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리뷰]홍상수X김민희 월드의 정수 `밤의 해변에서 혼자`
입력 2017-03-14 08:02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유부남 영화감독을 사랑했던 여배우 김민희는 독일에서 선배(서영화)를 만나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다. "그 남자 기다리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답게 살겠다" 등 터져 나오는 말이 독백과 고민 상담의 그 중간 어디쯤이다. 그러면서 이 독일 한적한 도시에 또 오고 싶다며 너무 예쁘고 좋다고 경치를 감상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겨내려고 애써 여유로운 척하는 듯 보인다.
홍상수 감독의 19번째 장편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1부는 이 여배우가 독일에서 고민하고 고뇌하는 시간이 중심이었다면 2부는 강릉으로 돌아온 이 여배우의 고민에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끼어든다. 그러곤 사랑을 논한다.
여배우의 선배 권해효, 정재영, 송선미는 유부남과 불륜을 저지르고 도피하듯 외국으로 떠난 사실을 알고 있다. 이들은 어쭙잖게 충고나 조언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여배우가 복귀할 수 있게 힘을 싣는 역할을 한다.
여배우는 이들과 술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술에 취해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 아느냐" "사랑할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쏘아붙인다. 그런데도 선배들은 이 여배우를 "사랑스럽다"고, "매력적"이라고 추어올린다. 또 이들은 "가만히 놔두지 왜 옆에서 난리냐?" 등 영화 바깥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대사들을 쏟아내는데 홍상수-김민희 두 사람을 대변하는 듯 들린다.

선배들의 도움을 얻어 거처를 마련한 여배우는 홀로 남게 되고 해변에서 우연히 사귀었던 유부남 감독의 스태프들을 만나고 그들의 술자리에까지 동참한다. 유부남 감독과 언쟁이 오간다. 사랑한 뒤 헤어졌는데 후회하는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는 감독. 여배우의 감정도 격해진다. 이 모든 게 일장춘몽 같다.
홍상수 감독은 자전적 이야기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모든 장면이 두 사람에게 일어난 걸 그대로 가져다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등장인물도 굳이 배역 이름을 쓰지 않아도 될 듯 자연스레 홍상수와 김민희를 대변하고 위로한다. 늘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있던 홍 감독 영화의 정수라고 할 만하다.
두 사람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에도 이런 소재와 내용을 스크린에 담아내는 게 용감하다. 홍 감독은 김민희와 상의해 대사들을 그날그날 만들었다고 하는데 두 사람의 욕망과 사랑, 집착에 대한 생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누구도 사랑을 쉽게 정의하고 판단할 수는 없다. 홍상수와 김민희는 자기변명인 듯 아닌 듯한 이야기에 혼신의 힘을 다한 것처럼 보인다. 결말과 대사를 통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을 빠져나갈 구멍도 마련해 놓았다.
"사랑을 하고 그 사랑에 대해서 생각할 땐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행복이나 불행,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선한 행동인가 악한 행동인가라는 분별보다는 더 고상한 것, 더 중요한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김민희에게 제67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영화는 헤어진 뒤 상황을 그렸지만 홍상수-김민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밝혔다. 101분. 청소년 관람불가. 23일 개봉 예정.
jeigun@mk.co.kr
MBN APP 다운로드