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스웨덴의 만능 이야기꾼 "글쓰기 욕구 있으면 망설이지 마세요"
입력 2017-03-15 15:49 

질문지를 보낸지 두 달이 넘었건만 답변은 요원했다. 잊고 있었고, 하루하루의 일상은 그저 쉴새 없이 흘러갔을 뿐이었다. 이메일로 불현듯 한통의 서신이 도착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그냥 무시할까도 싶었지만 "답변이 늦어져서 미안하다. 가족 여행 중이었다(그는 스톡홀름 근교 솔나에서 부인과 5살, 8살 아이들과 살고 있다)"는 말에 섭섭했던 마음이 일순간 허물어졌다. 잊고 있지 않았다는 고마움부터 앞섰다고 해야 하나.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37)의 이야기다.
최근 몇 년 새 북유럽권 글쟁이들이 강세다. 그것도 스웨덴 작가들. 만능 이야기꾼 요나스 요나손(55)이 2009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으로 일약 글로벌 작가가 됐다면, 3년 뒤인 2012년 배크만이 그 바톤을 이어받은 모습이다. 인구 900만 스웨덴에서 70만 부 이상 판매고를 올린 데뷔작 '오베라는 남자'는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바. 외국 소설로는 이례적으로 국내에서 20만 부 이상 팔려나갔다. 지난해 연말 그런 그의 신작 '브릿마리 여기있다'(다산책방)가 출간됐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에 이은 세 번째 소설이다.
―반가워요, 배크만. 당신의 데뷔작은 고집불통의 59세 남성 오베, 두 번째 작품은 7세 소녀 엘사의 이야기였어요. 이번에는 까칠하면서도 속은 상냥한 63세 여성 브릿마리가 나오죠. 성장소설의 줄기를 따라가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인생의 황혼녘에 접어든 이 여성이 스스로를 재발견해 나가는 과정이 사뭇 감동적이었어요.
▷그렇게 봐주어서 정말 고맙네요. 어떻게 보면 이건 '세대의 이야기'에요. 첫 소설에서 오베라는 남자의 관점에서 그 세대를 바라보려 했다면 이번에는 브릿마리의 관점에서 그렇게 해보려고 했죠. 그게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항상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느라 제 삶을 잃어가고 있던 여성이 늦게나마 생의 진정한 모험을 떠나는 거죠.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브릿마리가 전작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말하라고 했어요'에 등장하는 인물이라는 거예요. 이 까다롭고 피곤한 인물을 이번 작품의 전면에 내세우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 다른듯 하면서도 닮았어요. 그 중 브릿마리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고요. 전적으로 인간적인 여성이에요. 제가 브릿마리를 택했다기보다는 브릿마리가 저를 택한 것 같아요.
―당신의 이야기는 '스타 워즈' '반지의 제왕'과 비슷한 구성을 띈다고 말한 적 있는데...
▷맞아요, 고전적인 모험 이야기. 모든 요소가 비슷해요. 우주에 나가 사악한 존재와 맞서 싸우고 저마다의 사랑을 찾고 스스로에게 중요한 것을 일깨워 나가죠. 브릿마리가 그래요. 이 나이든 여성은 이혼을 감행하고 작은 마을로 이주해 새 직장을 구해요.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쌓아가고요. 그렇게 잃은 듯했던 자존감을 서서히 되찾아가요.
―이제 소설 바깥으로 가볼게요. 당신 소설들의 인기를 실감하나요. 당신이 전 세계 독자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아이고, 이걸 제가 어찌 알겠어요. 하하. 마법 같은 일이라고 밖에.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정직해야하지 않을까요. 누군가 당신에게 그런 비결 같은 게 있다고 말해준다면 아마도 십중팔구 거짓말일 거예요. 저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지 잘 몰라요. 우리는 각기 다른 존재들이니까요. 그저 제가 좋아하는 것을 끊임없이 쓰려는 것 뿐이에요. 그것을 다른 사람들도 좋아해주길 바라면서요. 때때로 20명이 좋아할 수 있고, 2만명이 좋아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까 작가의 임무란 다만 최선의 이야기를 쓰는 것, 그것 뿐이에요.
―당신의 이야기는 쉽게 읽을 수는 있지만 가볍지만도 않아요. 기발한 재치로 즐겁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요. 뇌리에 강한 이미지를 심어준달까요. 소설을 쓸 때의 원칙 같은 게 있을까요.
▷저의 글쓰기에 원칙은 없어요. 그냥 이끌리듯 쓰는 거예요. 마치 난치병 같달까요. 다만, 더 나은 작가, 사상가가 되기 위해 똑똑한 지성인들과 대화하고 그들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를 갈구해요. 그리고 내가 즐기는 방식으로, 내게 재미를 주는 방식으로 계속 글을 쓰는 거죠.
―당신은 블로거와 칼럼니스트로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랄까, 그런 게 있을까요? 그리고 작가의 길을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한 마디도.
▷솔직히 말해도 돼요? 이상한 질문 같은데…. 그냥 글을 쓰면 행복해요. 이게 제 몸에 맞는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칼럼니스트가 될 거야, 블로거가 될 거야, 이런 식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는 거죠. 그냥 자연스럽게 하면 돼요. 그러니까 제 말은, 쓰고 싶으면요, 그냥 쓰세요.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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