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유통규제 어디까지] "소비자 고려 없고 규제효과 불분명 큰 문제"
입력 2017-03-15 16:03 

지난 대선때 대형마트 월 2회 공휴일 의무휴업이 도입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유통규제들이 더 강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시 선거철이 돌아오면서 중소상인들의 표를 의식해 대형 유통기업들을 옥죄는 법안들이 대거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과거보다 더 강한 무기들을 장착하고 있다. 백화점, 대형마트, 복합쇼핑몰 등은 매주 일요일에 무조건 문을 닫아야 하고, 밤 12시 이후엔 편의점도 문을 닫게 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또한 유통점포에서 10km 떨어진 지자체나 지역 상인들의 동의도 필수적으로 받아야 한다.
이같은 법안에 대해 유통업계에서는 불만을 토로한다. 사실상 추가 출점이 불가능해졌으며 유통업체들의 매출 규모가 급감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인데도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대형 유통업체를 규제해야 전통시장·소상공업체가 살아날 것이란 논리를 편다. 유통업은 내수 경제의 핵심 축이자 국민들의 소비생활과 직접 맞닿아 있는 창구다. 잘못된 유통규제는 소비자들을 불편하게 하고 더 나아가 소비절벽까지 초래할 수 있다. 이에 매일경제는 유통 전문가들과 긴급 지상좌담회를 열어 현재 추진되고 있는 유통규제의 편익과 장단점을 들어봤다. 좌담회에는 안승호 숭실대 교수,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 임영균 광운대 교수, 김천수 인하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 대형마트·백화점 의무휴업일 확대, 영업시간 제한 등의 유통규제가 국내 유통산업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은?
▷김천수 교수= 다가오는 글로벌 유통산업의 미래는 극한 경쟁이다. 특히 대규모 자본 사이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어야 한다. 대규모 유통 자본은 자기네들끼리 경쟁하게 놔두고, 우리가 보존해야 할 한국의 전통적인 유통거래의 모습(전통시장)은 국가 지원을 통해 지키면 된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우리 유통산업은 글로벌 경쟁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다.

▷서용구 교수 = 나쁜 영향을 미친다. 한국이 글로벌 관광지로 변모한 상황에서 국내 유통산업은 더 이상 내국인에게만 국한된 업태가 아니다. 백화점, 복합쇼핑몰 등은 관광객이 돈을 쓰는 가장 중요한 채널인데 이를 강제적으로 막으면 한국 관광의 경쟁력이 떨어진다.
- 유통규제는 우리 내수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임영균 교수=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소비를 활성화 하기는커녕 소비를 위축시키는 정책을 도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국민이 소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한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소비진작을 위해선 대형유통업체가 경쟁하게 만들어서 상품 가격이 인하되도록 해야 한다. 가격이 내려야 소비자가 구매한다. 대형마트 영업일수를 줄인다고 해서 사람들이 전통시장, 동네슈퍼마켓 가지 않는다고 본다. 경쟁 촉진이 소비활성화의 답이다.
▷안승호 교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유통규제가 도입되면 우리 내수경제는 한마디로 박살난다. 전통시장에서 파는 상품과 백화점에서 파는 상품이 카테고리가 겹칠지는 몰라도, 상품 자체는 아예 다르다. 예를 들어 백화점에서 파는 브랜드의 케이크를 전통시장에는 구할 수 없다. 돈 있는 소비자는 백화점에서 비싼 물건을 사도록 해야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경제도 살아난다.
- 유통규제를 소비자 선택권 입장에서 평가한다면.
▷김 교수= 유통산업은 판매자와 구매자(소비자) 양쪽 주체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 유통규제는 판매를 하는 한 쪽 참여자의 이해관계 조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비자는 유통산업의 한 축인데, 이를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소비자 편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각종 규제 법안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서 교수=절대다수의 소비자가 대형마트 영업제한 등 과도한 유통규제를 반대하는 걸로 안다. 다수가 반대하는 유통규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 유통규제가 소상공인을 돕고 재래시장을 살리는 데 실효성이 있나.
▷안 교수= 유통규제로 인해 전통시장 매출 올라갔다는 보고서나, 대형마트 문 닫으면 전통시장 대신 가겠다는 소비자 설문조사가 있으면 보여달라고 하고 싶다. 그런 통계나 보고서는 본적이 없다. 검증되지 않은 논리다.
▷임 교수= 대형유통업체의 영업시간 제한, 출점 규제로 인해 전통시장이 살아났다는 통계는 없다. 어차피 온라인 쇼핑으로 대세가 변하고 있는데, 그럼 앞으로는 전통시장 살리기 위해 온라인쇼핑몰에도 영업시간 제한 도입할건가? 말이 안된다.
- 유통산업과 전통시장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은.
▷서 교수=대형유통업체가 전통시장에 매장을 출점해 쇠퇴하는 전통시장과 '윈-윈'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 이를 '피기백(등에 업히다)' 모델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도 대형유통업체 '다이에'가 전통시장에 매장을 열어 상권이 살아난 사례가 있다.
▷안 교수= 전통시장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투자한 수 조원의 돈으로 차라리 핀란드의 기본소득제처럼 소상공인의 기본생활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그냥 돈으로 지불하는 게 낫다. 전통시장 상인들과 소상공업자들은 사회보장정책으로 생계를 보장해 주고, 유통산업은 경쟁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내버려둬야 한다. 사회보장정책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치화해 유통산업 전체를 죽이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기획취재팀 = 손일선 차장 / 김유태 기자 / 박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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