장도 눈에 띄게 사람이 줄었다.
인근 신세계면세점 명동점 역시 상황이 비슷했다. 지하철 연결통로와 신세계백화점 1층 출입문 근처도 평소와 달리 중국인 관광객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8층 면세점까지 승강기를 혼자 타고 올라갔을 정도다. 방문객 수가 많은 점심시간 때였지만 중국인이 선호하는 MCM 매장에는 단 한 명의 손님도 없었다. 화장품 전용 층에는 방문객이 그나마 있었지만, 명품이 몰려있는 층에는 방문객이 10여명도 안 돼 직원들이 더 많이 보일 정도였다. 오후가 가까워지는 시간임에도 회원가입과 사은품 지급, 구매취소 등을 담당하는 고객 서비스센터의 당일 청구번호가 30번을 채 넘기지 않았다.
다만 면세점 곳곳에서 보따리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아예 매장 측이 내준 듯한 카트에 짐을 싣기도 했다. 열댓명의 보따리상이 함께 움직이며 매장에서 각자 물건을 사서 승강기 앞에 놓으면 짐을 지키는 사람이 승강기가 올 때마다 안으로 짐을 옮겼다. 짐은 지하주차장에서 또 다른 관계자에 의해 차에 실렸다.
한산한 매장 환경에 반색하는 이들도 있었다. 파주에 거주하는 김신애(56)씨는 "오랜만에 딸과 여행 가기 전 면세점에 왔는데 여유롭게 쇼핑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일본인 단체 관광객을 담당하는 가이드 이모씨도 "다수의 요청으로 점심시간을 약간 줄이고 쇼핑시간을 늘렸다. 여유롭게 쇼핑하기 좋아하는 일본인들 마음에 든 거 같다"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에 반발해 최근 자국 여행사에 한국 단체여행 상품 판매 금지령을 내렸다. 전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국내 항공사가 중국 노선을 축소하거나 소형기로 대체했고, 국내 호텔 예약도 전년 동기간 대비 약 20% 줄어드는 등 당장 항공과 호텔, 면세 같은 국내 관광 산업의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지만 정부는 이날 오후에서야 업계 관계자들을 불러 애로사항을 듣는 자리를 마련해 늦장 대응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유커는 807만여명으로 한 해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 관광객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면세 업계는 싼커(중국인 개별 관광객)과 동남아 여행객 수요를 노린다는 입장이지만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인 수요를 맞추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 노동절이 있는 5월 특수를 앞두고 고민이 더욱 커져가는 상황이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평소보다 30% 가량 줄어든 거 같지만 아직 속단하긴 이르다. 지금으로서는 개별 관광객 유치에 힘을 모으면서 국적다변화를 목표로 전략을 짜는 중"이라며 "개별 관광객은 단체 관광객보다 유행에 민감한 경향이 있어 한국 패션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배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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